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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7 (19:07) from 121.129.1.123' of 121.129.1.123' Article Number :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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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너의 牧會者像에 대한 이해
슈페너의 牧會者像에 대한 이해

An Understanding of Pastorship Ph. J. Spener's

 

논문요약
17세기에 독일 루터교회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슈페너는 신학자이자 훌륭한 목회자였다. 슈페너가 훌륭한 목회자로서 일생을 마친 것은 그의 어렸을 때의 경건한 주의환경과 경건의 훈련이 밑바탕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슈페너는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부목사를 시작으로 목회를 시작했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목사단의 대표로서 20년 동안 사역하였다. 이곳에서 목회 경험의 산물로 경건주의의 대표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경건한 소원들'(Pia Desideria)가 1675년에 출판되었다. 그 후 1686년부터 1691년까지 당시 독일 루터교회에서 가장 명예스럽고 대표적인 목사직이라 할 수 있는 작센(Sachsen) 선제후국의 궁정수석목사로 사역하였다. 이 기간이 그러나 슈페너에게는 목회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슈페너는 베를린에서 목회하였다. 이곳에서 목회하는 기간이 슈페너에게는 가장 절정적인 시기였다.

슈페너는 이상적인 목회자상을 성서에서 찾고 있는데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준 목회자상을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다. ① 목회자는 교인들을 영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영적인 돌봄이다. ② 목회자는 교인들을 영적인 양식으로 먹여야 한다. ③ 목회자는 교인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④ 목회자는 교인들을 보호해야 한다. ⑤ 목회자는 교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슈페너는 이러한 목회자상을 제시하면서 자신 또한 다음과 같은 목회자로 살았다. ① 신자들에게 관심을 쏟는 목회자였다. ② 양심적인 목회자였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목회자였다. ④ 금욕과 절제의 목회자였다. ⑤ 소외층에 대한 관심을 가진 목회자였다. ⑥ 성서 중심의 설교자였다.

I. 들어가면서

독일의 경건주의는 16세기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교회 개혁 운동이며 경건운동이다. 개인의 신앙체험, 구원 그리고 실천적인 신앙, 경건의 실천이 경건주의적인 신앙, 사상 그리고 행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경건주의자들은 그들을 언제나 루터의 후예로 생각했으며 자신들이야말로 루터의 종교개혁적인 사상과 신앙을 전수하였다고 보았다. 루터는 당시 교회의 부패의 원인이 평신도들이 아닌 먼저 성직자들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교회의 적(敵)은 사제들, 수도사들 그리고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특히 귀족 출신의 주교들은 세속 군주들이었음을 밝히고 그들의 성직 수행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의 갱신과 교회의 부패의 제1차적인 원인은 바로 목회자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목회자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 있을 때 교회는 살지만 목회자가 죽어 있으면 교회는 부패하게 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경건주의의 창시자인 슈페너 또한 자신의 목회 경험을 통하여 교회의 부패를 직시하게 되었고 교회부패의 근원이 지도자의 타락에 있음을 간파하였다.

루터가 1546년 세상을 떠난 후 독일 루터교회가 종교개혁의 정신과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을 때 경건주의자들은 17세기 독일 루터교회의 영적인 질병과 부패를 직시하면서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특히 독일 루터교회에서 경건주의의 창시자라할 수 있는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모범적인 목회자요 신학자였으며 교회의 개혁을 위해 목회자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슈페너의 수많은 글들 특히 그의 설교와 편지는 바로 그의 목회적인 삶과 목회현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글들을 통하여 슈페너의 목회자상을 탐구하는 일은 오늘날의 목회자상의 정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슈페너에게서 경건주의의 목회자론을 찾아보고자 한다.

II. 슈페너의 생애

1. 출생과 교육
독일의 교회사 학자인 마르틴 슈미트(Martin Schmidt)는 '경건주의'라는 책에서 "종교개혁의 첫 장이 루터의 전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필립 야콥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의 생애는 경건주의의 초기 역사의 틀을 만들며 더 나아가 내용을 결정한다"는 말로 경건주의에 있어서 슈페너의 위치를 높이고 있다. 슈페너가 경건주의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그의 생애가 교회의 목회자로서 당시 교회의 부패에 직면하여 교회를 갱신하는데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슈페너는 1635년 1월 13일 지금은 프랑스 영토이지만 당시에는 독일에 속한 엘사스 지방의 라폴츠바일러(Rappoltsweiler)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 루터교 지역에서도 수많은 독자들을 가진 영국의 청교도적인 경건 서적인 베일리(Lewis Bayly, 1565-1631)의 '경건의 실천'(Praxis Pietatis)과 손톰(Emanuel Sonthom)의 '금보석'(Güldenes Kleinod) 그리고 루터교에 신비주의적인 사상을 수용한 요한 아른트(Johann Arndt, 1555-1621)의 '참 기독교에 대한 네 권의 책'(Vier Bücher vom wahren Christentum, 1605-1610)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신앙에 대한 두 가지 방향에서 보여지는 것은 영국의 경건 서적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결 안에 있는 참 믿음과 함께 루터의 칭의론에서 말하고 있는 참 믿음에 대한 열망이다.

슈페너는 그 당시 네덜란드의 위대한 학자들인 정치학의 대가(大家)로서 신스토아주의(Neustoizismus)의 대변자인 유스투스 ?시우스(Justus Lipsius, 1547-1606)와 자연법의 창시자인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에 대한 관심을 이미 대학에 다니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165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 대학교에서 역사학, 철학 그리고 언어를 공부하였고, 1653년 3월 17일 토마스 홉즈(Thomas Hobbes, 1588-1679)에 대한 비판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역사학을 더 깊이 연구하고 1654년 6월 14일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슈페너는 대학 시절에도 경건 훈련에 주력하였다. 특히 주일 성수는 그의 경건 훈련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목회할 때 강조했던 주일 성수는 이미 이 때에 형성된 것이다. 당시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 신학부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재보라 불리웠다. 슈페너는 신학부에서 그의 선생들로부터 여러 방면에 걸쳐서 영향을 받았다. 제바스티안 슈미트(Sebastian Schmidt, 1617-1696)로부터 그는 성서주석 방법론을 배웠다. 그는 이 방법을 자신의 설교에 적용하였다. 교의학에서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요한 게하르트(Johann Gerhard, 1582-1637)의 제자인 단하우어(J. C. Dannhauer, 1603-1666)의 영향을 받았다. 슈페너는 신학수업에 특히 단하우어의 은택을 입었다고 했는데, 이 점은 그가 루터교 정통주의의 입장에 분명히 서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단하우어의 교회개혁에 대한 개념을 슈페너 또한 공감하고 있었다.

1659년 6월 23일 슈페너는 5년간에 걸친 신학공부를 마친 후 학문과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스위스의 바젤에서 그는 북스토르프 2세(Johann Buxtorf d. J., 1599-1664)에게서 유대교의 랍비와 탈무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였고 그의 지도를 통하여 성서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제네바에서 슈페너는 불어공부에 열중하였고 예수회에서 개혁교회로 개종한 제네바에서 그 당시 설교자로서 활동한 라바디(Jean de Labadie, 1610-1674)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으며 그의 저서도 접했다. 여기에서 슈페너는 라바디의 초기 활동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독일 로스톡(Rostock)의 신학자인 그로스게바우어(Th. Großgebauer, 1627-1661)의 개혁서 '황폐된 시온의 파수꾼의 소리(Wächterstimme aus dem verwüsteten Zion)'를 통해 슈페너는 독일 국민교회(Volkskirche)의 부패를 접하게 되었다.
2. 슈트라스부르크 교회에서 목회
학문과 견문을 넓히는 여행을 끝낸 후 슈페너는 다시 슈트라스부르크에 돌아와서 이곳 교회의 부목사(Freipredigeramt)로서 활동하면서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다. 박사시험에서 세례를 통하여 거듭나게 된다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입장과 세례 이후에 반복되는 거듭남이 필요함을 지지하였다. 이것은 개혁교회의 예정론을 반박한 것이다. 예정론에서는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견인의 선물"(donum perseverantiae)이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거듭남의 상태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슈페너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입장에 서서 거듭남은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또 새로운 중생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슈페너의 박사학위 논문은 요한 계시록의 다양한 해석과 관련하여 계시록 9:13-21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슈페너는 개혁교회 신학자들에게 통례적인 계시록에 기록된 1,000년 왕국에 관한 해석을 알고 있었지만 이 당시에는 종말론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자신의 종말론적인 사상은 그의 프랑크푸르트 시절에야 고개를 들게 된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31세된 슈페너는 1666년 예기치 않았던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목사단의 대표로 부름을 받았다.
3.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목회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1666년부터 슈페너는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의 루터교 목사단의 대표(Senior)로 일했다. 목사단의 대표(Senior)로서 슈페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직무는 설교였다. 슈페너는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에 또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슈페너가 프랑크푸르트에 오기 전인 1665년 프랑크푸르트 시의회는 모든 청소년이 주일 오후에 교리문답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슈페너는 당국의 이러한 결정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이들이 어린이로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를 잃어버리고 바로 성인의 단계로 뛰어야 하는 것을 주시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시간, 교회에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슈페너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슈페너는 이 일을 위하여 프랑크푸르트 교회에서 교리문답교사로서 사역하였다. 교리문답교육은 처음에는 슈페너 집의 하녀와 그녀의 두 친구들을 대상으로 주일 오전에 시작되었다. 슈페너는 교리문답이 설교의 이햐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보았다.

슈페너는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신앙 생활의 향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마 5:20을 중심으로 '바리새인의 거짓 의'에 관한 설교(1669년 7월 18일)를 하였는데 이후 진실한 기독교인의 모임이 프랑크푸르트 교회 안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1670년 프랑크푸르트 교회 안에서 경건한 사람들의 모임인 콜레기움 피에타티스(Collegium pietatis)가 발족하였다. 경건주의는 이것으로 교회 개혁의 첫 발을 내디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콜레기움 피에타티스의 주동자는 법률가인 슈츠(J. J. Schüz, 1640-1690)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모임에 라바디의 사상(교회 밖의 작은 교회, ecclesiola ex ecclesiam)의 주동적인 소개자였다. 그러나 1675년부터 슈츠를 중심으로 잘호프(Saalhof)에서 소위 말하는 잘호프 경건주의자들이 별도로 모였다. 이들은 후에 프랑크푸르트 루터교회에서 분리하여 나갔다.

슈페너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 독일 경건주의의 선구자인 아른트(Johann Arndt, 1555-1621)의 '복음서 설교집'(Evangelien-Postille) 新版의 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온 글이 '경건한 소원들 또는 참 루터교회의 하나님께 합당한 개선을 진심으로 요망'(Pia Desideria, 1675년)이다. 이 글은 호응이 좋아서 1675년 가을에 별책으로 발행되었다. 이 책은 슈페너의 프랑크푸르트의 목회현장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그의 대표작이면서 경건주의의 프로그램 책이다. 1686년 슈페너는 20년간의 프랑크푸르트 사역을 마치고 당시 독일에서 루터교 목사로서 가장 명예로운 작센 선제후국의 '궁정수석목사'(Oberhofprediger)로 1686년에 드레스덴(Dresden)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4. 드레스덴에서 목회(1686-1691)
1686-1691년까지 슈페너는 작센 選帝侯 게오르크 3세(Georg III.)의 궁이 있는 드레스덴(Dresden)에서 궁정 수석목사로 사역하였다. 그는 이곳에서도 교리문답교육을 계속하였다. 그는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그의 자녀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사택에서 교리문답을 가르쳤다. 성인들도 교리문답 교육을 받았다. 슈페너는 선제후에게 궁정교회에서 어린이 교리문답교육을 할 수 있도록 요청을 했고 선제후는 고인이 된 그의 모친을 위한 교회에서 교리문답교육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했다. 궁정 안에서는 궁정수석목사 대신 교리문답교사가 왔다고 조롱을 했지만 1688년 2월 24일 국회에서 교리문답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하는 법령을 통과하게 했다. 슈페너가 드레스덴에 있을 때에 라이프치히와 함부르크에서 루터교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운동 사이의 논쟁들이 있었으며 슈페너는 경건주의의 입장에서 변호하였다. 슈페너가 선제후의 영적인 아버지로서 선제후를 신앙적으로 지도하자 이로 인하여 슈페너와 선제후 게옥 3세 사이에 긴장을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슈페너로 하여금 베를린으로 자리를 옮기게 하였다.
5. 베를린에서 목회(1691-1705)
1691-1705년 슈페너는 베를린의 교회 협의회 위원과 니콜라이 교회의 감독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최고봉에 도달했다: 광범위한 서신 교환, 1694년 잘레(Saale) 강변의 할레에 프로이센의 개혁적인 대학인 할레 대학교의 설립. 이 대학은 슈페너와 프랑케의 경건주의에 특히 영향을 받았다. 1705년 슈페너는 "경건주의의 아버지"로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III. 목회자로서 슈페너
슈페너의 목회자로서의 시작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의 신학부 교수로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목회 길을 걸음으로써 그는 그의 동료들보다 더 훌륭한 발자취를 개신교의 역사에 남겼다. 그의 일생은 목회자로서 바친 일생이 되었고 그는 그 당시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목회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루터의 95개 논제가 그의 목회적인 경험에서 탄생했다고 한다면 슈페너의 대표작인 '경건한 소원들'(Pia Desideria, 1675)도 그의 목회자로서 경험에서 탄생하였다. 슈페너는 교회가 개혁되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가 개혁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올바르게 교육을 받은 경건한 목사의 양성에서 교회의 상태와 제도에 필요한 개혁이 실현되리라 확신하였다. 그의 목회자상을 그의 글을 중심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슈페너의 글 '복음적 신앙교리'(Die Evangelische Glaubens-Lehre, 1688)에 보면 1687년 부활절 후의 둘째 주일(Misericordias Domini)에 요 10:11-16을 중심으로한 "설교자의 직무"라는 설교가 있다. 슈페너는 목회자의 원형을 성서에서 쁹고 있다. 첫째, 구약 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 목자라고 하는 것은 선생, 예언자 그리고 제사장을 비유적으로 가리킨 것으로(겔 34장), 이것을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신약 성서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리켜 목자라 했다(요 10:11). 또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목자장(벧전 5:4)이라 칭하고 목회자를 목자라 했다. 목자장으로서 그리스도는 목회자의 원형이며 모범이 된다. 그가 목회자의 원형이며 모범이 되는 것에서 슈페너는 목회자상을 다섯 가지 사항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1) 목회자는 교인들을 외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로써 목회자는 개인적인 어려움에 처한 교인을 더욱 잘 도와줄 수 있다. 슈페너는 목회자가 특히 교인들을 영적으로 보살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한 명의 목회자가 당시의 상황에서 교인 전부를 영적으로 돌볼 수 없는 상황임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슈페너는 목회자를 감독(Bischof)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어떤 위대한 지도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인들을 진심으로 돌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돌보지 않는다면 죄이다. 이 죄에 대한 추궁을 슈페너는 겔 34:4을 들고 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2) 목자가 자신의 양들에게 꼴을 먹이는 것처럼 목회자는 교인들을 영적으로 먹여야 한다. 이 말은 교인들이 영적인 양식으로 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적인 양식을 먹인다는 것은 영적 은혜의 수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슈페너는 무엇으로 먹이는가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다. 슈페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말씀인 레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즉 설교이다. 슈페너는 설교가 인간적인 것들 즉 인간의 사상, 지혜나 기교의 전달이 아닌 바로 복음과 율법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이 말씀에 포함된 것으로 교리문답 수업이 있다. 슈페너의 이 교리문답 수업은 경건주의 운동의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루터의 소교리문답을 1,283항목으로 설명한 책으로 167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슈페너가 프랑크푸르트, 드레스덴 그리고 베를린으로 목회지를 옮길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시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리문답 교육이다. 그는 교리문답 교육이 성인들에게는 설교를 이해시키는 기본이 됨을 주장하였고 어린이들에게는 기독교적인 교육과 삶을 제시해주는 길잡이임을 강조하였다: "교리문답에 나오는 기본적인 교리를 모르면 설교에 나오는 교리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게될 것이다." "마음의 밭은 가시가 자라고 무성하게 되기 전에 일찍 어렸을 때 부터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둘째 성만찬이다. 성만찬에 있어서 슈페너는 헬라 교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처럼 성만찬이 영적인 약이요 일용할 양식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만찬의 봉사자로서 목회자는 그리스도와 신자가 영적으로 합일하는데 조력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페너에게 있어서 권징의 사용이란 회개한 사람은 죄의 용서를 통하여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은혜가 유보됨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다. 슈페너는 이런 권징은 초대 교회의 모범을 따라 교회에서 다스리는 일을 맡은 장로가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는데(롬 12:8, 고전 12:28), 당시 루터교에는 교회 안에 장로 제도가 없었다.

3) 목회자는 교인의 본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벧전 5:3, 고전 1:1, 빌 3:17, 딤전 4:12.)를 제시한 다음 어떻게 본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가르침과 설교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즉 목회자가 신자들을 가르치고 설교한 내용대로 살아야 한다. 특히 탐욕, 쾌락 그리고 세상적인 허영을 물리치고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세우지 말 것과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타인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의 선한 삶은 그의 장식품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진실한 청지기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4) 교회와 양들을 이리로부터 보호하여야 한다.

이리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은 첫째, 모든 악으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도 방관하면 그것은 참된 목회자가 아니다. 또한 신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신앙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다. 신자가 죄를 범했다면 죄에 대해 징계해야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할 일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징계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 교회에 하나의 경종이 된다고 생각한다. 교인수를 늘리기에 급급한다면 징계를 받은 신자를 다른 교회에서 받아줄 수 있기 때문에 징계의 참 의도가 살아있을 수 없게 된다.

둘째, 거짓 교리와 거짓 선생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즉 신자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해야 하고 참된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가 이단에 빠졌다면 이것은 목회자의 책임이며 목회자의 과오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단을 반박하고 거짓 선생들을 물리쳐야 한다.

5)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을 우리들을 위해 버리신 것처럼 목회자는 자신의 생명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박해를 받을 때, 교회로 인하여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
슈페너는 이와 같은 목회자상을 제시하면서 이런 목회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을 기도로 꼽고 있다. 그는 기도야말로 목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직무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목회자로서 살았는가?

1) 그는 信者를 즉 자신의 교회 설교단 밑에서 설교를 듣는 교인들을 제1차적인 관심의 대상자로 여겼다. 그는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거듭나서 성결한 신자가 되기를 원했으며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프랑크푸르트 교회에서 경건한 사람들의 모임인 콜레기움 피에타티스(collegium pietatis)는 이런 관심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2) 그는 양심적인 목회자였다. 슈페너는 목회자로서 가장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 앞에서 가져야 할 참된 양심으로 보았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부인하는 기독교의 첫번째 실천원리이다. 이것은 목회자가 신자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목회자 자신이 부단히 훈련해야할 실천원리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목회자였다. 즉 신앙과 행위가 일치된 목회자였다. 슈페너는 목회자들 스스로가 참 신앙의 열매들을 신자들의 삶 가운데 보여주지 못하는, 곧 자신이 바른 신앙을 갖지 않고 있음을 직시하였다. 그들이 옳은 신앙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그 모든 것들은 실상 성령의 조명, 증거 그리고 확증에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깨우침으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단지 인간적인 자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성령의 사역이 없이 오직 문자에만 의존하는 성경지식 그리고 인간적인 열심 만을 갖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기독교의 진리와 바른 신앙적 삶에서는 동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슈페너는 목회자로서 참 성도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참 성도의 표식은 사랑에 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거짓되지 아니하는 진심에서 우러난 순수한 사랑, 이 사랑은 죄악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열매를 맺는 사람이 예수의 참 제자이다.

4) 금욕과 절제의 목회자였다. 슈페너는 당시 오락을 멀리하고 금주를 철저히 실천하였다. 또한 목회자로서 슈페너의 관심은 당시 교인들이 술에 빠져서 사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피력하였다. 경건주의에 의해 금주가 신앙의 덕목으로 채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술 취함에 대하여 슈페너는 '경건한 소원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취함을 예사로 생각한다. 술취함 때문에 범죄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술취함이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죄라고 한다면 아주 경미한 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는 결코 회개할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바울은 고전 6:10에서 술꾼들을 탐색하는 자, 간음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하는 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그리고 강도들과 함께 생각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러한 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된 사람들이다."

5) 사회의 소외 계층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목회자였다. 경건주의는 영적인 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였는데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을 영적인 것에만 보지 않고 육의 구원에까지 확대시켜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소외 계층인 유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함을 강조한 목회자였으며, 당시 노동자들과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들이 기거할 수 있는 숙박소를 프랑크푸르트에 건립했는데 이것은 전 독일에 모범을 보여주었다.

사회에 대한 슈페너의 관심은 특히 분배 문제에 나타나 있었으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식에 맞는 부의 분배가 필요하다. 신자들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 소유요 나는 단지 그것을 관리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하나의 관리인이다라는 인식을 시켜야 한다. 나를 위해 소유할 권리가 나에게는 결코 없고 주인의 요구에 복종할 따름이다.

슈페너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규례에 의해서 십일조를 드렸다. 성직자의 생활, 예배경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그 돈이 쓰여졌다. 신약의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충만한 선행이 나타나야 한다. 만일 우리의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마땅히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아니 그 이상 이라도 기꺼이 내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6) 성서 중심의 설교자였다. 설교는 슈페너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의 설교는 지식의 전달이나 자기 지식의 과시가 아닌 언제나 영혼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의 설교는 성서중심의 설교이다. 그의 설교의 주제는 복음이었고, 신자들이 성서를 보는 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성서 읽기와 연구에 있어서 슈페너는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한다:

기도로 시작하며 읽어라. 성경은 자연적인 책이 아니다. 성경의 지식과 능력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맛보아야 한다. 때문에 심령을 열게하고 깨달음을 받기 위한 기도는 읽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성서를 읽는 근본적인 동기는 속사람의 경건과 성장에 대한 소원에 있다. 성서 읽는 방법에 대한 권면: 1) 특히 경건생활을 위해서는 구약보다는 신약을 먼저 읽을 것과 더 자주 읽을 것을 강조한다. 2) 세심하고 기초적인 성서연구를 할 것.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습관적으로 읽는다. 이렇게 읽을 때 내적인 열매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슈페너에 의하면 성서는 광산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광산에서는 열심히 찾고 깨내는 사람만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모든 성서의 말씀들을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말씀에 대하여 되씹어 보아야 한다. 중요한 성구들은 쓰거나 외울 것을 추천한다. 장작이 많이 불에 접촉되어야 달구어 지듯이 성경말씀도 깊이 생각되어야 내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이 없이 혹는 세상의 근심이나 사업으로 성서말씀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면 성경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슈페너는 그 당시의 관습인 1년에 성경전체를 통독하는 것보다는 짧은 성구를 택하여 세심히 연구하고 깊이 생각할 것을 권면한다. 3)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개인에게 말씀하시는 매체이다. 성경을 읽을 때 바로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손수 말씀하신다. 이런 직접 말씀하심은 인간이 마음의 문을 연 그곳에서 가능하다. 4) 성서말씀의 상이한 종류를 알아야 한다. 특히 율법과 복음의 차이이다. 율법은 거듭난 사람에게 완전한 인간의 표본을 제시하면서 그에게 율법의 성장에 대한 규정과 목적을 준다. 이 율법의 압박으로 옛 인간이 매일 죽는 것을 도움 받는다. 복음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과 생동하는 능력을 복음이 인간에게 은혜를 지속시켜주는 그때에 중재를 한다. 슈페너에게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의 기쁜 소식이다. 오직 이 은총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기독인은 내적인 성장과 성결에 이르는 능력을 얻게 된다.

7) 선교에 대한 꿈을 가진 목회자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은 지 약 150여년이 흘렀지만 루터교 내에서는 해외 선교에 열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슈페너는 루터교에 해외 선교에 대한 꿈과 자극을 불어넣은 사람이다. 그의 선교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주님의 지상명령의 실천에 있었고 이것은 경건의 실천이기도 했다. 이러한 슈페너의 이상은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에 의해 할레(Halle)에서 그 실현을 보았다. 할레의 경건주의는 철저한 조직력과 실천으로 "변화된 한 개인을 통한 세계의 변혁"(M. Schmidt)을 이루어 냈다.

IV. 마치는 글

경건주의자들 가운데 우리는 슈페너를 통하여 경건주의의 목회자상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의 목회에 몇 가지 점을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목회자는 행함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신앙과 행위의 일치이다. 이것은 신앙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 가운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슈페너에게 있어서 참된 경건의 실천이었다.

둘째, 철저한 자기 훈련과 경계이다. 윤리, 시간, 물질 그리고 명예에서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권면하였다(딤전 1:5).

셋째, 성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서가 목회의 지침서, 신학의 지침서, 삶의 지침서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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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행본 및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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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ti.kehc.org/data/person/mgkim/0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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