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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6 (00:03) from 129.206.196.57' of 129.206.196.57' Article Number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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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의 해석학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Identitaet und Relevanz des Glaubens (7-33)

콜로키움의 텍스트인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읽는다. 머리가 하얀 화이트헤드만 보다 몰트만의 글을 보니 그 감동과 공명은 더 컸고 빛났다. 형이상학의 언어에 실존이 함몰되다보면, 어느 교수님 표현처럼, 물이 다 마른 물레방아를 허망하게 돌리고 있는 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문은 삶을 조명하고 기여하는 노동이다. 신학은 더군다나 생명을 살리는 문법이다. 이에 언제나 인식과 참여의 해석학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전통적인 신론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60년대 전후의 황량한 세계사적 슬픔에 직면한 기독교적 실존의 고민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유용한 현실인식임이 분명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지만, 그 우리 또한 여전히 철저하게 '시공간'에 제한된 것들이다. 모더니티의 생명을 구가하지 못하는 수많은 현실을 간과한 채, 우리의 경험을 세계화 하고 일반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40년전의 몰트만의 세계를 읽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 40년전의 세계는 우리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동시성의 비동시성, 그 역설의 대지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우선 몰트만은 이 책에서 기독교적 정체성과 시대가 요구하는 상관성의 문제를 "십자가"로 성찰해 낸다. 그가 고민하는 현실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신앙인의 실존이 어떻게 험난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과의 연관성을 도모할 수 있을까? 라는 해석학적인 고민이다. 즉 정체성Identitaet과 타자와의 연대Solidaritaet mit andern의 관계에 대한 적실한 시대적 해석학을 그는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해석학의 단초를 십자가 속에서 발견한다.

물론 전통적으로 십자가의 문제는 신학의 핵심적 주제였다. 그렇다면 몰트만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 속에서 어떻게 "십자가"라는 해석학적 키워드를 조명하고 있는가? 그 조명은 어떻게 나의 정체성과 타자와의 연대성을 풀어나가는지를 해명함으로서 더 선명하게 진행이 된다.

그는 말한다. 곧 나의 정체성은 타자와의 연대성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동일성은 그 자체로 규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타자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이다(22).

그는 동일성의 철학의 난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동일성의 해석학은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만약 동일한 것들은 동일한 것들끼리 모인다는 식으로 정체성을 이해한다면, 거기에는 특별히 타자의 문제와 비정체성의 문제는 끼여들 소지가 별로 없게 된다.

그러나 몰트만은 이러한 동일성의 해석학이 결코 기독교적 핵심정신과 결부될 수 없음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해석학으로 기독교의 십자가 사건은 결코 설명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신의 자리로 남아있으면 되지 구태여 인간으로 내려오고 인간에게 몰려 십자가의 처형을 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은 동일하지 않은 인간을 향해 내려왔으며 인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피살당하였다.

그러므로 동일성의 논리에서는 문제가 되는 정체성과 참여의 딜레마는, 몰트만에게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이 자신의 동일성을 깨고 인간으로 내려왔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이들이 신과 동일화 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신처럼,  고난과의 연대성, 그리고 억압당하는 사람들과의 연대성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32).

바로 이러한 동일성의 해석학이 아닌 참여의 해석학을 몰트만은 십자가라는 상징 속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의 십자가의 신학을 탄생시킨다. 그에 의하면 십자가 신학의 원리는 오직 변증법적 원리임을 강변한다. 변증법적 원리는 동일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역설을 전제로 한다. 신성은 하늘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처형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신성은 높은 이들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과 의롭지 못한 이들에 의해 발견된다.

그러므로 몰트만의 십자가은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의 신학theologia gloriae에 대한 강력한 전향과 비판에서 출발한다. 신성은 아래로 내려오고 버림받은 것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을 들어 세운다. 하나님은 하나님없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하늘을 열어준다(33).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를 따르는 신앙의 실존은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린 그 분의 뒤를 따라야 한다. 하늘을 열고 그분이 땅으로 내려왔듯이, 세상에 갖혀 있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자를 향한 참여와 연대를 의미한다. 몰트만은 여기에서 본회퍼를 언급한다. 경건한 자들의 모임에서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어렵고,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음을 본회퍼는 역설했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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