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 시간동안 과정과 실재를 저 책꽃이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의도된 계획이었다. 지도교수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Genetische Methode를 상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초기저서에만 집중하였는가. 사실 전 세계의 화려한 양주들이 다 모인 시연장에서 그 양주들의 디테일한 차이를 음미하기란 도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 것인가. 오히려 빨리 찾아들어가는 화려한 양주 시연회에서 많은 영혼들은 돌이킬 수 없는 혀끝의 상처를 얻게 된다. 책을 다시 펴면서 드는 바람은 이제 Process and Reality를 보아도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독해력과는 달리 새로운 것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한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다. 책을 다시 펴도 또한 그것을 읽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의 초기 아이디어가 후기에 어떻게 더 구체화되었는지를 검토하는 의미에서의 집중일 뿐이다. 아직 Process and Reality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갈 때는 아니다. 이전의 이해와는 다르게 그의 사상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화이트헤드는 강조한다. 인과적 특성을 잘 따져야 형태적 특성이 더욱 분명하게 제시된다. 또한 인과적 유효성이 제시적 직접성에 우선한다는 것은 그저 형이상학적 특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사상의 흐름을 민감하게 접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책을 다시 편다. 이제는 책에 내가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의 행간에 흐르는 혈관을 응시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고의 뿌리 끝부터 응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