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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6 (10:14) from 85.179.181.187' of 85.179.181.187' Article Number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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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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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학적 통찰은 원형적 사유방식Denkweise의 도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각 분과의 신학적 통찰과 그 연구의 층위를 사유방식의 관점에서 '감축'시키면서 원형성을 성찰하는 것은 조직신학적 사유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2. 율법과 복음Gesetz und Evangelium이라는 화두는 요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세미나와 여러 주제들을 관통하는 신학의 핵심 문제이다. 조직신학에서는 케노시스와 아우토포에시스에 관련하여, 구약에서는 토라에 관련하여, 신약에서는 바울의 칭의론에 관련하여, 교회사에서는 루터신학의 등장, 그리고 바르멘선언을 둘러싼 개혁교/루터교에 관련하여 모두 접속되는 화두이다.

3. 사유방식의 근원성의 빛에서 율법과 복음의 문제를 접근한다면,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방식, 절대와 상대, 무infinitum와 유finitum의 접촉방식을 물고 있는 상당이 원형적이면서 핵심적인 신학적 개념이다. 신앙과 믿음의 핵심 문제를 둘러싼 신학적 질문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각각의 시대마다, 그리고 동시대 안에서 각각의 문맥에 따라 율법과 복음은 상이하게 강조되어져 왔고 그로 인한 다양한 해석공동체들이 등장하였다. 적어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건데, 율법과 복음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개념이었는가를 객관적으로 증명한 것들이 복음과 율법을 둘러싼 논쟁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특정한 시대의 조건 속에서 복음/율법이 시대상에 의거해서 요구된 면이 강해 보인다.

5. 즉 중요한 것은 복음과 율법이라는 규범과 범주라고 하기 보다는, 특정한 시대의 조건 속에서 그 시대에 걸맞는 '복음'과 '율법'을 시대의 문맥으로 끌어온 것이 역사이자 신학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므로 '시대의 자식'은 서자가 아니라 특정한 현재의 시대를 생생하게 대면하는 개별자와 독단자의 유일하고 독특한 문양이다.  

6. 냉철하게 보아서, 유대교-율법교, 기독교-복음교, 가톨릭-성화기독교, 개신교-칭의기독교라는 개신교적 관점의 정의는 소위 개신교 역사의 발현과 누적의 과정에서 독특하게 규범화된 내용이다.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기독교 내부에서 의미를 발휘할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적극적으로 진술의 대상(유대교,가톨릭)의 관점에서 순수한 동의를 가져올 만한 정의인지는 비교적 회의적이다.

7. 그러므로 우리 모두(유대교,가톨릭,개신교)는 율법과 복음이라는 두 범주를 공유할런지 몰라도 그 두 범주에 관한 특이한 강조점은 각자의 지평과 견해에 따라 달리 추출될 수 있다.

8. 이러한 관점은 - 소위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면서 그를 통하여 세상을 대면하는 - 사유방식의 기능과 경계를 묻게 한다. 이러한 기능과 경계에 대한 물음은 종교적 사유방식과 존재방식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다.

9. 틸리히가 조직신학Systematische Theologie 에서 명시한 존재론적 요소로서의 Form과 Dynamics 라는 개념은 이러한 율법과 복음이라는 종교적 사유와 종교적 존재범주를 더욱 더 구체적으로 조명하게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실존으로서 살아가는 개별자의 지평에서는 Form이 Dynamics 보다 중요할 때가 있으며, 그 역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존재론적 범주 사이에서 우리는 그네를 타고 있을 뿐이다.

10. 그러므로 이 양자 사이의 그네놀이를 둘러싼 특정한 한 방향의 맹목적 강조는 결코 성공적일 수 없는 태도가 될 것이다. 과거적-거시적 관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종교의 바운더리에서 한 방향을 강조했다는 것에, 현재를 가둘 수는 없는 것이다.

11. 전통은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체계 내부의 정당성의 과도한 승인을 위하여 기획-전승되어진 유사-전통은 주도면밀하게 반성될 필요가 있다. 전통과 현재는 대화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에서 전통과 대화를 하는 것이지, 전통이 현재를 자동기술할 수는 없는 것이다.

12. 율법과 복음은 이 점에서 두 차원 속에서 재해석의 과제를 지닌다. 하나는, 나와 내가 처한 집단과 종교적 전통은 역사 가운데에서 양자를 둘러싼 스팩트럼의 어느 자리에 정위되어 왔으며, 그 터는 어떠한 역사적 정당성을 지녀왔던 터였는지를 회상하고 해석하는 과제이다.

13. 다른 하나는 나와 나의 집단과 공동체가 경험하는 이 현재의 현실은 어떠한 정신적 매트릭스를 품고 있고 어떠한 대안적 시대정신을 요청하는지를 해석하는 과제이다. Dynamics를 상실한 Form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지평을 경험하고 있다면 바로 대안적인 방향은 당연히 Dynamics에 대한 요구와 소망과 실천일 것이다.

14. 오늘 우리가 생생하게 대면하는 현재에 대한 성찰과 현재로부터의 요구가 물려 있지 않는 율법과 복음에 대한 맹목적 강조와 강요는, 오래된 기원과 풍부한 유산을 지닌 지닌, 복음과 율법이라는, 종교적 통찰의 원형성과 생명성을 오히려 훼손하는 선택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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