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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7. 27] 38. 논문(論文)에 대하여







SS 2003
Kolloquium 25-26. Juli
Universitat Heidelberg




Mendelssohn | Adagio







1.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펼쳐진 학위과정생 콜로키움을 마감으로 여름학기가 다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지도교수의 틸리히 세미나와, 그리스도론, 그리고 페르난도 엔스가 인도하는 하이델베르크 외국 박사과정생 콜로키움, 그리고 논문이 이번 학기의 중요한 학업과정이었다.


2.

이번 콜로키움에서는 겨울학기의 <사랑>이라는 주제와는 달리, 학위과정 동료들의 논문내용에 관한 발표로 모든 시간들이 진행되었다. 예전, 세례, 신학과 과학, 상징이론, 신학적 행복론이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길고 짧은 시간동안 각자가 고민한 내용들을 제시하고 서로간의 생산적 논의를 갖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지도교수와 슐레 박사와 토마스 박사를 포함해서 약 25명의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토마스 박사는 독일 모 대학의 교수지원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며, 앞으로 짧은 시간 내에 논문을 마칠 몇몇 동료도 있었다. 이 콜로키움은 나에게도 아주 유용한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서구학문의 현장에서 논문을 쓰면서 그 논문의 방향, 방법론, 그리고 그 전개방식에 대한 개인적 고민들이 여전히 작지 않게 다가왔는데, 이 콜로키움을 통해서 몇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전망들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과 바람들을 여기에 몇 자 남긴다.


3.

논문의 주제는 되도록이면 예각화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한 사상가의 한 분야를 다루거나 혹은 한 주제를 전체 사상사 안에서 추출해 내는 두 방식이 있을 것이다. 물론 후자의 작업도 매우 유용하겠지만, 후자의 작업을 위해서는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에 숨어 있는 한 주제를 추출하고 묶어내어야 하는 어떤 규준을 본인이 마련하고 창조적으로 엮어내야 하는 과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규준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작동되는지 논문의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상가들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단순비교로 끝나기가 쉬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4.

논문의 주제가 너무 예각화 되어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 사상가의 그 특정한 주제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거나 그 사상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 경우라면, 더더욱 너무나 폭이 작아도 문제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작업은 사상가가 그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언급하였는가를 단순히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언급의 흔적을 통해서 그 사상가가 어떻게 그 주제를 의식하였는지를 전체적으로 해명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꼭 그 주제에 대한 사상가의 언급이 적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그 사상가의 사상 안에 온전이 들어가서 주제를 바라보는 사상가의 <추체험>의 경로를 밟아야 하기에 대단한 노력과 창조력과 시간이 동반될 수는 있을 것이다.


5.

논문에 있어서 그 주제나 사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논문의 전체 논증을 통하여서 제시되어야 하지 어떠한 논문 안에서의 개별적 언급을 통하여서 제시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주제나 사상을 다루는 것이 어떠한 현실적인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강조는 서론과 결론에서 잠시 언급될 수 있을 지언정 논증의 과정에서는 별로 요구되지는 않아 보인다.


6.

어떠한 사상가의 특정한 분야와 주제를 검토함에 있어서 그 사상가의 내적 일관성을 우선 전제하면서 그 맥락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요구된다고 본다. 논문은 그 사상가가 특정한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재구성해서 제시하고 그 지평의 의미와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기에 우선적으로는 그 사상가의 체계 안에 들어가서 내가 녹아지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상가를 대하는 논문작업자는, 사상가 자신이 아니기에 어떠한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상가의 체계에 대한 심화된 이해와 그 체계에 대한 비판적 거리는 동시에 진행되는 면이 있어 보인다. 논문은 그 사상가가 그 주제에 대한 언급을 인용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인용의 배후에 깔려 있는 메타동기를 헤아리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그 인용의 본문을 따 옮기는 것은 이차적인 작업일 수 있다. 오히려 그 사상가는 어떻게 저 주제에 대해서 이해하며 어떻게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그의 사상 가운데에서 변화하는지를 맥락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 중요하다.


7.

그 사상가의 맥락에 대한 이해에서 발견되는 내적 균열이나 모호함은 논문의 커다란 쟁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그 부분은 그 사상가가 주제를 끌고 나아감에 있어서 직면하였던 그 사상과 시대의 한계와 그 사상가를 읽는 우리 시대의 지평이 만나는 생산적인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사상적 지평의 만남으로 인하여 형성되는 균열 이외에도 그 사상가의 내적 논리의 오류, 판단 정지, 혹은 오판, 심지어 오자로 인하여 형성되는 균열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상가의 관점의 균열이나 모호함에 대하여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그러한 흔적들을 매우 의미있는 단서로 안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은 사상과 사고에는 불가피하게 따르는 내적 부정합성이나, 관점의 엇갈림이 언제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상가의 내적 균열이 이후의 단계로 넘어가면 어떻게 처리되고 해명되는지를 밝히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 완성된 작품에 대한 컴팩트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과정에서 야기되는 사상적 추이와 변주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8.

논증은 따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상가의 주장과 대립되는 자기 주장이 논증이 아니라 그 사상가가 그 주제를 그렇게 이해하였다고 밝히는 작업이 논문의 논증이며, 또한 논문을 통한 자기 주장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신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과학의 아주 독특한 지평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상과 학문은 어느 사상가가 무한한 정신성의 세계에서 그 특정한 주제를 적실하게 추출한 사건이다. 그 사상가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그렇게 남겼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사상가가 그렇게 유한한 양식으로 사상을 남긴 이유나 동기와 기원은 다시 정신성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우리는 그 사상가의 글의 외피만을 만날 뿐이다. 드러난 글만 가지고는 그 글의 심연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정신과학은 바로 그 유한한 글에 묻어 있는 사상과 정신성의 흔적을 헤아리는 작업이다. 글에 대한 기본적인 독해나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초보적인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면, 사상가가 남긴 글의 동기와 문맥을 순수하게 복원하는 작업의 가능성은 원칙적으로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학의 방법은 저자의 동기의 복원보다는 저자의 동기의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수 있다. 또한 그 해석의 다양성은 그 해석 작업의 다양성 만큼 다면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9.

저서는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길을 걸어간 자의 사고 흔적과도 같다. 사상은 이 사고의 흔적이 일관적인 경로를 지닌다는 사실에 대한 문화적 용인과도 같다. 또한 어떤 사상가의 저서와 사상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주제화 하여 재현하는 논문 작업은 한 사상을 창조하는 작업 만큼 독창적인 작업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정신과학의 논문이란 기초적인 차원의 결여를 제외하고는, 각자가 중요한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자기가 걸어간 정신적 여정은 어떠한 경우이든 객관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유일회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10.

저자의 정신적 흔적의 일관성을 전제하면서 그 주제를 추출해 내는 작업 또한 저자의 일관성 만큼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짜피 언어를 통한 사고의 논리는 정신의 연속성을 제한적인 범주 내에서 유용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끊어서 연결시키는 잠정적 작업이다. 그 사고의 제한적인 범주 내에서는 철저하게 논리적 연속성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신은 무한하지만 학문은 일반적이어야 하고 대화는 상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문에 있어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논리적으로 비약을 배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은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사상가의 주제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는 해석작업이다. 그 해석작업은 최소한 논리적이어야 하며 소통적이어야 한다. 논리는 어떤 사상가가 표현한 본문의 단어와 단어 사이의 심연을 결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숙명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논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어떠한 최소한의 관계성도 설득력 있게 공유할 수 없다. 논리는 정신에 비해 비약적이다. 그러나 정신은 논리를 통하여 자신의 골격을 그나마 들어낼 수 있게 된다.


11.

논문을 쓰면서 왜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자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과학의 유일한 매개와 자료는 자기 자신이다. 자연과학의 탐구 매개는 정신의 외부에 존재한다. 자연과학은 현미경으로 세계를 보지만, 정신과학은 그의 마음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 느낌과 안목과 내면의 세계는 객관적 재현과 반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매개는 엄연히 정신적으로 존재하며 그 매개의 확대와 심화를 위하여서는 사고와 열정과 노력이 요구된다. 한 방울의 기름으로도 외면화 될 수 없지만 그 정신의 세계는 엄연하게 존재하며 특별한 방식으로 개인 내외부의 심리적 정서적 현실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논문에 있어서 그 주제에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정신적 노력과 열정과 사고의 훈련이 동반된 논문의 작업은 매우 큰 보람과 기쁨과 성과를 갖게 할 것이다.


12.

논문은 정신의 내면을 제한적으로 공간화 하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논문은 정신의 세계를 관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내면에 한 순간 타오르고 사라지는 정신적인 영감을 마치 그대로 박제로 만드는 만큼 제한적인 행위이기 하지만, 그만큼 다른 다양한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사상가들이 남겨놓은 영감의 박제들과 자신의 내면에 타오르는 정신적인 영감 사이의 끊임없는 교감의 과정이며, 그 사망의 관 앞에서, 그 사상가가 바라보고 느꼈으며 그 사상가의 정신을 육박해 들어갔던 불꽃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철저한 대면과 훈련의 과정이다. 그러나 테마를 다루는 논문의 논증 과정은 철저하게 냉철해야 하며 실사적이어야 한다. 정신적 영감은 기본적으로 설득력과는 무관한 내면의 활동이다. 그러나 정신과학은 심연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내면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일종의 학문적 게임이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실존적으로는 내면의 불꽃과 외면의 즉물성, 이 두 세계의 이질감을 자신이 직접 극복해 나아가는 작업이며, 학문적으로는 자기가 다루고 있는 사상가의 어느 단면을 집중적으로 주목하고 해석함으로서 그 주제의 현실 의미와 한계의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13.

언어로 정신을 담아낸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가혹한 형벌이다. 언어는 무한한 정신성과 현실적 보편성 사이의 계사繫辭이다. 논문을 쓴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전쟁상태. 영혼은 상시로 깨어있어야 하며 정신의 눈은 민감해야 한다. 사상에 대한 열정, 지혜에 대한 겸손한 존중, 논리에 대한 훈련, 비판적 안목, 그리고 주격과 목적격이 결국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는 정신과학의 운명을 감내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14.

나의 게으른 여름학기가 지나갔다. 새롭게 맞이하는 내일 월요일 방학. 콜로키움에서 수혈받은 열정과 깨달음을 가지고, 내면의 보람된 삶을 위하여, 수고하면서 기쁘게 이 여정을 헤쳐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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