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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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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Number :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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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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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의 비행시간이 약간 길게 느껴졌다. 몰트만의 책을 주로 읽었다. 봄학기 대학원에서 몰트만의 신학연구 세미나가 있기 때문에 방학에 몰트만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와 글을 구상하고자 한다. 몰트만의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과 관념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몰트만 교수와 같은 A급 신학자들의 주요한 특성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논의와 흐름에 대한 풍부한 바탕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세우는 것이 후배들과 후대들을 위해서는 매우 유용하다.
11시간의 길다면 긴 여행, 책보고, 와인몇잔에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한 두어시간 잠시 눈을 붙이다 간식배급으로 기내가 약간 소음이 들려서 눈이 떴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은 후 도착일정이 4시간정도가 더 남은 것을 확인하였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오랫동안 볼 수 없어서 눈도 아프고 와인도 무리이고 해서 좌석 앞의 모니터를 건들어 이리저리 영화를 골랐다.
<펠햄123>이라는 영화가 한국어 더빙도 제공하는 영화라 해서 골라서 보았다. 그런데 매우 흥미있는 영화였다. 단순한 지하철인질극을 넘어선 영화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서브웨이 하이재킹: 펠햄123>으로 이미 개봉된 영화였다. 덴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를 내가 영화에서 본 기억이 별로 안난다. 덴젤의 용모와 분위기가 내가 아는 지우와 많이 닮아서 흥미로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뉴욕에서 살아가고 있는 루저(실패자), 그리고 이 시스템 안에서 기생하고 있는 위너(승리자)들이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작동이 되고, 한 시스템 안에서 온전히 포섭될 수 없는 그늘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발현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악역이지만 존 트라볼타의 어떠한 원칙, 자신의 삶에 대한 단호한 태도와 결기, 사회의 위너에 대한 조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개그콘서트에서 박성광 개그맨은 <1등만 기억하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루저의 찌질함을 잘 표현했다면, 존 트라볼타는 매우 정확하고 과격하게 도시의 그늘을 자신의 방식으로 폭로한다. 덴젤 워싱턴과의 요상스런 우정과 의리도 인상적이었다.
컴컴한 밤 사이로 밝게 드러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를 상공에서 보니, 2000년 가을 베를린 테겔공항에 내리기전에 기내에서 바라보았던 도시의 풍경이 잠시 떠올랐다. 도시가 온통 초록 숲으로 가득 찼던 베를린으로 기억한다.
루프트한자 마일리지가 몇년동안 계속 날라가고 있는지도 몰랐고 올해와 내년초 마일리지가 대거 날라간다고 하여 프랑크프르트 숍에서 시계를 하나 구입했고 셔틀을 타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독일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표징가운데 하나는 아우토반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우토반을 시속 140Km 넘게 빠르게 가로지르는 그 풍경은 단지 도로를 주행한다는 것보다는 푸른 숲의 중심을 관통한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아우토반도 그대로, 하이델베르크도 그대로, 그리고 비스마르크 광장도 그대로였다.
나는 독일에서 차가움을 배웠다. 그 차가움은 나에게는 매우 필요한 태도였었다. 모호한 경계를 분명하게 세우는 것, 학문에 있어서는 줄이 서야 하는 것, 나의 정신과 태도를 분명히 하여 현실과 삶을 이성적이며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그 원칙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태도를 배웠다. 그것은 건조함이나 냉정함이나 창백함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정신이다. 오히려 차가움은 인격적 신뢰와 사회적 공공성, 투명한 학문적 명료함과 미학적으로 결부된다.
하이델베르크의 찬 공기를 깊이 마시고 나니 이곳에서 배웠던 차가움이라는 화두가 다시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떠오른다.
오는 길에 황춘득 목사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 우리에게는 가까운 것들이다. 나의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오늘 몰트만 선생의 텍스트에서 나온 주제이기도 하다. 그 목사님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의 지하철 인질단의 요구에 뉴욕시장까지 발벗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시민을 때려죽인 공권력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전혀 인간적이지도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으며 깔끔하지도 않은 MB와 국가권력을 생각해보았다. 이쯤되면 영화보다 더 판타지 같은 사람과 공간이 MB와 서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 서울은 스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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