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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05:31) from 78.51.78.196' of 78.51.78.196' Article Number :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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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해석 - 바르멘 신학선언을 보며



0. 바르멘 신학선언의 시대사적, 신학적 의미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에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바르멘선언을 독특한 사회사적 관점속에서 재해석 하는 학자로 알려진 교회사 교수 Martin Greschat의 논지를 간략하게 헤아려보고자 한다.

1. 교회사가 Martin Greschat는 사회사적 관점에서 교회사적인 주제들을 매우 독특하게 접근한다.*) 그의 관점에서 바르멘선언은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충분한' 혁명적 선언이 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사적 관점에서 바르멘선언에 동조를 표한 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매우 보수적이거나 친정부적이기 때문이며, 구체적 지형을 고려해보면 이들이 당시 국가와 정치의 족쇄로부터 교회를 해방시키려는 철저한 '해방적 모토'로 바르멘선언을 수용하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 그에 있어서 여하한의 사회-역사적 맥락과 결부되지 않은 '신학화'로의 집중은 넌센스가 된다. 그래서 그는 에른스트 불프의 교회투쟁Kirchenkampf이라는 정의 - 물론 우리에게 상식적으로 잘 알려진, 교회의 교회에 대한, 교회의 국가에 대한 투쟁이라는 관념 - 에 대해 비판한다. 그에 있어서 바르멘선언이 출현하게 된 당시의 정치, 사회, 역사적 복합체의 성격을 단지 신학적 지평에서만 정의하거나, 옳은 신학적 판단과 옳지 않은 신학적 판단으로만 이분화 시키는 우를 불프는 범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3. 물론 모든 역사적 해석은 현대의 과거에 대한 상황화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 과거는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에 대한 해석에는 현재의 특정한 삶의 자리와 이해관계가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하지만 우리가 정치,사회,문화,역사적 단위들의 중층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을 단지 신학적인 지평에서만 환원시키고 감축시키는 교회사적 신학적 해석은 결코 정당한 해석이 될 수 없다.

5. 그의 관점에서, 잘 알려진 바르멘선언에 대한 해석들은 60년대 독일교회의 역사성과 특정한 준거를 마련하기 위한 틀로 기여된 '신학화'의 경향성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신학적 관점에서만의 한계를 넘어서서 바르멘신학선언이 등장하게 된 당시의 구체적 시대-정치적 자료와 문맥들을 검토해본다면, 그것은 '완벽하고 혁명적'인 선언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6. 당대의 신앙고백의 지형, 아니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신앙고백의 지형, 루터교, 개혁교, 연합교의 지형의 틀에서만 바르멘선언의 본문과 그 디테일한 강조점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은 Greschat의 관점에서는 지양되어야 할 요소가 된다. 바르멘선언의 등장 자체가 이러한 당대의 신앙고백의 지형이라는 작인으로부터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당대 국가사회주의와의 특정한 정치적 교착, 교회적 활동과 정치사회적 활동 사이의 분명한 단절, 그리고 정치적 공간의 침탈에 대한 교회적 공간의 저항 의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그저 신앙고백의 맥락에서만 바르멘선언을 접근하는 태도는 마치 6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녹색의 문맥(정치적 자유)과 9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녹색의 문맥(생태친화적 정치)의 차이를 '녹색'이라는 동일한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오류와 유사하다.

8. 이러한 Martin Greschat의 관점은 바르멘선언에 대한 맹목적 신학화, 그리고 당시의 정치사회적 지평을 고려하지 않은 교회사적 해석에 대하여 거리를 두도록 한다.

9. 우리는 바르멘선언을 작성하였을 당시의 바르트의 우스개 소리를 잘 알고 있다. 바르트가 프랑크프르트의 바젤호프 호텔에서 아스무센, 브라이트와 같이 초안 작성하였을 당시에 "루터교는 자고 있었고 개혁교는 깨어있었다"는 말을 후에 인터뷰에 하였다. 스위스 바젤의 인터넷 바르트 아키브에는 이 대목에 대한 바르트의 육성강연이 제공된다.

10. 그러나 당시에 다른 이들이 낮잠 자고 바르트가 혼자 글을 쓴 것은 사실은 아니어 보인다. 당시 다른 이들은 전화하고 바빴으며 바르트가 주로 본문을 작업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루터교의 관점이 지극히 협소하게 포함된 본문 내용으로 인해 사세와 알트하우스는 이후에 그들의 입장을 다시 요구한다.  

11. 소위 Martin Greschat의 문제제기는 '사건론'의 문맥을 담고 있다. 어느 특정한 사건Ereignis이 출현하였다는 것은 복잡다단한 지평들이 서로 교차를 이루어 출현하는 역사이지 단일한 지평속에서 환원될 수 있는 단편적 사물이 아니다. 즉 우리가 자명하게 생각하곤 하는 '바르멘선언'의 신학적 교회사적 의미는 그 배경과 전후문맥 속에서 다시 분화시켜 봐야 할 복합체적 사건임을 Martin Greschat는 헤아리게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바르멘선언이라는 해석대상을 이후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해석화 하고 상황화 했는지를 비로소 주도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게 된다.

12. 예를 들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할 수 있다. 부흥운동의 100주년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과 재현은, 구체적인 맥락을 지녔던 100년전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이라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정당성을 충분히 지닌 해석과 재현인가? 오늘날의 해석과 재현이 당시 부흥운동의 사회역사적인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오늘날의 해석의 가능성을 당시의 역사는 충분히 담보하고 있는가?

13. Martin Greschat의 문제제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의 사회역사적인 맥락과 전혀 결부되지 않은 신학적 상황화의 우를 반성하게 한다. 더 나아가서 어떠한 사건의 역사적 해석의 내용을 넘어서서 '그 역사적 해석과 재해석의 경로'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 해석학적 방법론과 안목을 제시한다.






히틀러와 제국주교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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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tin Greschat, "Die Bedeutung der Sozialgeschichte fuer die Kirchengeschichte", in: Historische Zeitschrift 256 (1993), 6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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