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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09:39) from 84.173.189.241' of 84.173.189.241' Article Number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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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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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는 특정한 둘을 매개하는 3인칭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시선 자체가 관계이다. 관계는 개인에게 1인칭적으로 기여되고 작동된다.  

2. 관계는 개체의 표상을 넘어선 객관적 사태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표상에 스며들면서 존재할 뿐이다. 내가 상대방의 관계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은, 관계의 관계일 뿐이다.

3. 그렇다면 관계 이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관계 이전에는 관계를 형성하는 객관적 가능성의 환경과, 관계를 확정하고자 하는 전-개체가 존재한다. 관계는 '저 밖'과 '이 안'이 결합되어 내면화된 주관적 사태이다.

4. 유한한 환경에서 유한한 관계가 나올 수 없다. 관계의 등장은 일종의 감축현상이다. 그러므로 관계는 관계를 잉태하는 무한한 전-개체적 요소에서 출현하는 유한한 사태이다.

5. 관계의 근원은 저 밖이지만 실현된 관계의 자리는 불치의 주관적 표상세계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저 자명한 관계들의 축조물은 허망하게도 나의 표상지평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주관적 허상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주관이 나에게는 직접적이고 자명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주관의 허상성은 적어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완고한 축조물이다.

6. 우리가 이해하는 사회는 이러한 관계들을 다시 추상화 한 중층적 축조물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사회관계를 총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우주론적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7. 관계는 내가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출현하는 현상이다. 몸이 관계를 만들고, 다시 관계는 몸에 섞인다.

8. 관계를 넓힌다는 것은 타인과 환경에 대한 몸의 공간을 확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해체일 뿐이다. 몸의 해체는 관계의 확장이 아니라 관계가 거할 의미공간의 상실일 뿐이다. 오히려 관계를 넓힌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영상'이 왜 이렇게 발현되었을까를 반성하는 행위이다.

9. 물론 그 반성은 '관계의 관계화'라는 추상화를 대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가 왜 이렇게 정착되었는지를 반성하는 작업은 자동적 추상화와는 다른 메타작업이다.

10. 드러난 표상세계에 대한 반성을 통해 '저 밖'과 '이 안'의 관계방식을 헤아리는 태도는 일종의 관계의 총체적 산물인 나를 이해하기 위한 현상학적 판단정지이기도 하다.

11. 나는 영원히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관계로서 존재할 것이다. 만남은 마찰일 뿐 동일화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각자가 끄집어 내어 축조하는 그 무한한 주관성의 세계들, 그리고 그 주관성의 탄생에 의해 고갈되지 않는 '저 밖'을 헤아려본다.

12. 여기에서 이제 핵심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이 안'과 '저 밖'의 관계를 둘러싼 세계의 탄생들 가운데 신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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