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k zum Wissen





2007/07/10 (10:45) from 84.173.185.253' of 84.173.185.253' Article Number : 293
Delete Modify Geist Access : 8785 , Lines : 48
사회와 종교
Download : 20070710.pdf (73 Kbytes)






모든 생명은 일차적으로 환경을 자신의 시선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환경의 자기본위적인 해석은 몸을 가진 실존의 천형이기도 하다. 저 곳을 이곳으로 실현해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몸이라는 볼륨의 탄생이다. 개인적 단위의 생명이 이러하듯 사회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구현해 낸다.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들의 이러한 자기화가 집단적으로 결집된 공간이다. 거기에는 볼륨의 탄생을 위한 힘들이 모여 있다. 사회체계의 존재방식은 바로 이러한 힘의 응축과 집결에 있다. 그러나 모든 시스템이 지니는 자기재귀적인 성격은 언제나 자신을 다시 비추어본다. 그러므로 모든 시스템은 자신을 ‚거울’을 통하여 다시 비추어본다. 이 거울은 바로 존재의 자기재귀적 성격에 의거하여 출현한다.

모든 사회는 그러므로 이러한 거울을 통해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재귀적 인식이다. 이 재귀적 인식의 결과는, 마치 사회를 영원의 빛에서 바라본 인식과도 같다. 그러나 그 영원의 빛에서 바라본 인식의 근거는 사실 그 사회 안에 거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와 거울을 통해 창발된 ‚사회’ 사이의 역설관계이다. 이 둘은 비대칭적이다. 그리고 후자는 전자에서 출현했지만, 전자 안에서 증명되거나, 전자 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만약에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러한 자기재귀의 거울을 통하여 새로운 영상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존재의 재귀성은 존재 자체를 궁극적인 시선을 통하여 바라보게 하기 때문에, 존재는 그 시선 속에서 한계가 폭로된다. 사회는 그 거울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 속에서 바로 그 사회의 한계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한계는 결코 자신 안에서 그 근거가 검증되지 않지만, 자신으로부터 나온 예지적 성격으로서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많은 경우 사회의 우울로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한계이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적인 형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질료로 환원되지 않은 미증유의 형상과도 같다.   

종교는 이런 의미에서 사회의 우울이기도 하다. 사회는 체계 내의 복합성과 기능성에 충실하며 자족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만약 그 사회가 온전한 시스템이라면 그는 다시 자신을 거울을 통해서 재귀적으로 반성할 것이며, 그 영상은 바로 그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바로 그러한 경계에 대한 현시를 종교적 기능이라고 이해한다.

종교적 시선은 결코 사회적 체계로 환원될 수 없기에 사회적 기능의 차원에서는 이질적이며 불편한 것들이다. 그러나 종교적 시선은 체계 내부에서 미래를 향한 명시적 방향에 상응하는 암시적 방향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시선에는 사회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명시적 증빙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적 시선은 사회의 체계내적 원리의 변화와 교정을 암시적으로 요구한다.

사회체계 내에서 자행되는 모든 종교적 시선에 대한 폄하, 혹은 불편한 종교적 시선을 사회체계 내에 환원시키려는 시민종교적 노력은 사회와 종교 사이의 핵심적인 연관고리를 오히려 해체함으로서 종교의 순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종교적 시선이 주는 사회적 우울은 결코 그 사회를 저해하는 부적절한 기호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단위에서 확인이 안되지만 종교적 시선이 주는 메시지는 소위 우리가 궁극적으로 설정하는 실재를 종교는 특정한 방식으로 교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체계 내부의 요소적 진술은 실재에 대한 매개적 진술일 뿐이다. 그러나 체계의 정점에서 생성되는 궁극적 진술은 실재에 대한 비매개적이고 직접적인 진술이다. 그래서 그러한 진술은 실재의 전체상과의 교호 속에서 드러난 진술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진술은 사회체계를 향하여 종말론적이며, 어느 정도 구원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사회에 간섭하는 종교적 기호는 이런 의미에서 사회에게 큰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 즉 사회가 더욱 풍부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체계의 깊이를 직조하기 위한 가능성은 종교적 기호의 사회적 대처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과 사회의 우울증의 확대재생산에 의거하여 부적절하게 생존하는 유사종교가 존재할 것이다. 그 유사종교는 사회의 체계내적 반성능력을 통하여 투쟁의 대상으로 삼거나, 독자적인 종교적 체계의 역량 속에서 기형적 확산을 봉쇄시켜야 할 대상이다. 한 사회가 자신의 재귀적 반성 속에서 드러난 구원의 시선인 종교와, 유사종교를 잘 분화시키는 행위 또한 그 사회의 역량과 깊이에 의거한다.

만약 이러한 자기재귀적 관점에서 사회시스템과 종교시스템을 연계시키지 않고 종교와 사회라는 선험적 범주로서 실재의 체계를 접근한다면 이 양자가 공허한 기능주의나 맹목적인 갈등주의적인 관계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모든 체계에 대한 발생적 과정과 의미를 형태적 존립의 지평으로 환원시키는 오해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종교는 자기재귀의 거울이 보여주는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둘은 거울에서 완전히 겹친다. 그러나 사회의 관점에서는 거울을 통해 드러나는 종교적 시선의 차이에 대한 주목 속에서 그는 풍부함과 내적 강도를 획득한다. 사회에 있어서 종교적 시선은 증명보다는 믿음의 영역이다. 그 시선에 대한 사회적 수용 또한 체계내적 검증이 아니라 체계 자체가 믿음과 신뢰를 통하여 움직일 때에만 가능해진다.

그러한 종교적 시선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그를 향한 사회의 ‚신뢰’와 ‚믿음’을 통해서 소통이 가능한 것들이지 사회체계 내부의 합리적 근거를 통해서는 접근과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적 시선은 사회의 모험을 전적으로 요구한다. 만약 종교적 시선에 대한 사회적 소통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라 할 때, 그 사회는 체계의 생동성과 자생력이 결핍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사회의 우울로서의 종교가 주는 구원의 기호를 버렸으나, 체계의 유의미한 존속의 관점에서, 더욱 우울한 길을 향한 강화에 그 사회 시스템이 오히려 겨냥되어 있음을 뜻한다.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