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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0/11/18 (19:30) from 129.206.85.195' of 129.206.85.195' Article Number : 74
Delete Modify 장회익 Access : 4393 , Lines : 94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에게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나'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리는 물론 ‘나'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매우 어렸을 적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여러
사람 가운데 하 나로서 ‘나'의 몫을 챙기게 되고 남이 하는 일을 나도 하고 내가 좋 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하리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 러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오직 내가 ‘나'로서 살아 가고 있는 모습일 뿐, 이것이 곧 내 정체는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그렇다면 ‘나'란 과연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의 정체를 추적하면…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자신이 삶의 과정 속에 들어서면 서 “내가 이제 내 삶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내가 살아온 지 한참이나 지나고 난 어느 시점이 되는
것이다. 그리 고는 그 속에 이미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고, 또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라는 것, 그리고 ‘삶'이라는 것 속에 슬쩍 던져 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나 자신이 이미
정체 모를 그 어떤 존재에 이끌리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다. 내 몸 자체가 내가 의식도 하기 전에 이미 일정한 방식으로
작동 하고 있으며, 심지어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것도 내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 속에
이미 들어와 작동하고 있는 이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과연 나는 하나의 주체로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체불명의
존재에 이끌리어 이것이 살자는 대로 사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이 낯선 존재가 ‘나'와는 무관한 다른 어떤 별도의 존재일 수도 없다. 이것을 제쳐놓고 다른 ‘나'를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단지 나는 이것에 대해 무척 낯선 상태에 있는 것 뿐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보다는 좀더 친근한 또 다른 ‘나'가 있
다. 즉 내가 어제는 무엇을 했고, 그저께는 무엇을 했고, 1년 전에는 그리고 10년 전에는 어떻게 살아 왔으며 또 오늘은 무얼 하고 있는
지에 대한 기억의 총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들이 곧 바로 ‘나'의 정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직 이 낯선
‘나'에 이끌리어 살아 온 경력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 뿐이다. 그러 한 내 경험 이전에 벌써 이 정체 모를 ‘나'라는 것이 있어서 오늘에
이르도록 나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제 그 정체를 추적 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흔히 ‘나'의 시작이 내 출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야말로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내 출생이 란 무엇인가. 이것은 내 몸이 모체에서 성장하던 시기를 마치고
모체 밖으로 나와 스스로 호흡을 하고 독자적으로 영양을 공급받기 시작한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이미 내 몸은
작동하고 있었 고, 그것도 아주 능숙히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 고 곧 이어 어머니의 젖을 능숙하게 빨아 댔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행동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배우고 있는 물리학 지식을 통해서 익히려 한다면 이는 아마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학습도 연습도 전혀 해 본 일이 없었을 나는, 젖을 척척 빨아 목구멍 으로 넘겼던 것이다. 도대체 내 안에
있는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러 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나는 다시 내 과거를 더 추적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출생 이전의 내 몸이 모체 안에서 어떻게 성장되어 왔는가를 쭉 거슬러 살펴
나가 다 보면 결국 내 몸을 이루기 시작한 가장 원초적인 하나의 세포를 만나게 된다. 이 세포 속에는 내가 모체 안에서 성장하고 다시
모체 밖으로 나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유용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 이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아무개라고 하는 고유명사를
달고 이 세상 을 살아가게 될 한 개체로서 나의 첫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이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정보야말로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게 만들어 준 바로 그 정체 모를 ‘나'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는 물론 어느 한순간에 저절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 속에 담긴 정보의 출처는 다시 내 부모의 생애로, 내 친가와 외가 조 부모들의 생애로, 그리고 다시 그들의 선조들의
생애로 점점 더 거슬 러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정보의 시원은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불과 몇 세 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는 오직 신화만이 있을
뿐이었 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이 밝혀 낸 비교적 신뢰할 만한 근거에 입각 하여 이 정보의 기원을 가장 멀리는 35억 년 내지 40억
년까지 이끌 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대략 35억 년에서 40억 년 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지속적인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지구상의 물질들이
이리저리 무 리 지어 어지럽게 출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요동치던 여러 물질 가운 데 우연스럽게도 극히 예외적인 기능을 지닌 한
작은 물질 체계가 발 생하게 되었다. 즉 이것은 자체의 모습이 미처 붕괴되기 전에 “자신 과 기능적으로 동일한 또 하나의 물질
체계"가 주변에 발생할 수 있 도록 돕는 기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가지기 위해 이 물질 체계는 그 어떤 구조적 특성을
지니게 되며 이의 도움을 받아 발생한 제2세대 또한 같은 기능을 가지므로 동일한 구조적 특성을 이 어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전달된 구조적 특성, 즉 이 체계 의 물질적 구성 속에 각인된 정보의 내용은 여러 세대를 통해 복사되 어 나가는 것이다.

내 안에서 움직이는 진정한 ‘나’

이제 이러한 과정이 수백 수천억 세대 동안 지속하게 된다면, 이 과 정을 통해 점점 더 정교한 정보를 지닌 개체들이 발생하게 되고, 또
생존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이들 사이에 놀라운 협동체계가 이루 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기 의 구성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과 같은 대규모 물리화학적 변화까 지 야기시킬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생명이라 부 르게 되는 현상인데,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정보의 시원은 바로 여 기에까지 닿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나' 속에는 적어도 지난 수십억 년간 이, 전체 생명이 생존해 오면서 다듬어 내고 걸러 낸 생존 정보의 정수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이는 마치도 내 의식 속에 내가 일생 동안 겪어 온 경험의 정수를 담아 나로 하여금 내 정체성을 느끼게 해 주는 상황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내 개체적 생애를 통해 얻은 경 험의 총체를 내 의식 속에서 ‘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내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의 전과정을 통해 겪어 온 경험의 총체인 이 정보를 그간 숨겨져 있던 좀더 큰 ‘나'라고 인정하지
않 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의식 속의 ‘나'를 이끌어 왔던 정 체불명의 또 하나의 ‘나'는 기실은 수십억 년을 생존해 오며 그
삶 의 지혜를 모아 온 이 전체 생명의 한 면모였던 것이다. 그 동안 나 는 오직 내 속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던 좀더 근원적인 이 ‘나'를
내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는 ‘나' 속에 생생한 의식의 형태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내 안에서 움직이는 진정한 의미의 나는 이미 36억 년 내지 40억 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지구상에서 살아 온 존재
인 것이다. 단지 이것에 대한 기억을 내 의식 속에 끌어들이지 못함 으로써 내 정체를 스스로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우리
나라 에서 상연된 "마음의 여로"인가 하는 제목의 영화에는 전쟁의 상처 로 자기 과거를 완전히 망각한 한 사나이가 등장한다. 당연히
가족들 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신분조차 알지 못하 던 이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과거를 되찾게 되는
이야기가 그 줄거리였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존 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그간의 경험 내용을
잠시 상실했던 것 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것의 많은 부분을 우리 의식 속에 담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들을 놓고 볼 때, 우리에게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그간 우 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생존해 왔다는 점이 아니라, 우리가
어찌어찌 하여 이러한 긴 생존의 한 토막을 주체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 이 긴 연관의 한
고리를 도려 내어 ‘나'라고 부르는 주체적 형태로 이를 의식하게 되었을까. 이는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수십억
년간이라는 긴 성 장과정을 거쳐 마련된 이 지구 생명은 급기야 이러한 형태의 의식 주 체를 산출해 내었고, 내가 바로 이러한 기적의
한가운데에서 의식의 주체로서, 그리고 행동의 주체로서 이 장구한 역사적 삶의 한 부분을 떠맡을 수 있게 된 것인가. 이는 진정
놀라움과 함께 경외의 마음까 지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이다.


집합적 주체로서의 ‘나’와 ‘우리’

그런데 ‘나'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서 로 사이의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개별적 주체로서의 ‘나'만이
아니 라 집합적 주체로서의 ‘나' 즉 ‘우리'를 의식하게 된다. 이렇게 의 식된 ‘나'는 정보의 종적인 연계만을 통해 이룩된 ‘나'만이
아니라, 정보의 횡적인 연계를 통해 넓혀진 ‘나'이기도 하다. 마치도 신경세 포들의 정교한 연결망을 통해 하나의 통합적인
‘의식'이 발생할 수 있듯이, 개별자로서 의식 단위들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한 차원 높은 총체적인 의식 주체가 마련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수십억 년에 걸쳐 면면이 이어 온 총체적 생명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 주체로 새롭게
깨어나는 우주사적 사건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따이야르 드 샤르댕이 언급한 ‘오메가 점'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장회익 1938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 시대에‘온생명'이라는 화두를 던진 그는 <삶과 온생명><과학과
    메타과학>, <현대과학 과 윤리>,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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