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k zum Wissen





2000/07/17 (23:39) from 203.252.18.128' of 203.252.18.128' Article Number : 34
Delete Modify 전철 Access : 5788 , Lines : 103
김성민의 "융의 심리학과 종교"
김성민 저 "융의 심리학과 종교" 동명사, 1998.

제1부 칼 구스타프 융의 생애와 사상적 특성

1. 칼 구스타프 융의 생애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S. 프로이드(1856-1939)나 A. 애들러(1870-1937) 등 다른 어느 심층 심리학자들보다 종교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종교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보통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종교라는 단어에서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 등 어떤 특정한 종파를 의미하거나, 그 교단들에서 믿고 있는 신조(credo)를 가리켰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를 체험하고, 그 결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된 상태, 또는 변화된 의식에서 나오는 어떤 특별한 정신적인 태도를 의미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온통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어떤 강력한 존재를 만나고, 그 존재를 만난 다음에 삶이 변화되고,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가리켰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융은 오늘날 기독교는 현대인들의 삶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영혼에 깊숙히 스며들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현대의 종교적인 상황, 특히 기독교의 영적인 상황을 이렇게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근래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현대인들의 영적인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대인들의 영적인 고통을 달래주지도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종교의 가치가 극심한 도전을 받고 있던 지난 세기말, 어떤 것이 융으로 하여금 종교와 종교현상들에 그렇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했는가? 그의 삶에는 넓은 의미에서 종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체험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그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심리학 사상, 특히 종교적인 현상과 관련된 분석심리학 사상을 살펴보려면 먼저 그의 삶을 조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유년시절 (1975-1886)
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 콘스탄스 호숫가의 작은 마을 케스빌에서 쯔빙글리파에 속하는 개신교 목사 요한 폴 아킬레스 융과 그의 아내 에밀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밝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모의 갈등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면서 그는 더욱 큰 심리적 불안을 얻게 되었다.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부모의 불화이다. 그는 부모를 모방의 대상이 아닌 그들의 심판자와 같은 입장에서 그의 부모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 일종의 자아 팽창을 가져왔으며, 삶에 대한 내 신뢰감을 근본에서부터 허물게 만들었다."라고 융은 당시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과 떨어져 자기 내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자기애적인 내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의 어머니가 장기간의 입원으로 인해서 발생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부족이다. 이것은 삶과 여성적인 것과 따뜻한 것에 대한 상실을 의미하고 이 상실은 그에게 존재 심층은 연약하며 믿지 못할 것임을 일깨워 주었으며, 삶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감을 심어 주었다.
세 번째로 그의 외로움에 점철된 시절에 기인하여, 그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성격으로 형성되어 갔다. 융은 어린 시절 중에서 특히 밤을 무서워했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은 흔히 듣는 지하세계의 귀신들이 나오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로 그에게 밤은 공포의 대상이다. 밤의 색깔은 검은 색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목사로서 교회에서 집례를 할 때 항상 입는 가운의 색이 검정색이었다. 아버지 또한 긍정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는 밤-검은색-아버지-기독교 등 부정적인 이미지 고리에 죽음의 이미지가 덧붙여지면서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인가 위험하고, 신뢰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의 이미지에 죽음의 이미지가 덧붙여지게 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장례식 때 이루어지는 의식들 속에서 그는 죽음을 보았고 예수는 죽음을 가져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제수이트 파의 사제를 산길에서 만나면서 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경험했다. 제수이트파 사제들의 검은 망도와 검은 모자가 그에게는 죽음의 사자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유년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은 거대한 남근(男根)에 관한 꿈을 꾼 일이다. 이때 그가 꾼 꿈 속에서 보았던 남근은 보통의 남근이 아닌 제의적인 남근으로서 지하세계의 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꿈에 의하면 그는 이 무렵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하 세계의 신과 동일시하고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긍정적인 존재나 사랑할 만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산 사람의 신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신이었다.
열 살 되던 무렵 그는 자신의 내면에 또 하나의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하는 내면적 분열을 심각하게 겪는 경험을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이 생겼던 것이다. 이때부터 융은 자기 내면에서 또 다른 인격인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의 진정한 모습은 관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탐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적 분열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제의적 행태 속에 빠져 들었다. 이것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이고, 신비적이며, 자기애적인 제의였다.

2) 청소년기와 청년기 (1887-1900)
융이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열 두 살 때는 가히 운명적인 해라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가 학교에서 집에 오던 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치게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하신 "융이 건강하지 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야" 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는 삶의 과제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무렵 그는 신비적 누미노제를 체험한다. 그는 아름다운 성당에 배설물이 떨어져 성당이 무너지는 환상을 통하여 내면적 정신 에너지의 해방감을 경험했다. 이 체험은 자신의 열등감이나 초라한 이미지를 극복하게 해 주었다. 이 체험은 또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이 체험을 하기 전 그의 종교의식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면서 가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융의 아버지가 행하는 견진례를 융은 학수고대 하였다. 그러나 엄숙하고 장엄한 날에, 특별히 어떠한 종교적 현상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상실감이 피어 올랐고, 이를 계기로 융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더 깊이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때 융은 기독교를 떠난다.
중학교 시절, 융은 그의 내면에 그의 일상적인 인격과는 또 다른 또 하나의 인격이 들어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인격들에 이름을 붙였는데 융은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인격을 제 1인격, 실제의 모습을 제 2인격이라고 불렀다. 이때 그는 쇼펜하우어와 칸트를 읽었으며 많은 종교 서적도 읽었다. 그러면서 그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자연과학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종교 현상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를 전공하여 정신과 의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3) 정신과 의사로서의 활동과 실존적인 위기 (1900-1919)
이 시기는 융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 이유는 그의 심리학 사상이 이때 결정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때 그는 그의 심리학 사상에서 가장 결정적인 개념이 되는 개성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 시기를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00년부터 1913년까지 정신과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시기이고, 1913년부터 1919년까지는 프로이드와 헤어진 다음 그의 삶에 실존적인 위기를 겪게 되는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 당시 정신의학은 정신과 환자들의 내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융은 정신과 환자들의 증상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탐색하면서 치료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1903년부터 사람들의 연상 속에는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융은 프로이드와 만나게 되었고 그의 심리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융은 프로이드에게서 성(性)이 일종의 누미노제적인 실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융은 도대체 프로이드가 성적인 외상(外傷, trauma)이 모든 억압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었다. 프로이드 역시 융의 이런 반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융과 프로이드와의 결별은 융이 1912년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때이다. 이 논문 속에서 융은 그 나름대로의 근친상간에 대한 사상과 리비도의 변형에 관해서 역설했다. 융은 여기에서 성적인 것들을 상징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파악했다고 프로이드를 비판한다.
프로이드와의 헤어진 이후 융은 내면의 불확실성 속에 사로잡혀 지내게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룩해 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때 융은 많은 꿈들과 비전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스스로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어린 시절의 놀이인 돌맹이로 집짓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빠져 들어가곤 하였다. 그 속에서 그는 인간 정신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무의식이 가진 치유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더욱더 이 놀이는 사람들의 정동( motion) 뒤에 숨은 이미지의 의미를 깨달을 때 치유의 힘은 더욱 더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무렵 꾸었던 꿈속에서 인물들의 이미지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해독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과 더불어 각각 그림자, 아니마, 자기의 원형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이미지들이 그저 꿈을 꾼다고 해서 언제나 나타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아닌, 스스로 계시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융은 조금씩 인간 정신의 객관성의 영역, '영혼의 실제'에 관해서 알게 되었다.
1916년 어느날, 그는 그의 내적인 체험을 창조적으로 형상화시켜야 하겠다는 강력한 내면의 요청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개의 설교"를 썼으며, 만달라를 최초로 그리게 되었다. 융은 만달라를 그려가면서 그의 인격의 전체성이 점차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만달라는 인격의 전체성을 나타내는 자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융은 처음에 무의식이 그를 어디로 이끌고 갈 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을 신뢰하고 있었다. 1918년 말부터 1919년 사이에 그는 긴 어둠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아니마가 가진 파괴적인 힘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그의 무의식을 실현하게 되었다. 즉 개성화를 이룬 것이다. 결국, 융은 프로이드와 헤어진 다음에 그에게 찾아온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의 신비를 깨달아, 그 후 삶의 진실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4) 대가로서의 삶 (1919-1961)
융은 무의식의 요소들에 관해서 연구하면서 무의식에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 있는 서로 대척적인 힘들을 통합시키려고 하는 조정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결과 인간 정신에는 본래 전체성에 이르고자 하는 성향이 있으며, 이 성향은 인간 정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요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융은 인간 정신의 중심에 있는 이 이미지가 만달라 상 속에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깊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 무렵 중국학자 리처드 빌헬름(R. Wilhelm)으로부터 {황금꽃의 비밀}이라는 중국 도교의 연금술서에 관한 원고를 발견하고 연금술에도 깊은 관심과 연구를 하게 되었다. 만달라가 인간 정신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면 연금술은 이 과정을 계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프로이드와 결별한 후 실존적인 위기 상태에서 내면적으로 겪었던 체험들이 객관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 정신의 실체성과 역동성, 그리고 영원한 신비를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다.
1913년 말부터 1914년 6월 사이에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환상을 통해서 얻은 체험 속에서 그는 개인들의 꿈과 환상들이 집단적으로 겪어야 하는 체험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융에게 모든 사람들의 삶이란 그 사람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삶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 정신이 가진 구조의 보편적인 토대를 탐구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찾아 다녔다. 그 속에서 그는 원시적인 상태의 사람이나 현대인이나 정신 구조는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집단적 무의식은 사람들에게 있는 고태적인 잔존물(殘存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2. 융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1) 융의 부모
우리는 앞에서 그의 부모에 대하여는 조금 다루었다. 앞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융은 아버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로부터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융이 나중에 신화나 종교사, 신비현상에 관해서 커다란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에 있다.

2) 프로이드와 다른 사람들
융의 삶에서 부모 이외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프로이드이다. 왜냐하면 융은 프로이드에게서 아버지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와 동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갈등이 생겨나 결별한다. 연약한 아버지의 이미지 속에서 아버지를 능가하고자 하는 잠재의식이 프로이드 역시 능가해야 할 대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융과 프로이드는 서로 다른 정신적 유형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성향과 취향이 너무 달랐다는 사실이다. 또한 학문적 성향 역시 달랐다. 융은 인간의 정신적인 전체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신화나 설화 및 연금술 속에 나타난 인간의 집단적인 정신적 흐름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반면, 프로이드는 그렇지 않았다. 문화적인 차이점도 볼 수 있다. 프로이드는 힘을 잃고 사그러져 가는 기독교에서 허위구조를 밝혀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융은 종교의 상징 속에는 인간 정신 건강에 매우 유용한 어떤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그것들을 밝혀내려 애썼다. 그래서 융은 어느 누구도 종교 상징에 담겨 있는 누미노제적인 힘을 없애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이 상징들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재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생각에서 융은 종교와 현대성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프로이드 이외의 융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앙리 베르그송, 삐에르 쟈네, 윌리엄 제임스, 떼오도르 플루누아, 오이겐 브로일러,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있다.

3) 그의 아내 엠마 융과 토니 울프
그의 어머니에 대한 융의 불신은 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겨 놓았다. 그는 "영혼의 변환과 그의 상징" 속에서 사람들이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는 데는 자식을 삼켜 버리려고 하는 어머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역설하였다. 융은 무의식과 아니마의 부정적인 힘의 극복에 관해서 강조했는데 이 힘들을 극복하는 데에는 그의 아내와 토니 울프와의 서신 왕래 속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융은 여러 차레 남성들에게는 그들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줄 수 있는 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천부적으로 이것들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들이 자신의 개성화 작업을 위해서는 여성의 도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53. 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대신에 "성스러운 존재"(numen)의 힘과 개인적이고 신비적이며 직접적인 관계를 더 추구하게 되었다.

56. "모든 종교들은 그 나름대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이 각각의 삶의 주기를 넘기는 데 필요한 체계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제의를 통해서 종교적인 상징들은 신과 인간을 맺어줌으로써 그들을 도와 주는 것이다."

57. 융의 제자인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는 현대인들에게서 가장 큰문제는 그들이 믿음의 대상을 잃어버렸고, 삶의 회의가 언제나 영혼을 갉아먹고 있어서 현대인들이 공격적으로 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59. 종교는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종교 상징들을 현대 세계에 맞도록 재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61.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삶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등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이 있는데, 반대되는 양극 사이에서 긴장이 생겨나고 그 긴장 때문에 서로 다른 두 극 사이에 에너지가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융 심리학은 언제나 정신 에너지의 상보적인 관점에서 정신현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64. 융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은 인생의 전반기(융은 35세라는 나이를 중심으로 해서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들을 처리하느라고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내적인 목소리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육체적 도는 정신적인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신호들에 귀를 기울여 인격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개성화 과정이라고 강조하였다.

78. 인간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며, 임시적인 것이라고 해야 한다. 언제나 무의식에 휩싸일 수 있다는 말이다.

81. 우리에게 어떤 정신적인 작용이 생겨나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 몸으로 살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것을 우리 의식에 받아들여서 소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82. 개인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인간의 정신 속에서 콤플렉스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콤플렉스란 어떤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어떤 정신적인 내용들이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해서 모여있는 것을 말한다. 자연히 콤플렉스는 인간의 정신 속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하고, 그와 관계되는 내용들이 생겨날 때 자연스럽지 못한 반응을 이끌어내곤 한다.

83. "의식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무시당하고 사라질 때마다, 무의식에서는 그것을 보상하려는 작용이 생겨난다"(PM, p.180)

89. 그런데 융에 의하면, 각성에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던 우리 인격의 일부분을 각성에 의해서 받아들일 때, 우리 인격이 그만큼 확장되고, 그 전까지 우리 자아의 좁은 안목을 통해서 바라보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로운 세상에 대해서 그 전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 내면에서는 그 전까지 꽉 막혀 있으며, 사용되지 못했던 정신적 에너지가 다시 흐를 수 있게 되고, 그전보다 더 역동적인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그 전까지 어렵게만 생각했던 문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정신적인 각성에 의해서 새롭게 풀려난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

91. 무의식의 언어는 상징이다.

97. 나는 집단적 무의식내에 있는어떤 표상이 유전적으로 전해진다고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인류의 세습적인 재산 가운데서 어떤 요소들을 불러낼 수 있는 역량(capacite)이 유전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99. 집단적 무의식은 모든 창조성의 모태가 되는 본능의 원천이 된다.

99.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들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100. 사실, 사람들이 집단적 무의식이 가진 힘을 각성하고 그것을 그들의 정신에 통합시킨다면, 그것은 그들의 삶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 지혜를 깨닫게 하여, 그들의 삶을 무한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100. 개인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이 콤플렉스라면, 집단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는 원형(archtype)이다.

105.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놀랄 만한 작용을 하는 것은 원형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는 내용들이다. 때때로 영혼의 자동성은 사람들에게 내면적인 음성을 듣게 하거나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보게 한다."

105. "암시나 모방에 의한 것이 아닌 종교적인 회심들은 대부분의 경우 내면적인 어떤 자동성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회심들은 궁극에 가서 인격의 변화를 가져온다."

105. "의식이 원형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낼 때, 지속적인 변환이 생겨난다."

107. 자아는 어떤 일을 하는가? 첫째로, 자아는 한 사람이 그의 환경에 적응하게 해준다. 둘째로, 자아의식은 행동의 주체가 사물을 인식하게 해준다. 셋째로, 자아는 인격발달의 주체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넷째로, 자아는 콤플랙스나 원형 등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의인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 무대의 역할을 한다.

109. 자아의식이 정신의 전체와 동일시하려고 하면 동일시하려고 할 수록, 자아와 인간의 정상적인 본능 사이에는 골이 깊어진다. "권태란 우리 삶에 새로운 것이나 건설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주지 못하고, 아무 자극도 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 자신의 본능적인 뿌리와 단절되어 있을 때, 사람들에게는 소외감과 불안정감이 생기고, 내면적으로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Adler).

111. 어느 누구도 자기가 이웃 사람에게 투사시킨 그림자의 정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이웃 사람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시켰을 때, 그는 그의 특성이 더 밉고 더 참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각주 :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고집불통이고 독선적이라고 몹시 미워할 때, 우리는 우리의 그림자를 그에게 투사시켜 놓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무의식적인 요소들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시킬 때, 그 요소는 비정상적으로 과정되게 느껴지고 우리 신경을 몹시 거스르기 때문이다.

112. 그림자는 투사를 통해서 표출된다. 즉 자기에게 있는 어떤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람의 어떤 인격적 특성에 대해서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그림자에 대한 반응일 수가 있다.

1999/03/16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