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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18] 21. Systematische Theologie 1








Einfuehrung in Systematische Theologie
Prof Dr. Dr. Michael Welker
18.10.2002.





1.

첫 시간 우리가 다루어야 할 학자들과  자료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슐라이어마허의 [신앙론]Glaubenslehre이 있다. 이 책 고전적이며 상당히 어렵다. 에벨링의 Dogmatik des christlichen Glaubens가 있다. 불트만 학파의 분위기와 성서해석학의 특징들이 잘 드러난 책이다. 틸리히의 ST는 문화학과 철학적 지평이 깊이 가미된 저서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신학부에서 에큐메니칼 학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였던 슐링크의 Okeumenische Dogmatik이라는 저서가 있다. 칼 바르트의 KD를 여러분이 다 읽을 수는 없다. 읽는다면, 1/1 2/2 1/4만 강의에 관련해서 읽기를 권고한다. 나는 스승 몰트만의 신학을 경험의 신학Erfahrungstheologie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그에 대해서도 새로 나온 신간을 중심으로 그 사상의 중요한 골격을 나중에 논의할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ST도 주목해야 한다. 후반부에 데이빗 트레이시나 존 힉을 논의할 것이다. 이들은 다원적 신학의 지평에서 주목받는 그룹들이다. 그리고 상황신학으로서 1년전에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강의하였던 해방신학자 보프와 피오렌자를 다룰 것이다.

2.

도그마란 무엇인가? 도그마는 의견이자 지론이다. 이는 신앙의 내용과 관련한 공식적이며 중요한, 양자의 견실한 연결Verknuepfung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조직신학이란 무엇인가? 조직신학은 교회와 신학을 둘러싼 다양한 영역의 성과를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결정권을 위한 기초를 쌓는 신학작업이다. 조직신학 학풍과 관련된 독일신학대학은 대충 이렇게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신학을 전문적으로 주요하게 다루는 학교로서 세 페컬티 즉  뮌스터, 에어랑엔, 괴팅엔이 있다. 그리고 개혁신학과 루터신학 이 양자를 거의 많은 대학은 동시에 다루고 연구하고 있다. 신학윤리와 사회윤리를 보강해서 다루고 있는 대학은 뮌스터, 튀빙엔, 하이델베르크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과 비교해서 미국의 상황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시도하고자 한다. 미국은 신학부Divinity School를 기반으로 신학과 대학의 학풍과 학문적 방향이 전개되었다. 그 와중에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상당히 학문적으로 대학내에서 심도깊게 연구가 되면서 그 확장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동안 신학부가 잠정적으로 담당해왔던 역할들이 종교학의 확산의 와중에서 옮겨진 면이 있었고, 오히려 교회공동체의 영역에 대한 근거와 신학적 방어의 역할을 이 신학부가 담당하고 있는 면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신학부의 에큐메니칼한, 그리고 이론학문적인 성격은 종교학의 확산으로 인해서 점차 그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또한 미국의 윤리학은 상당히 풍부한 논의를 바탕으로 탄탄한 그룹들과 학파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은 이에 비하면 진행과정im Werden 중에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조직신학부는 신학, 철학, 에큐메닉, 윤리, 그리고 종교신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3.

조직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말이다. 그러나 고도로 정교화된 말이자 신학이다. 조직신학은 하나의 원칙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많은 입장이 그 안에 있다. 신론, 그리스도론, 인간론 등등 이러한 다양한 영역을 중심화 하면서 형성하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조직신학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는 텍스트 뿐만 아니라 교회, 종교적 인간 또한 논의의 적극적 대상이다. 조직신학은 이러한 다양한 차원을 통합해서 이루어낼 필요가 있는 신에 관한 논의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축을 고려하고자 한다. 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이다. 학문은 교회를 향해야 한다. 그러나 학문은 학문의 중요한 도구인 정신의 자유와 정신의 소통이라는 특징으로 인해서 다분히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모든 것이 논의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도구적 의미로서의 학문적 성격은 교회공동체로 향할 때 그 분명함이 드러나고 드러나야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 다양한 학문적 논의와 그 경험의 가능성들은 교회를 위한 조직신학적인 논의로 자동적으로 편입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조직신학의 고뇌가 있다.

4.

조직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초적이며 근본적인 신학Elementarische Theologie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축에 학문으로서 그 자체로 논의되는 조직신학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 축으로서는 신앙인과 그리스도인을 위한 신학의 과제로서의 근본적인 신학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직신학이 근본적인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검토와 검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잘 논의 되었다 하는 조직신학의 영역에서의 발언이 모두 신학적인 것은 아니다.Nicht jede Bemerkung ist theologisch. 조직신학은 근본적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조직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5.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한 학자도 다룰 것이다. 그는 슐라이어마허와 다른 입장을 지닌 켈러의 Wissenschaft der christlichen Lehre 이다. 당시 켈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너무 감정에 치중되었다고 그를 비판하였다. 교회교의학은  KD 1/1 2/2 1/4을 중심으로만 다룰 것이다. 틸리히의 저서가 왜 Dogmatik이 아니라 Systematische Theologie 인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리 보인다.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은 신학의 정신사적인, 그리고 신학사적인 맥락 위에서 전개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몰트만의 신학은 경험의 신학Erfahrungstheologie이다. 그의 신학은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희망의 신학, 십자가 신학으로 알려져 있다.

6.

여기에서 우리는 고백Confession과 다양성/다원성Pluralität의 관계의 문제를 접근하고자 한다. 고백은 우리의 내면적 연관에서 출현하는 산물이다. 다원성의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사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백과는 차이가 나는 여러 문화를 삶 가운데서 경험한다. 이 문화에 대한 경험은 차이의 문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이 양자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학문적으로 볼 때 신학과 일반과학의 관계문제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신학과 일반과학의 단절이라 하는 것은 다름아닌 문화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윤리학이 독자적으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미국에서 운용되는 현실을 진단해 보았다. 이러한 현실의 근거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이 문제를 신학이 어떻게 세속화와 연결되고 있는가의 문제로 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과의 관련성이 미미하게 담보된 윤리학의 강세는 꼭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7.

조직신학과 근본신학의 관계를 논의함에 있어서 조직신학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것과의 접합을 시도할 때에는 일단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verstehbar. 그것은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도들이 수용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다akzeptierbar. 동시에 발전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다. 이에 관련해서 우리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us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근본주의의 특징은 예Ja와 아니오Nein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러한 이유의 하나는 이 근본주의가 이성과의 관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일부 신학서클에서는 이러한 근본주의가 여전히 기세를 펼치고 있음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념에 대한 견실함과Überzeugungskonsistenz과 사태에 대한 견실함Sachkonsistenz이 동시에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양자는 진리에 대한 추구에 방향을 두어야 한다. 확신Gewissheit와 사태에 대한 인식Sacherkenntnis 이 양자는 진리의 추구에 있어서 중요한 두 축이다.

8.

학문적 신학은 확신 안에서의 성숙이다.Wissenschaftliche Theologie ist Wachsen in der Gewissheit. 또한 신학은 진리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길이어야 한다. 신학은 환원주의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신학은 운명적이며 불가피한 노력과 집중unvermeidbaren Konzentration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학을 두 전망으로 유용하게 구분할 수 있다. 미시신학Mikrotheologie과 거시신학Makrotheologie이 있다. 미시신학은 큰 전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논제를 작은 전망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의 성격이다. 애매모호한 신학의 거대논리로 작은 것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시대에는 마이크로한 신학을 통해서 해명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이 국한되어 있다는 것도 놓치지는 않아야 한다. 마이크로한 신학에 집중하면서도 마크로한 신학이 주는 전망과 관념Idee를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 둘의 통전은 학문적 신학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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