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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1 (08:45) from 84.173.185.253' of 84.173.185.253' Article Number :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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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초월로서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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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서는 상향논리bottom-up-thinking의 관점에서 교회의 의미를 헤아리고자 한다. 우선 몇 가지 토를 달 필요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활세계와, 창조주의 피조세계가 결코 이원적이 아니라는 점.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이 인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의미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세기가 등장하면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자기재귀의 문제이다. 이 자기재귀Selbstreferenz라는 화두는 적어도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대면할 수 있는 문화적 성과이기도 하다. 자기재귀는 내가 나를 근거로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생물학의 진화론은 이러한 자기재귀의 원형적 성격의 한 측면이 특화된 가설이다. 그러므로 자기재귀의 성격은 진화론이라는 가설보다 더욱더 근본적인 실재의 본질을 터치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재귀적 존재라는 사실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 자신을 대상화 할 수 있다. 과거의 나를 응시하는 미래의 내 시선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래적 시선의 현존은 인간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폭넓은 지평 속에서 조명하게 한다.

종교적인 인간이란 무엇을 뜻할까. 아마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내 삶의 의미는 하루 하루 구현된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는 파편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재귀적 시선은 이러한 하루의 파편성에 내 삶의 궁극적 의미를 가두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그 하루가 아무리 나의 영혼과 육체를 충만하게 만족시켰다 하더라도, 내 삶의 궁극적 의미를 대신해줄 수는 없다.

사실 종교적인 인간이란 내 삶의 궁극적 의미라는 실존적 지평을 넘어서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지의 의미와 방향을 동시에 묻게 한다. 이 물음은 아마 인간이 존재할 때까지 마감되지 않는 물음이 될 것이다. 종교는 바로 인간과 사회의 자기재귀적 기능이 궁극적인 성찰로 이어질 때 등장하는 양식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렇게 유한에서 무한을 찾는 본성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이 무한은 어떠한 초지상적인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보고 그것을 끊임없이 넘어서려는 초월의 자세를 뜻한다. 인간의 문화는 그동안 다방면으로 분화를 진행시켜 왔다. 그러한 분화는 소위 새로운 가치체계와 생존양식의 진화를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류의 단위에서 그 한계를 넘어 그를 초월하려는 문화적 양식과 성숙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자기재귀의 특징은, 새로운 질서가 과거의 질서에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질서는 과거의 질서에서 출현했으나, 과거의 질서 내부에서 증명이 불가능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미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과거의 어떠한 요소로 환원이 불가능한 시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환영으로도 여겨진다.

이러한 자기재귀의 특징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의 문화와 삶과 정신은 그 본성상 계속 초월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롭게 출현하는 시선이 기존의 체제 안의 요소를 통하여 확증이 되지 않고, 또한 기존의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시선은 무상하게 잠식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새롭게 출현한 창발적 시선은 확증불능의 미증유이지만 시간 속에서 기존의 체제와 체계적으로 결부가 된다. 그 체계와의 완고한 결탁을 통하여 체계는 결코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

이는 값싼 진화론이나 전적으로 새로움을 논리적으로 근거할 수 없는 유물론적 사유로 오해될 것들은 아니어 보인다. 오히려 인간의 이러한 상향으로의 열망과 초월은 수백 만년의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서기 전후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메시지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적절하게 헤아리게 한다. 한번 일어난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은 과거로 회귀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과 인류의 영적인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도달한 하나의 소중한 결실과도 같다. 물론 개념적으로, 그리고 도그마적으로 섭리와 예비의 공간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진술할 수 있다. 그러나 상향논리의 관점으로 교회를 헤아린다면 다른 방향의 진술이 열린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영적인 자각 속에서 교회라는 공간은 인간이 찾고 발견한 가장 궁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세상의 질서만 가지고는 우리의 삶과 인류의 운명을 올바로 존속시킬 수 없다는 자각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현실적인 세상의 질서와 논리는 상식적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초월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는 체계내의 완고한 논리라고 한다면, 그것의 결핍을 보고 다시 초월하려는 시선을 가질 때 만나는 공간이 바로 교회라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실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세상을 넘어서기 위한 공간이기에, 세상에 진입한 공간이기도 하다. 교회라는 공간의 정당성은, 결코 세상으로부터 주워지지 않는다. 오로지 그것은 현존하는 세상의 한계 너머의 공간이며, 세상에서 증빙될 수 없는 공간이기에, 세상은 그 교회의 공간감을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의 공간은 끊임없이 저 건너편의 공간과 교호한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됨의 자리, 삶의 궁극적 의미, 그리고 세상의 미래와 희망을 고민하는 공간이며, 그것은 이미 초월적인 공간이다. 바로 그러한 공간이 교회인 것이다.

이미 우리가 초월을 한다는 것은, 초월할 수 있는 근거가 우리에게 있으며, 초월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이 실재에 구비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초월의 사건은 우발적이다. 그것은 불가해한 성격으로 우리에게 드러난다. 하지만 시간 안에서 시간을 넘어서고자 하는 우리에 있어서 이러한 초월의 과정이 우발적이고 불가해한 것들이며 확증될 수 없음은 오히려 유한자의 자연스러운 표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월이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명한 것이며 과거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된다. 역사에서 초월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역사를 품는 실재에서 자신의 공간을 드러내는 과정과 동일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초월하는 공간으로서 교회를 세상에 세우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은, 그 초월의 가능성의 공간이 이미 실재에 내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교회라는 공간의 인식과 그 존재론적 근거는 궁극적으로는 모순될 수 없다.

교회는 이렇게 유한한 세상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세상은 한 편으로는 그 자체의 관성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려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세상을 근거로 세상을 초월하려 한다. 바로 그 초월의 공간이 교회이다. 바로 그 교회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이 세상으로 확장된 공간임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다.

이러한 교회 공간의 초월적 성격, 그리고 현실에 공간이 구현된 내재적 성격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의 질서를 단호히 거스를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는 세상 안에 있으면서 교회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새 질서를 통하여 세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는 상호호환적일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의 질서를 품으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과 새로운 질서를 교회는 보고, 공유하고 살아내는 공간이다.

교회의 이러한 초월적 성격을 헤아려 볼 때, 세상의 질서와 타협하거나, 세상의 질서가 주는 상식마저도 체현하지 못하는 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적 공간이 아니며, 세상의 질서에 의거해 구현된 세상의 한 공간일 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구현된 교회적 공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교회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를 상대화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질서는 더 큰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는 거리가 먼, 세상만을 위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세상의 질서가 영원한 질서로 남기를 바랄 때 거기에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교회라는 공간에 대한 소망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본성상 인간과 인류가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진리의 빛과 구원의 빛을 찾아가는 존재임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의 왕국이 더욱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저항과 멸시가 아니라 세상을 더욱 더 거룩한 공간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공간과 우리가 소망하는 교회공간 이 모두는 실재의 통일성을 구유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와 사랑의 창조주가 피조한 세계이기도 하다.

교회는 영원히 이 생활공간이 거룩한 교회공간으로 변모하기를 위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또한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초월을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이 거하는 공간이다. 세상은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교회는 세상을 보며, 세상이 진리와 사랑이 거하는 하나님 나라로 변모하기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소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하는 교회의 공간에 참여하며, 개인과, 세상과 인류의 미래를 선도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교회의 세상을 향한 영적인 과제이며,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은 이를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실현해야 할 과제가 있다. 교회와 우리의 과제는 우리 당대의 짧은 역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은 영원한 시간에 비해서는 순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생명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시간이다. 언젠가 우리 인생의 태양이 가라앉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영체로 새로 덧입혀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세상의 초월로서의 교회가 지닌 그 뜻을 세상 가운데 체현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존이자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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