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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17 (23:44) from 203.252.18.128' of 203.252.18.128' Article Number : 39
Delete Modify 전철 Access : 7013 , Lines : 33
시간아 너는 누구냐!
libertas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게 님의 아이디가 낮설군요. 아마 철학문화에서 뵌 것 같아요.
libertas라는 아이디만으로도 충분히 님의 매너를 느낄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이름도 알고 싶고, 관심사도 알고 싶어요.
여하간 저의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관심은 시간의식과 시간 자체의 관계설정입니다. 즉 의식의 직접적 여건으로서의 시간과,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하는 논리적 구성으로서의 시간 사이의 깊은 골을 어떻게 한 번 통합적으로 해명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저도 논의하고 싶은 것은 이 양자를 품고, 혹은 양자를 해석해 낼 수 있는 그 "변화(혹은운동, 생성, 그리고 소멸)"에 대한 우회적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벤트' 문제인데요.... 이것 아주 끈질기게 저를 괴롭히고 저를 헷갈리게 하는 화이트헤드의 <시간의 획기성 이론>epochal theory of time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한 '주석'일 뿐입니다. <시간의 획기성 이론>이라는 개념은 일단 제논의 페러독스에 대한 딱부러지는 이해, 혹은 사건론에 대한 전후 고찰 없이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노스텔지어의 자리에만 우뚝 서 있는 개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 님의 직관적인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할까요. 이 세계는 그 자체의 심장 박동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심장박동에서 파생되어 나온 존재들의 위상은, 이 이벤트에 비해서 부차적인 범주만을 수여받을 수 있겠지요. 혹은 이벤트의 계승을 계기 삼아 존재의 존재양식이 재편되기에 적어도 인간의 주체성의 선험성이나, 혹은 토마스아퀴나스류의 영혼(주체)의 불멸성을 논의할 수 있는 폭은 당연히 좁혀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우주의 박동으로서의 이벤트와, 그 이벤트를 바탕으로 구현되는 다양한 주체들의 주체화의 과정을 어떻게 나름대로 부드럽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견해 있으면 한 마디 건네 주시죠.

원래 동시성은, 화이트헤드에게서는 동시적인 것contemporaeousness이라는 개념으로 그 체계 안에서 포섭되고, 융에게서는 동시성Synchronicity에서 포섭되고 있습니다. 실은, 이벤트나, 시간론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화이트헤드이 동시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복잡다단하게 연루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적인, 혹은 공간적인 동시성은, 화이트헤드의 동시적인것과는 전혀 관계 없고 - 물론 내적으로 맞물려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 융의 동시성 현상에 대한 도식적 구분입니다. 어짜피 시공연속체개념을 전제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되는 개념설정이겠지요. 님께서도 공간적인 동시성은 이해가 된듯하는데 시간적인 동시성은 참 이해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가 1999년 저번 학기에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라는 논문을 김경재 교수님 세미나 시간에 발표했는데요, 공간적인 동시성의 현상은, 어짜피 미시세계의 지속 내부로 들어가면, 그 내부에서 인과율이 파기되는 경험사례와 과학적 증명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PR이라든지, 혹은 전병기 교수님의 지속분석이라든지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그 발표를 하면서도, 시간적인 동시성, 다시 말해서 미래의 시간에서의 사건을 현재에 동일하게 느낀다고 할 때 그 사건에 대하여 민코프스키시공체계의 도식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설명도 불가능하고, 이해가 불가능한 국면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논문발표 시간에 저도 그 문제에 대하여는 한탄조로,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커멘트를 붙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은 시간적 동시성을 확증할 수 없지만, 시간적 동시성의 가설을 이끌어낼 수 있는 데이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논문 파일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현재 그 논문이 교지를 통하여 나오면 한 부 건네드리든지, 아니면, 파일을 제가 구해서 올리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논문과, 화이트헤드의 인간이해라는 논문은 장회익 교수님에게 한 번 커멘트를 받고 착종된 관점이나 사유의 끄나플들은 애시당초, 교정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티븐호킹이 시간의 역사에서 남들은 4차원을 머리에 그리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3차원도 머리에 그려내기가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시공연속체에 대한 논의는 저는 개인적으로 복잡다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공에 대한 논의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시공에 대한 오류를 얼마나 지워나가느냐가 중요한 방향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이런 맥락에서는 무식하기 때문에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우주에 대한 진정한 해명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촉발점이 겠지요.

생각이 닿는데로 쓴 조잡한 글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이 게시판에 좋은 이야기 건네주세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인상적인 글 한 줌 아래에 남겨보겠습니다.


It is impossible to mediate on time
and the mystery of the creative passage of nature
without an overwhelming emotion
at the limitation of human intelligence.


A.N.Whitehead, The Concept of Nature

1999/06/28

http://theology.co.kr/wwwb/CrazyWWWBoard.cgi?db=theme&mode=read&num=522&page=3&ftype=1&fval=%c0%fc%c3%b6&backdept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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