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9/04/26 (02:15)
from
218.39.96.188'
of
218.39.96.188'
|
Article Number : 223
|
Geist
|
Access : 7272
,
Lines : 27
|
|
푸른 자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그 초록과 자연의 소리가 너무나 반가웠다고나 할까. 시간이 지난 후 몇년 동안 독일 자연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은 많이 정화되었던 것 같다. 독일 시골에서 이리저리 거닐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회색 시멘트 사이를 거닐다 강의를 위해 캠퍼스를 방문하면 맞이하게 되는 그 초록의 상쾌함은 가끔씩 발견하게 되는 자연의 싱싱함일 뿐이다.
내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다. 내 마음 속에 음악이 끊어지지 않는 삶. 마음에 흐르는 음악이 없다면 내 삶은 얼마나 건조할 것인가. 생명과 약동이 넘치는 음악이 없는 삶이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워낭소리를 보고 바람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가 아무리 회색 시멘트의 삶에 쪄들어 산다 하더라도 그 모든 삶의 모태가 되고 근원이 되는 자연에 대한 감각과 그 깊이를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어떠한 자연적이고도 사회적인 공해도 없는 청명함의 배후에는 우리가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생명과 소멸의 질서가 존재한다. 거기에는 한 편으로는 소멸하고 스러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또 다른 창조와 약동이 존재한다. 적어도 워낭소리의 그 할아버지는 그 자연과 더불어 평생 살아가신 삶이 있었고, 그 자연의 풍요로움을 삶에 선사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세상의 논리로도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구원의 시간이 존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 노동의 가벼움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 그 노동이 결코 사회적으로 큰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근원에 이미 닿아 있다. 거기에는, 자연적인 삶, 사랑, 희생, 헌신이 존재한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삶의 쓸쓸함에 대해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씩 거동이 불편해가는 40년이 된 소, 그리고 학다리처럼 아주 연약한 다리임에도 농사일을 해나가시면서 점점 기력을 상실하시는 할아버지, 더 이상 전파를 잡지 못하는 늙은 라디오... 그렇게 생명은 한 치도 자연의 리듬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쇠하고 소멸해 간다. 뒤로는 무엇인가를 남기면서 말이다.
자연 가운데 사회를 접촉하게 되는 유일한 창구는 라디오였다. 그것은 사회에 회자되는 여러 정치적 기호를 영롱한 자연의 세계에 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우울한 소리들이었다. 천만원짜리 등록금의 시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등등, 적어도 자연의 그 순한 이치와 심성과는 어긋나는 혼탁하고 잡된 성질들이었다.
그것들은 논을 시원하게 가르면서 홍시를 더욱 익게 하는 자연의 그 훈훈한 바람과는 달리, 텁텁하고 사악한 도시의 소리들이었다. 그러므로 워낭소리는 나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생활세계가 얼마나 근원성에 닿아있는 자연의 삶을 훼손하고 까 부술 수 있는지를 자각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의 자연주의적인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해 보임은 사실이었다. 그곳은 불쾌하였고, 사회적 배려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 하였다. 자연의 텃밭에서 생명과 먹거리를 위해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려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 여름 할머니네 집에 놀러가서 평상에 누웠던 때가 있었다. 그날은 소나기가 온통 대지를 후두둑 때렸던 날이었다. 그 자연이 주는 묵직하고 장엄한 풍경들에 대한 흠모와 기억이 내 안에 살아있어도, 나는 결코 그 삶을 동경하기까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을 넘어 이렇게 도시사회로 합류되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연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불편함은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워낭소리는, 우리 마음에 노래가 계속 이어지는 것 만큼, 우리 마음에 자연에 대한 태도의 전환을 요청한다. 이제 자연에 대한 동경은 자연주의로의 회귀를 넘어선 정치적 태도가 될 만큼 오늘의 상황은 너무나 열약해져 버렸고, 우리의 마음에서 자연에 대한 배려는 쓸모없는 라디오와 같이 버려졌을 뿐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의 모태이며 삶의 질서이다. 자연적 질서는 현실적인 윤리이다. 화려한 듯한 도시 안에서 유리알 유희에 취해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워낭소리는, 그 쓸쓸한 자연의 소리를 다시 들려주었다. 무엇을 잉태시키고 세월이 다 하면 사라지는 그 생명의 질서를 바라보며,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연적 리듬과 윤리를 담아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워낭소리는 들려주고 묻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