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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8 (12:36) from 62.104.211.64' of 62.104.211.64' Article Number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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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28] 24. 뇌, 무의식, 문화













뇌, 무의식, 문화















1.

일요일 밤 늦게 잠을 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눈 감기 전 뉴스를 보려 티브이를 틀었는데 까마득하게 잊었던, 그러나 매번 시간이 되면 놓치지 않고 보려 했었던, ZDF의 고급학술프로그램 Nachtstudio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주로 신학, 철학, 형이상학적인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 프로그램의 오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는 뇌의 환상인가? Ist die Welt ein Hirngespinst? 사회자는 그대로였고 오늘은 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왔다. 자연과학과 의학의 입장을 대변하는 뇌 연구 전문가 Wolf Singer 교수와, 정신분석학의 입장을 대변하는 Horst Kächele 교수, 그리고 문화해석학의 지평에 서 있는 역사-인류학 전문가 Christoph Wulf 교수 이렇게 셋이 나왔다. 내일 아침만 되어도 종이에 몇 자 적은 메모의 뜻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할 것 같기에, 간단히 정리해본다.

2.

우선 뇌 연구 전문가로서 Wolf Singer 교수는 그저 의학도로서 뇌의 신경세포의 메커니즘만 관심을 갖지 않고 현대 뇌의 여러 성과를 바탕으로 인식과, 판단, 그리고 세계 이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였다. 결국 이 학자의 입장은 현대논리학과 자연과학적 인식론, 그리고 뇌에 대한 풍부한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행동의 한 체계를 나름대로 독특하게 구상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3.

바로 정신분석학자이자 프로이디안인 Horst Kächele는 반론을 제시하였다. 물론 정신현상은 뇌와 여러 물질적인 현상과 더불어 수반되는 기능이기에 뇌 연구의 성과가 의미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의 개성이 똑같이 기능하는 인간의 물리적 근육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느냐의 입장을 갖고 있었다. 뇌의 기능은 외부의 자극과 그 반응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여 그 근거를 가지고 끊임없는 추상화의 수직적 적극적 논리의 형태를 취한다면, 이는 끊임없이 적극적인 뇌와 의식의 지평을 이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의 지평에 대한 구축과 이해는 근본적으로는 무의식에 기반한 활동이기에 이 무의식에 대한 입장을 안배하지 않는 뇌의 수반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으로만 유효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100년 전에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역할과 그 의미는 바로 의식의 추동에는 무의식이 깃들어 있음을 밝혔다는데 있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4.

인류학자 Christoph Wulf는 두 입장과는 다른 자리에서 인간의 의식을 조명한다. 인간은 개인적이다. 그러나 그 개인 자체에서 출현하지 않는 성격의 것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해명은 역사적 문화적 존재의 산물로서 인간을 이해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그는 보고 있다. 즉 내가 누구인가, 뇌는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무엇인가, 라는 부분이 그저 양화된 의학적 메커니즘이나 질화된 정신분석학적 메커니즘으로 해명되는 것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인간과 그 환경 사이에서 형성되는 역사적 문화적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라고 보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문화학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나 자신에서만 추출될 수 없는 질문으로 이해하고, 오히려 인간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관계와 인간들의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서만 나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유럽공동체와 아프리카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뇌나 무의식의 구조에 기반한 차이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가 하는 회의를 이 입장에서는 갖고 있었다.

5.

뇌의학자 Wolf Singer 교수는 의식은 뇌가 감지하고 표현하는 것의 총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바로 고도화된 뇌의 활동이 의식을 구성하고, 우리가 보는 세계가 이러한 활동의 엄연한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꼭 백두 형이상학에 있어서 입각점을 가진 주체의 동시적 세계에 대한 투사 개념을 뇌의학의 입장에서 해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뇌는 신체가 감지하는 모든 자극을 수용하고 그를 대단히 복합적인 수용과 판단의 작용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환경을 의식화 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인류학자 Christoph Wulf는 인간 의식과 존재를 플라스틱과 같은 존재로 단면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라고 비판한다. 인간의 의식은, 뇌의 수용과 판단의 활동의 산물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나와 환경 사이의 여러 상호반응, 문화적 행위를 통하여 형성된 총체적인 산물임을 지적한다.

6.

더 나아가서 Christoph Wulf는 심지어 비슷한 뇌를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개인은 문화적 삶의 조건 속에서 다른 자신의 경험을 쌓아나가기 때문에 다른 개인으로 형성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실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조건과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이러한 부분에 종속된 면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학과 인류학에 있어서 우리 시대의 화두는 ›차이‹로 규명되고 이해된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개인이 고유의 역사적인 특정경로를 선택하고 관통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특징인 것이다. 제의도 그렇다. 제의는 문화를 통해서 그 자신의 형태가 규정되고 의미가 발현되는데, 제의 자체가 보편적이지만, 제의의 형식은 매우 다양한 것이다. 개인은 이렇게 제의를 통해서 특정한 역사적 경험을 계승하고 또한 인간의 공동체적 특성을 함양한다. 여기에서 개인의 문제에 관하여 ›보편‹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를 건네지 않을 수 없다. 실용주의 철학자 리차드 로티는 개인의 문화적 역사성과 보편성의 문제를 Christoph Wulf의 입장에서 해명하고, 오히려 더 레디칼하게 개인과 문화적 공동체의 우연적 개별적 형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듯이 보인다.

7.

프로이디안 Horst Kächele 교수는 뇌의학의 논리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디프스 컴플랙스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현대에서 아주 다양한 스팩트럼을 가지고 해석되는데 그 정신을 요약하자면, 어떠한 이전의 경험도 자아의 내면에 쌓이고 형성되고 그것은 어떠한 무의식적 구조로서 기능하는 인간 마음의 특성을 부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 차원의 해명과 정의를 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식의 기저에서 중요한 근거로서 기능하는 무의식의 기능과 구조를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 정신의 심층적 조건과 가능성들을 의학적 기능으로 설명하는 환원론적 방식은 위험스럽다고 지적한다.

8.

뇌의학자 Wolf Singer 교수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뇌는 그 자체가 끊임없는 자기창조와 자기개발의 패턴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자기조직의 뇌의 형태에 대한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도적으로 이러한 자기조직을 일으키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무의식이 의식을 유인한다는 입장의 고민과 비슷한 자리에서 논의할 있는 뇌의학의 고민거리이다. 동물은 이러한 의식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뇌의 자기 반성과 자기 조직화의 특정한 기능을 강력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적 입장에 서 있는 Christoph Wulf 교수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뇌의 자기조직화의 문제로 보는 것 보다는 그 존재가 문화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문화적 차이이고, 인간은 그 문화 안에서, 자신을 형성해 나아가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Horst Kächele 교수도 어렸을 때의 경험과 체험이 지속적으로 어떠한 정신의 장을 형성하고, 과거의 경험은 새로운 것을 열고 다양성과 풍부함을 실현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뇌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라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차이를 통하여 아기는 나름대로 차이의 인식을 매개로 자기학습을 가하며 자신을 계발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보면, 그 아기는 인간 무의식의 문법을 익히면서 자신을 계발한다. 한편으로 문화적 인류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부모는 자식이 어떻게 나아갈 지를 문화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하여 아기와 자식들은 그의 능력이 개발되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9.

세상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뇌 의학의 입장에서 세상은 뇌의 투사로 규정된다. 인간은 세상을 만날 때 외부정보를 매개로 뇌의 환경에 대한 통일적 인식을 바탕으로 유기적으로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뇌는 그 자체로 정합성과 연계성을 지향한다. 엄청나게 고도화된 뇌는 다양하게 수용되는 정보를 대단히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순간 순간 결정적 세계를 구현해 낸다. 이러한 인식의 시스템으로 인해서 세상은 저렇게 투사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 인류학의 입장에서 세상은 그저 외부정보의 수용과 투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정보의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판단 안에서 그것을 파악하고 또한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경생리와 해석학의 차이가 존재한다. 문화인류학에서 뇌의학은 그저 단순한 경험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일기예보가 보여주고 있는 제한성을 담보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통계학일 뿐이다. 오히려 이 세상은 의미에서 철저한 문화적 산물이다. 사회적 삶에 있어서도 자기창조와 자기조직의 과정은 구현된다. 다른 사람과 문화의 관계 안에서 새로운 복합성이 출현된다. 정신분석학의 이해에 있어서 의식은 세계 이해의 문인 것일 뿐이고 그 의식의 주체성은 여전히 의식에게 주어져 있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뇌신경의 해명으로 환원이 안되고, 문화적 기술로도 환원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10.

뇌의학에 있어서 의식은 뇌가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결과이다. 의식은 여러 정보의 최종적인 취합이다. 자의식은 이 강력한 의식의 자기 표현이다. 의식의 특징은 자신의 정보를 어떠한 특정한방식으로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정보를 상황과 연계시켜서 저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의식은 Syntax에 관련된 고등한 논리적 규칙이다. 그러나 사회인류학에서 의식은 개인의 느낌과 정서의 공유가 사회적 연계를 띄고 있는 차원의 개념이다. 그래서 의식은 역사성을 띄면서 주체성으로 심화해 들어가게 된다. 또한 문화 사회인류학에서 행위는 의식과 다르다. 행위는 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무엇을 구성하고 바꾸고 모험을 하는 다른 차원이다. 이 행위가 고양된 문화를 형성하게 하는 특징점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뇌의학의 논의는 상당히 한계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뇌신경학에서 의식의 특징을 반성의 능력으로 보는데, 이는 꼭 반성되는 영역과 반성되기를 기다리는 영역 사이의 엷은 면 사이의 미미한 비약을 해명하는 것에 불과할 뿐 더욱 더 근본적으로 의식의 근거와 추동으로서 활동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접근하기에는 그 무기가 유용하지 못한 면이 있다. 꿈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11.

사회자는 마무리 하면서 몇 마디 던진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제기는 이 의식과 뇌 기저에 있는 ›메타 뇌‹와 같은 심층 영역에 대한 발견의 문제이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존재방식을 통해서도 우리의 의식과 뇌와 관련된 더 근본적인 메타 영역을 암시받을 수도 있다. 뇌의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특별히 어려움 없이 포괄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즉 뇌는 자기조직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메타 영역의 고민이 결코 현재 진행되는 뇌의학의 여러 성과와 입장과 대립되지는 않는다. 다른 입장에서는 이러한 메타 영역을 심층 문화로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관점에 있어서 문화는 의식보다 훨씬 크고 포괄적인 관념이다.

12.

사회자는 다시 세상이 뇌의, 무의식의, 문화의 투사라는 입장을 염두하면서 보편의 문제를 질문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건데 보편의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주의적 태도와 많이 관련되었다면, 인간의 보편적 인식과 판단과 자유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식의 특성으로 인하여 West와 East의 차이가 존재하다는 입장에 서 있다. 뇌의학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의 뇌는 똑같이 비슷하다고 판단한다. 뇌는 특정하게 서양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문화인류학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 다른 문화와 종교적 양식이 현실에 존재하는데, 이러한 현실을 이끌게 되는 궁극적인 요인인 ›차이‹에 대한 여러 다각도의 성찰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 편으로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로 인한 여러 현상 및 갈등이 등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라는 신 경제 통합과 허위보편으로의 전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차이의 문화의 심화, 그리고 가상적 보편의 심화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접근은 절대 오늘 우리의 고민인 뇌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고 실존과 문화의 입장을 바탕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뇌의 문제는 보편의 문제에 궁극적 키워드가 될 수 없다고 본다.

13.

자아와 정신의 비밀은 한편으로는 뇌의 비밀이기도 하다. 확실히 각자 전문적 연구의 입장과 끈질기게 관철하는 세 논점의 경합과 집중이 대단히 돋보였다. 사실 뇌의학자의 입장은 신선하고 대단히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흥미 있게 의식과 세계 이해의 문제를 해명하는 듯 했다. Wolf Singer 교수의 혁신적인 저작인 [뇌 안의 감시자] Der Beobachter im Gehirn(Suhrkamp Verlag, Frankfurt. 2001.)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한 분야에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학자들이었고 나름대로 분야에서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기에 어떤 한 주제가 등장하면, 다른 세 각도에서 그 주제에 대하여 군더더기 없이 정합적인 논리를 펴나갔다. 서로간의 논쟁이라는 느낌보다는 뇌와 의식, 그리고 마음의 문제라는 몇몇 토픽들에 대해서 각자의 관점과 각도로 엄격하게 해명하는 토론으로 여겨졌으며, 개인의 개성보다는 뇌와 의식이라는 세계에 접근하는 세 가지 안목이 아주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어느 한 입장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 입장은 정말 삼각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 세 전문 분과적 입장은 결코 유기적으로 포괄될 수 없는 배타적 관계들인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 이래서 드넓은 전망을 갖고 있는 시대의 대가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분야에서 대단한 프로필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만나도 결국 각자의 손가락으로만 세상을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심신수반의 철학을 우회로로 거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뇌의 문제를 의학적으로 해명한 Wolf Singer 류의 입장을 직통하는 것이 의미 있으리라 여겨졌다. 기억과 문화해석학적 방법을 동원한 접근은 가까이 있는 아스만 교수의 문화-기억해석학을 지속적으로 이해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흥미 있는 주제와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논의한 고급 토론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 행운이고, 이 프로그램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 느꼈다. 한 가지 바람은, 언젠가는 저런 최고의 전문가들의 논쟁들이 갖고 있는 신선하고 대단히 섬세한 논의의 구석 구석을 온전히 어려움 없이 사상적으로 언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기대다.


2002.10.28. 새벽 4시 36분을 지나며.















cf. http://www.3sat.de/3sat.php?http://www.3sat.de/kulturzeit/themen/3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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