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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3 (18:44)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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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13] 창조신학과 자연신학을 둘러싼 창조 이해
00.04.13

Welker, Schoepfung und Wirklichkeit

작년 9월에 하이델에서 가장 큰 신학서점
꼬페니우스 폐점을 계기로 50프로 싼 가격으로
새 책들이 팔렸는데, 정말 불티나게 팔렸었다.
나는 늦게 가서 주은 책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전집 몇 집과 그동안 한국에서도 생각이 있었던
단행본 약 30여권을 줏을 수 있었다.

독일이야 도서관 시스템이 잘 되어서
효율적으로 지식과 정보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불쌍한 한국, 특히 신학은
자료를 손수 구입하고, 관리해야 하는 측면이
이곳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이곳에서 나오는 생생한
신학적인 소스들을 (이게 전부라고 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독일신학의 똥배짱만 배우는 시간으로 삼는..)
한국에서나 다른 곳에서는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기에, 조금은 부지런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때 구입한 책중에 한권이 벨커의 창조와 현실성이다.
벨커의 디서타치온 논문인 하나님의 보편성이라는
저서는 말 그대로 아예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신학화하는데 주력한 책으로 보인다.
며칠 전에는 벨커의 애제자인 슐레 박사를
우체국 앞에서 만났다.
저번 학기에 영어세미나 문화신학을 들었기에
잘 알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여러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그 박사는 벨커 신학의 독특성을
이야기 해주었다.
다음학기에는 본회퍼에 대해서
세미나를 연다고 말해주었다.
한국에서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세미나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그 책이 본인이 하이델 공부하러 들어왔을 때
나왔던 책이고 시간이 많이 갔고
그사이에 벨커교수의 많은
신학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창조와 현실성이라는 책은
그 이후의 여러 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자리에 있다고 보여진다.

벨커의 저 책에는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
그리고 신학적인 의미의
창조가 무엇이냐를
창세기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조금은 새롭게 선보여주고 있다.
벨커의 아이디어 밑변에는
과정신학적인 모티브인
신과 세계의 상호 주고받음
그리고 창조성 자체가
궁극자의 범주로 놓여져 있다는 측면
(이것은 조금 신학 안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복잡한 면이 있지 않을까)
이 적극적으로 개진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성! 하나님의 주권
여기에 그간의 창조신학이 많이 포인트가
있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세상에 대한 반응의 영역과 반응의 모티브에
대해서 벨커는 새롭게 추적해 들어간다.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해를 펴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반론에 대해서 재반론을 하는데
저번학기에 들었던 이야기,
즉, 성서안의 추상관념을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지가 그대로
토론에서 빚어지는 추상관념과 오해에 대한
분석과 재반론에 끼어 있었다.

즉 이미 추상과 구체에 대한 칼같은 화이트헤드의
묘안과 해법을 벨커는 바라보았던지라
반론과 토론의 과정에서 그 내용을
적용하고,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한 10여년 20여년 정도 화이트헤드의 주요한 사상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지적으로 체화하고 적용하고
신학적으로 비판해 나아간
성숙의 흔적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것도 본문을 정리해서 읽어 나가고 있으니
앞으로 꾸준히 본문과 문제점, 궁금한 것들을
여기에 올릴 필요가 있겠다.

벨커의 문장은 스승 몰트만보다 훨씬 어렵게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출현한다.
창조에 대해서는 링크가 또 대가이므로
Schoepfung 이라는 링크의 저서를
꼭 탐독해 보고 싶다.

창조, 우리 세미나 시간에도 많이 고민했었던 주제가
연관되어 있다.
7일간의 창조이냐, 아니면 계속되는 창조이냐.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관련성 등등...

그러나 벨커는 어설픈 자연신학과 창조신학과는
다른 자리에 자신이 서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것은 성서에 대한 바탕과 주석을 삼지 않고 있는
매우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시대흐름에 그저
편승하는 일부 자연신학과 창조신학에 대한
논의에 한편으로 선을 긋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도 계속 읽고 있으므로 더 읽어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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