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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12/01/29 (17:56) from 121.129.0.73' of 121.129.0.73' Article Number :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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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은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인가?





창조론은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인가?

로날드 넘버스



“겉으로 보기에 (창조론이) 교묘하게 사람을 유혹하는 듯 보이지만, 최소한 그것은 전세계적인 운동은 아니다. …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운동을 미국 특유의 지역적, 토착적 기현상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 스티픈 제이 굴드, 연합 기자 회견 중 (2000)



“창조론은 미국적인 현상이지만, 사실 그것은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좀더 엄밀하게 말해 미국 중에서도 남부와 남서부 특유의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리차드 르원틴, [창조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입장] (1983)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역사를 6천년 이하로 축소시키는 이른 바 창조론이 1960년대에 태동한 이후,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창조론 운동이 단지 특정 지역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위안을 느껴왔다. 미국의 고생물학자이며 반창조론자인 스티픈 제이 굴드는 1986년에 과학적 창조론은 “미국 특유의” 현상이기 때문에 뉴질랜드의 국민들은 그 운동에 대해 추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창조론 운동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미 그 운동은 미국이라는 지역성을 탈피해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미국산”이라고 붙어있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이 세계 곳곳의 보수적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 그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창조론 연구소(ICR)의 헨리 모리스와 듀앙 기쉬 같은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창조론 관련 논문들을 20 여 개가 넘는 언어로 출판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 운동의 주도권이 신시내티 남부 켄터키에 근거를 둔 “창세기의 대답들 (AiG)”을 이끌고 있는 케네스 햄에게로 상당 부분 넘어가게 되었다. 채 1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햄과 AiG 의 동료들은 세계 각국에 지역 거점을 가진 네트웍을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어와 알바니아어에서 루마니아어와 러시아어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언어로 자신들의 책을 배포하였다. 이 기간 동안 과학적 창조론과 그보다 더 나이가 어린 사촌인 “지적 설계론” 은 그들의 주요 근거지였던 복음적 개신교를 넘어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이슬람, 유대교 밖의 영역으로 자신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 (1859)을 출판했던 당시나 그 직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보수적 기독교의 반진화론자들이나 혹 그 주제에 관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던 이들이 종간 변이나 영장류와 인간을 연관시키는 것은 반대했지만, 최소한 지구 상의 생명체가 오래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였다. 극히 일부만이, 대부분 예언자 엘렌 화이트를 추종하는 제7일 안식교도들로 구성된 소수만이, 6000년에서 10000년 전에 모든 생명체가 한꺼번에 창조되었다는 특별 창조론과 노아의 홍수 동안 모든 화석이 파묻히게 되었다는 보편 홍수설을 고집스레 주장했다. 하지만 근본주의자인 존 화이트 주니어와 헨리 모리스가 [창세기 홍수](1961)를 출판한 이후, 창조론이라는 근본적인 대안은 안식교를 넘어 보수적 개신교도들 사이에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70년대에 접어 들면서, 창조론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성서적 관점을 언젠가 공립 학교들에서 가르칠 날이 오게 되기를 희망하며, 자신들의 이론을 “과학적 창조론” 혹은 “창조 과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질학적 연대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운동은 또한 젊은-지구 창조론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따뜻하게 창조 과학을 받아들였던 나라는 호주였다. 1973년 헨리 모리스의 호주 방문은 창조 과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아 교사였던 햄과 내과 의사였던 칼 위랜드가 주도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브리스베인에 근거를 둔 창조 과학 재단(CSF) 을 설립하였는데, 이 재단은 단 기간 내에 남태평양 지역의 반진화론의 거점이 되었다. 그 이름과는 달리, 창조 과학 재단은 창조론의 성서적 주장들을 강조했다. 어떤 비평가에 따르면, 호주의 창조론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종교적인 것을 가르칠 수 없다는 “헌법의 제한에 굴하지 않고” “그들의 복음적 목적을 선포하는 데 있어 미국의 창조론자들과는 달리 전혀 수줍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호주의 반진화론자들은 2005년 8월, 기독교인으로 내과 의사 출신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브랜단 넬슨이 학생들에게 진화와 지적 설계를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 넬슨 장관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인간의 진화에 관한 기초적인 과학뿐 아니라, 학교가 원한다면 학생들에게 지적 설계에 관해서도 가르칠 수 있고, 또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에 대해 어떠한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 다시 말해 합리적 선택의 문제이다.” 라고 말했다.   

좀 더 느리고 열렬하지는 않았지만, 근처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진전이 일어났다. 198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창조론이 자라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형성되었다. 1992년 뉴질랜드 창조론자들은 뉴질랜드 판 창조과학 재단인 “뉴질랜드 창조 과학” 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뉴질랜드 청중(New Zealand Listener) 지는 자신들의 독자들 중 상당수가 “하나님과 다윈이 뉴질랜드의 학교에서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대중 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교육 기관들이 철저하게 세속적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과학 분야의 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뉴질랜드의 학교 교실에서 창조론을 전파함으로써 동조자들을 늘려왔는데, 특히 진화론적 견해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던 마오리족과 남태평양 제도 주민들 사이에 많은 동조자를 얻게 되었다. 마오리족의 한 지도자는 “궁극적으로 마오리족과 진화는 서로 상극이다” 라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굴드의 확신과는 달리, 과학적 창조론이 지구의 반대편 쪽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2000년에 어떤 관찰자는 “전체 인구 당 창조론자의 비율만을 놓고 보자면 미국을 제외한 서양 국가들 중 캐나다의 비율이 가장 높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다. 1993년, 캐나다의 주간 뉴스 잡지인 맥클레인 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캐나다인 중 종교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비율은 1/3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전체 성인 중 53%가 과학적 진화를 거부하고 있다” 는 기사를 실음으로써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2000년에 캐나다의 일부 공립학교들이 진화를 거부했는데, 당시 오순절 계통의 평신도 설교자인 스톡웰 데이는,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지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인간과 공룡들이 동시대에 지구 위를 걸어 다녔고, 아담과 이브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며 수상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하였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인들 중 복음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창조론을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해 영국의 신문들은 게이츠헤드에서 일어난 창조론자의 “스캔들”에 온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 사실을 보도한 기자에 따르면, “진화를 믿지 않는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이 영국의 국공립 중등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식 창조론”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많은 수의 시민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이 영국의 학교들에 침투”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저명한 옥스포드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창조론의 가르침을 “교육적 타락” 행위라고 비난했다. 햄과 AiG 의 동료들은 기대하지 않은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옹호함과 동시에 기력이 다한 영국의 교회에 창세기의 뿌리를 재고시키려는 AiG 의 노력들에 전국민적인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라고 말했다.

2005년 무렵이 되면 영국의 반진화론자들은, 영국의 과학 아카데미인 왕립협회 회장이 은퇴하는 자리에서 이임사를 통해 “근대 과학의 핵심 가치들이 근본주의자들의 심각한 위협 아래 놓여있다” 고 경고할 정도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게 되었다. 몇 달 후 BBC 는 전국민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영국민 10명 중 4명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종교적인 대안을 공립학교의 과학 시간에 가르치는 것을 지지한다” 고 발표함으로써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과학에 대한 전쟁” 이라는 제목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일환으로 행해진 그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민의 48% 만이 진화 이론이 “생명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자신들의 견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22%의 응답자들은 “창조론”이 자신들의 견해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응답했으며, 17%는 “지적 설계”를 지지했으며, 나머지 13%는 자신들의 의견을 유보하였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사이에 창조론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가 상당히 퍼져 있다고 보고하였다. 런던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6년 차 생물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뛰어난 학생들 중 다수가, 개중에는 앞으로 의료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포함해서, 수업 중 진화를 거부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개 그들은 오순절, 침례교, 또는 무슬림 가정 출신들이었다. 그녀는 “그것은 마치 미국의 남부 주인 것처럼 여겨진다” 고 말했다.

서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창조론자들은 비슷한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유럽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 조사에서 40%는 자연주의적 진화를, 21 %는 유신론적 진화를, 20%는 최근의 특별 창조를 인정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19%는 결정을 노리지 못하거나 별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나라는 스위스로 21.8%였으며, 다음이 오스트리아 20.4%, 그리고 독일 18.1%의 순으로 드러났다. 독일어권 국가를 제외하고 서부 유럽에서 가장 창조론이 왕성한 나라는 네덜란드로, 1970년대 이래 네덜란드에서는 창조론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해 왔으며,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전국민의 8%는 성경 무오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봄, 네덜란드 의회에서 과학 및 교육부 장관이 학교에서 지적 설계를 가르치는 것을 통해 종교간의 불화를 치유할 수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격렬한 논란을 야기했다. 그녀는 “창조 개념이야말로 무슬림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의 개념이다” 라고 낙관적으로 주장했다. “만일 우리가 각 종교의 과학자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것은 학교와 수업에까지 적용되어져야만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반진화론의 위협은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한 과학 작가로 하여금 “지금 네덜란드가 유럽의 캔사스 주로 변해가고 있는가?” 라고 묻도록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반진화론자들은 1990년 초 “사립 및 공립 학교 모두에 창조론의 성서적 메시지와 그것을 긍정하는 과학적 연구들”을 도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회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2004년이 되기까지 다른 학회들은 그것의 위험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해에 우파 정당인 알리안자 나치오날레 당은 진화를 하나의 “우화”로 폄하하면서 다윈주의를 막시즘과 연결시켰다. 그뿐 아니라 거의 동시에 이탈리아의 교육, 대학 및 학술 연구부 장관이 11세~14세 사이의 이탈리아 학생들이 진화에 대해 배우지 못하게 하려는 교육안을 제시함으로써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수백명의 저명한 학자들을 포함해서, 46,000 에서 50,000 명에 이르는 성난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이 보기에 “작금 이탈리아 내에서 점증하는 반과학적 경향”을 조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항의 집회를 개최함으로써 교육부 장관의 안을 부결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창조론에 반대하는 다윈주의를 옹호하고, 과학 교육에 건전한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은 2005년에 진화 생물학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2년 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됨과 거의 동시에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로 홍수처럼 밀려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창조론으로 무장한 선교사들은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세르비아,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창조론 학회를 성공적으로 이식하였다. 2004년에 창조론을 선호하는 세르비아의 교육부 장관이 각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8학년 공통 생물학 교재를 가르칠 때, 다윈주의에 대한 “교조적” 장을 더 이상 읽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해에는 루마니아의 교육부 장관은 공립 및 기독교 학교의 교사들로 하여금 정규 생물학 교재 대신 창조론 교재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2006년에는 폴란드의 교육부 장관이 진화론을 비판하였고, 교육부 차관은 진화를 “거짓… 우리가 그것을 상식적인 진리로 합법화한 것은 실수…”라고 부정하였다.

러시아의 창조론은 1990년대 드미트리 쿠즈네쵸프의 열정적인 리더쉽 아래서 상당히 번성하였다. (그는 과학 분야에 여러 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후일 미국에서 그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게 됨으로써 위증 혐의로 짧은 기간동안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1994년 러시아 교육부 산하 과외 및 대안 교육과는 창조론 컨퍼런스를 공동으로 지원하였다. 그 회의에서 교육부 차관은 오랫동안 국가에 의해 과학적 정통주의를 강제 당해온 러시아에서 과학적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동안 공산당의 감시 대상이었던 모든 과학들이 더 이상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했다. 러시아 교육부는 ICR 의 듀안 기쉬를 기원 주제와 관련된 교재를 개발하는 위원 중의 하나로 위촉하였다. 1990년 후반이 되면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본국으로 밀려오는 창조론의 밀물을 저지할 수 있는 자원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기사가 북미 지역으로 전송되기에 지경에까지 이른다. 어떤 관찰자는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러시아어로 번역된 ‘창조 과학’ 관련 책과 팜플렛들의 홍수가 일어나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창조론은 아주 늦게 시작되었지만, 1990년대에 복음주의적 기독교가 성장한 것과 발맞춰, 창조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남미 중에서 특히 브라질에 반진화주의자들이 가장 깊게 침투하였는데, 2004년에 행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 브라질 국민의 31%가 “첫번째 인간이 창조된 것은 10,000이 채 되지 않았다” 라고 믿고 있으며, 상당한 다수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 리오 데 자네이로 주의 복음주의 경향의 주 지사가 앞으로 공립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나는 종의 진화를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자들은 항의 집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와는 달리,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 때문에 기가 한풀 꺾인 한 과학자는, 이러한 현상은 브라질의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이 미국으로부터 창조론을 수입한 공격적인 개신교도들 때문에 혼란을 느끼고, 그들에 의해 압도당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인들이 창조론자들의 본거지가 되면서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창조론의 메시지를 선전하고 있다. 1980~1981년 겨울 처음으로 한국 창조연구회(KACR)가 창립되었고,  그 후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설립 이후 15년이 지나는 동안 창조 연구회는 16개의 지부를 설립하였고, 각종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수백 명의 박사 회원들을 모집함과 아울러, 수십 종의 창조 관련 책들을 출판했으며, 격월로 4,000 부에 달하는 “창조” 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2000년에는 전체 회원 수가 1,365 명에 달하게 되면서, 영향력의 측면이 아니라 인구 밀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이야말로 세계 창조론의 본부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 창조 연구회는 북미 주 서부의 한인들을 개종시켰으며, 그 결과 몇몇 지부가 생겨나게 되었다. 2000년에는 한국 창조연구회는 첫번째 창조론 선교사를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지역으로 파송 하였는데, 그 후 한동안 창조론 강연자들을 그곳에 보내기도 하였다.

수십 년 동안 창조론은 전반적으로 기독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ICR 은 터키의 무슬림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터키의 학교들로부터 세속에 근간을 둔, 진화론 일색의 교육을 제거하고, 진화와 창조 두 가지 모델을 공정하게 가르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바꾸려 한다” 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무슬림들은 알라가 세상을 6일만에 창조했다고 말하는 꾸란의 가르침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 창조론자들의 논의가 호소력이 있다고 받아 들였다. 교육부와 ICR 간의 연결을 통해, 몇몇 북미 창조론자들의 책들이 터키어로 번역되었고, 과학적 창조론 책이 보조 교재로 터키의 모든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지급되었다.

1990년 선의를 가진 이스탄불의 젊은이 그룹이 과학 연구 재단 (BAV)이라는 작은 단체를 설립하였는데, 그 단체는 비유물론적 우주론을 선전함과 동시에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단체의 중심 인물은 아드난 옥타르라는 필명을 가진 하룬 야히야로, 카리스마 넘치는 그는 학생 시절 실내 장식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이맘으로 전향하였다.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약 200 권의 책을 저술, 출판하였는데, 그 중에는 [진화론의 사기: 다윈주의와 그의 이론적 배경의 붕괴](1997) 가 있다. 그 책에서 그는 진화가 알라의 존재를 부정하며, 도덕적 가치를 파괴하고, 공산주의와 물질주의를 조장하였다고 비난했다. 그 후 10년 동안 이 책은 BAV 를 통해 아랍어에서 우르두 어에 이르는 각종 언어로 수백만 권 배포되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가장 정통적인 유대인들은 진화를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 기독교 창조론자들나 혹은 진화에 반대하는 어떤 종류의 특정한 주장에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에 이스라엘과 미국에 거주하는 일군의 반진화론적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토라 과학 재단(TSF)를 설립하였다. 이 운동의 배후에는 루바비쳐 레베 므나헴 멘델 슈니어슨의 후기 사상이 놓여 있는데, 그는 진화란 “그것을 증명할만한 한조각의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고 주장했다. TSF의 회장은, UCLA에서 생태학과 진화 생물학을 가르치는 엘리저 (에두아르도) 자이거 교수인데, 그는 그가 “코셔 진화” 라고 부르는 것을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처럼 그 역시 미시 진화는 인정하지만 거시 진화는 받아 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구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입장은 카발라와 하시딤 철학을 포함하는 토라의 내적 지혜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처음 창조론이 마국 이외의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00년에 영국의 과학 잡지인 뉴사이언티스트 지는 커버 스토리로 “캔사스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창조론자들이 온 지구상에 홍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걱정해야 할 때” 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 잡지에 따르면, 비록 이러한 발전이 거의 “신앙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론은 계속 스스로 변이하면서 전세계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나감으로써 작금에 이르러서는 “무슬림 세계에 있는 동조자들과도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5년 후 세계 각국의 과학 학술 단체들의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진화를 지지하는 한편 “과학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이론들”의 확산을 비난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하였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진화에 반대하고 성서에 근거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 지극히 미국적인 운동을 지역적, 신학적, 정치적 장벽 안에 묶어 두려는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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