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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6 (08:10) from 129.206.196.171' of 129.206.196.171' Article Number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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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자본주의



기독교의 핵심정신은 나눔의 실현이다. 예수는 그러한 사랑의 나눔, 정의의 나눔을 삶에서 강조하였다. 나눔이 없이는 사랑도 없으며 정의도 설 자리가 없다.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사회적 평등은, 기독교의 기본정신에서 나온 한 사상적인 갈래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 기독교 문명은 바로 기독교와 맑스주의 사이의 상호 긴장과 갈등과 조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은 나눔이 아닌 이익 추구와 그로 인한 경쟁을 근간으로 한다. 여기에서 기독교 정신과 자본주의 사이의 쉽게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이 존재한다.

특히 한반도의 전후 이념의 공존과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외세에 의해 남한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모두 북한에 떠넘겨주고 세상에서 몇 안되는 가장 탄탄한 자본주의의 이념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자본주의라는 사상적 거리감은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사변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모순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근간으로 한 고양된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평등정신과 결부되어 현실적 교배가 이루어진 사회민주주의의 요소와는 무관해 보인다.

한국에서 가장 큰 자본세력인 삼성이 거대보수 정치권력인 한나라당과 결탁된 요즈음의 사건은 바로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가 심지어 그의 비판적 칼날이 되어야 하는 정치권력 마저도 뒷거래로 무마시켜 버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자본은 앞에서는 노동을 착취하고 뒤에서는 권력을 매수해 버린다.

이러한 거친 자본주의의 확산에 대면하여 현실 기독교는 그러한 조직적 마성에 대면하지는 못할 망정, 그 자본주의에 편승해 버렸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사실 기독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모임과 공동체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면하고 저항해야 하는 지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가 된다.

심지어 문명사적인 고찰에서는 자본주의의 사상적 발아가 바로 개신교의 등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관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예수의 정신은 만민의 평등을 지향하였으나,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집단인 기독교, 그리고 개신교의 등장에는 이미 자본의 긍정,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흥과 결부되었음을 암암리에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개신교 발생의 동기에 대한 지적인지 아니면 개신교가 양산한 결과에 대한 지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신교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탄생과 작건 크건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속성과 비판적으로 대립각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신중하게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

자본주의를 대면하는 신앙과 기독교의 태도, 그리고 과제는 나 개인에게, 그리고 그리고 대한민국의 신앙인과 기독교가 주목하고 숙고해야 할 아주 절실한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따르는 예수의 핵심정신인 세상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정의는 오늘날 자본주의라는 삶의 체제를 정면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근본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모든 인간이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보고,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라고 외쳤던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정신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평등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자본을 긍정하고 옹호하는 체제이다. 이 체제에서는 인간보다 자본이 우선시 된다.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모임이다. 특히 오늘날 이렇게 인간보다는 자본의 이익이 중시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교회의 독특한 과제가 요구된다. 즉 예수의 평등정신을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구성체는, 교회 안에서부터 불평등과 갈등과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자본주의를 저항하는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이미 불평등하지만, 교회는 평등을 몸소 실천하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민주적이 되어야 하고 서로 사회에서 얻은 가치를 나누어 공유해야 하며, 최소한 교회 안의 사회적 경제적 현실적 약자에 대해서는 교회가 책임을 지고 구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 안에서의 평등한 나눔은 단지 교회 밖을 향한 모델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도움이 필요한 교인은 예수가 말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오늘날 비인간화 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에 대하여 비판적 목소리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하에서는 예수가 말한 평등개념 보다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과 갈등이 더 증폭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 되면 될 수록 강자와 약자 사이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오늘날의 자명한 세계사적 사실이다.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잉여 이익을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공존과 공멸이라는 상이한 결과를 잉태하게 된다. 바로 예수는 인간의 물질(자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돈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그저 은유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의 구원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박애와 헌신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예수는 강조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자신은 한 치도 후퇴하거나 처세를 부리지 않다가 그냥 십자가에서 죽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이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그 체제 자체가 비인간적이며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몰고 간다. 그러므로 교회가 인간을 사랑한다면, 자본주의 아래에서 신음하는 다수를 사랑한다면, 최소한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의 평등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 문화적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대안적으로 찾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교훈과 삶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따르는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예수가 말한 평등정신이 기독교가 남긴 중요한 정신이라고 한다면, 불평등과 착취와 소외를 일으키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은, 식상한 태도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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