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자평 Das Leben

2004/04/29 (06:50) from 80.139.167.101' of 80.139.167.101'	Article Number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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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개강모임

개강모임과 파티를 기숙사 지하의 바에서 가졌다. 기숙사생과 안식년으로 이 기숙사에 한학기 동안 같이 하는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한다.

1. 독일의 의료보험제도는 한국에 비해서 수가가 매우 높지만 전액 의료보험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독일의 의료복지 체제와 선진화를 위협하는 여러 도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우리가 매우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의 국가의료보험제도는 어찌보면 독일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적 정신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와 기독교적 문화와 정신의 관련성이 어디까지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초기 디아코니들의 병원봉사활동과 헌신, 그리고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혀 있는 기독교적인 사랑과 정의의 정신이 이 의료보험제도의 원천임을 강조한 목사님과의 대화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는 그 고마움을 잃어버리고 의사는 그 봉사정신을 잃어버리고 자본화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2. 튀빙엔에서 지도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들었던 목사님과 대화를 하였다. 그 당시부터 지도교수는 어떠한 분명한 방법론 같은 것들을 갖고 있었고 다시 25년 후에 그 교수의 강의를 들었을 때에도 여전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왜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지, 지도교수의 신학-교육적 방법론, 무엇을 향해 그것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제시하려는 노력을 그 목사님은 높게 샀다. 그 목사님은 지도교수와 본회퍼와의 유사성을 말하였다. 신학의 혼돈을 경험했던 마지막 학기 그 목사님은 지도교수의 강의를 통해서 신학의 한 길을 발견했다고 한다. 오늘날 신학과 신학자가 얼마나 현대사회에서 신학도와 신앙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를 고민하게 한 대목이었다.

3. 한국기독교의 초유의 스켄들, 기독당을 창당하였다는 사실을 아주 심각하게 보고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허심탄회하게 여러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째, 한국기독당은 독일 CDU를 그의 모태로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데 독일의 CDU와 한국기독당이 어떠한 연관성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맥락도 다르고, 또한 현재의 CDU와 독일기독교의 교감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CDU 팔아먹기가 얼마나 말이 안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정치신학은 정치를 통한 신학이 아니다. 신학적 정당성이 현실에 정치적으로 개입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정치를 통하여 신학적 정당성을 구현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전이 아무리 하느님의 나라의 구상에 철저하다 하여도 그 방법을 '신앙'이 아닌 '정치'를 통하여 구현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배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독일에서도 이전에 성서중심정당을 주창하여 국회에 진입하였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기독교국가에서 그들은 1프로의 지지를 얻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셋째, 독재자에 신앙양심으로 저항했던 세력들과, 독재자를 옹호하고 침묵하고 시대가 좋아져서 이제는 권력을 넘보려는 세력들을 똑같이 기독교-정치행위의 범주에 묶을 수 없다는 것이다.

4. 독일개신교의 주교회가 오래전부터 진행해왔던 준목인턴제도와 목사봉급평준화제도는 여러 세세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선진화된 제도로 일단 평가된다. 준목인턴제도는 이론과 실재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완충과 교감의 공간을 교회가 확보한다는 것이고, 목사봉급 평준화제도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연대적인 목회자 집단의 선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리고 목사안식년제도 또한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있는 기숙사가 주교회 인턴과정 세미나기 진행되는 곳이며, 평균적으로 일생의 목회생활 가운데 1-3번 주어지는 콘탁트파러, 즉 안식년 목사들이 쉬는 곳이다. 그 목사님들은 약 6개월동안 이곳에서 쉬면서 어떠한 교회적 의무도 가지지 않고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쉼을 얻으면서 새로운 목회인생의 충전을 얻는 것이다. 한국의 안식년은 개교회적으로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향후에는 교단적인 고려와 지원 속에서 특별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 어느 목사님은 한국은 방문하지 못했지만 교회파트너관계로 아프리카를 다녀왔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AIDS가 큰 국가적인 재난으로서 여전히 아프리카를 아프게 하고 있다고 한다. AIDS로 인해 세상을 떠난 가족, 고통을 겪는 가족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사회 안에서의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전지구적인 불평등과 부정의의 문제를 교회는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교회는 불평등의 사회에 하느님의 정의의 이름으로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의 교회는 그 불평등에 쉽게 안착하며, 안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많이 든다. 아파하는 세상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교회가 세상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어야 하는 일이다. 교회는 결코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왕국이 될 수 없다. 교회의 이름으로 세상에 절망을 주는 기독교는 반 예수적이다. 교회의 한 지체인 나로부터 세상의 절망의 자리에 서지 말고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와 우리와 교회에게 그러한 내용과 메시지와 희망이 있는지를 더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