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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6 (07:43) from 129.206.196.171' of 129.206.196.171' Article Number :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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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국가, 그리고 패권주의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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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Sueddeutsche Zeitung



요즘 생각하는 화두 중의 하나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어느 미국의 신학자에 의해 던져졌고 그 신학적 여파는 적지 않았습니다.

나는 외국의 동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 그들의 개성은 각각 존재하지만 특별히 그들이 별천지에서 떨어진 외계인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동료 알렉스를 만났을 때 너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는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간은 개체의 차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아주 자주 갖습니다. 그러나 그 개체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군락을 형성하고 역사적으로 민족의 한 단위로서 기능할 때 거기에는 개체의 차원에서는 발현되지 않는 어떠한 패턴이 새롭게 출현합니다.

단순화 하자면, 인간이 군락을 형성하여 세월 속에서 민족이 되고, 그리고 국가와 민족은 그들만의 고유한 패턴을 형성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개체의 차원이 아니라 집단의 차원에서 발현하는 생존의 전략과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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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민족과 집단의 차원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전략의 문법은 그 공동체의 구성력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이념을 지표화, 객관화 하며, 그 레벨에 상응하는 다른 공동체와의 상호 효율적 소통을 위한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 집단과 패턴의 출현 ⓒ 신학동네


그런데 꼭 이러한 민족과 집단의 차원에서 등장하는 패턴이 왜 현실적으로는 ‘패권’으로만 주요하게 자행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저는 갖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어떠한 역사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 질문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추상화된 집단의 최종단계인 국가 관계에서는 위에서 언급되었던 패턴이 하필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의 요소로만 기능하게 되는지를 주목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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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변이 가능할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견해는, 구성요소의 생존을 위한 패턴은 결국 다른 구성요소와의 경합 안에서도,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타 요소를 제어하고 장악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속성을 지닌다는 점입니다. 사실 적어도 서구의 패권으로 인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화와 생존권 박탈은 이러한 견해를 충분히 지지하는 사례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해명을 인정하면서도 하나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즉, 자신의 공동체를 위하여 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탈환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혜로운 전략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심입니다.

설사 국가단위에서 한 민족과 국가가 다른 민족과 국가를 패권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런지는 몰라도, 결국 더 추상적인 단위인 인류공동체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공멸과 파멸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의 고민이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소속감과 공동체의 뿌리와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국가단위의 전략을 넘어서서 인류공동체의 수준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진정 운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절박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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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예를 들어봅시다. 중국의 중화주의와 동북공정은 중국 인민으로 구성된 민족과 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단위에서 출현하는 일종의 패턴과 같습니다. 그 패턴의 관성은 끊임없이 주변국과의 마찰 속에서 중국이라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주변을 희생양 삼아 잠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패권에 아주 팽팽하게 우리 대한민국이 대면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과 미국은 겉으로는 공정한 거래행위를 통하여 우리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효과적인 교류를 일삼는 듯하지만, 제 시각 속에서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치열한 국가 간의 미시전쟁으로 보여집니다.

솔직히 우리 대한민국도 이 미시 패권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교류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지는 않습니다. 어떤 나라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집단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데 말이지요.

각각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때에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공유가 가능하지만, 국가적 단위의 교류 속에서는 이러한 넉넉한 여유보다는 어떠한 이익을 둘러싼 무한경쟁과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생존의 게임을 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아주 짙게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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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패권주의, 혹은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에 대항하는 대한민국의 지혜로운 태도란 무엇일까요. 어쩌면 개인은 도덕적이지만 사회는 어차피 비도덕적이기에, 그 패권의 현장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과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현실은 냉혹하게도 강자가 약자의 빈틈만 발견하면 공격하고 무참하게 밟아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구체적인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인류가 20세기 패권에 물든 그 역사적 그늘과 상처에서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경제를 재건하고 정치의 선진을 이룩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의 창조적 정신을 바탕으로 다방면의 실험을 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그 국가단위의 실험이 역동적이면서 창조적으로 가해지고 있지만, 더욱 더 우리가 견고해지면 우리민족에도 그에 걸맞는 시대적 무늬와 패턴이 등장하겠지요. 아니 벌써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패턴이 우리가 버겁게 직면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진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패권주의는 남의 희생을 통하여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고양된 문명과 거리가 멀 뿐더러, 공동의 지반인 인류공동체에게도 결국은 장애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변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패권주의에 대면하는 우리나라의 자세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우리나라, 작지만 단단하고 동아시아를 선도할 수 있는 문화의 강국이라는 거친 밑그림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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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인 사회를 향하여 ⓒ 신학동네



우리나라가 패권과 힘으로 승리하지 않으면서, 패권의 문명으로 점점 더 발현해 나아가는 듯한 오늘의 역사의 흐름을 오히려 우리의 문화와 지혜를 통하여 바꾸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흐름에 있어서 정치적 선진성, 경제시스템의 효율성, 그리고 문화적 창조성과 보편성에 관련한 한국의 실험들은 후퇴 없이 지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권을 쓴 나라 패권으로 다시 망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거사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오히려 우리의 고유하고 창조적인 패턴을 통하여 국가단위의 생존과 더불어 인류단위의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내용은 나나 여러분이나 각자의 자리에서 알차게 구성해서 만들어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엄연하고 냉철한 오늘날의 가설이 언젠가는 대한민국에 의해 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칠게나마 글을 남겨보았습니다.



링크 : 서프라이즈 (200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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