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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1 (03:58)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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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 정교회, 개신교
독일 개신교는 그간 정교회와의 관계회복과 증진을 위하여
여러 방식으로 대화와 협력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접근에는 여러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종교적 갈등과 분쟁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전개되는 여러 시대적 과제들을 그저 종교적 반목
속에서 영원히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동전선을
펴 나아가려는 시도로 나에게는 다가왔다.
며칠전 티브이를 며칠동안 장악했던 기사는
바로 교황의 정교회와의 만남이었다.
정교회에 대한 경험은 학부시절 박근원 교수님의
강의를 통하여서 밖에 갖지 못했지만
여기에 와서 사귄 많은 친구들이 정교회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정교회는
많은 관심과 이해의 대상으로 자리잡혀졌다.
아래의 글은 한겨레 21에서 교황의 정교회와의
만남을 분석한 글인데 관점이 정치적 이해관계의
측면을 주로 해명하였고, 종교의 세계화라는
조금은 새로운 방식의 해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한 글이다.
그에 비하여 종교적 도그마 때문에 불교를 때려잡으려 하는
기독교의 맹신적 자세와 그에 관련한 여러 사건들은
너무나도 구태의연한 발상과 동기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은 분명 불교라는 커다란 우리네의 뿌리와 기원과 종교적
역사를 기독교가 제대로 해명하고 연관을 짓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을 기독교의 홈그라운드로 생각하는 것 만큼
근시안적인 이해가 없다는 것을 정작 여기
기독교의 홈그라운드에 와서 느꼈기 때문이다.
이곳은 기독교 이외에는 종교가 거의 없다.
교회의 날Kirchen Tag이 한달 후에 프랑크프르트에서
열리는데 그 행사 광고가 티브이에 버젓히 나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토요일 저녁만 되면
기독교방송이 아닌 제1의 독일방송 ARD에
목사님들이 나와서 설교 비슷한 것을 한다.
그리고 신학적인 토론이 자주 자주 나오고
며칠 전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강의하시는 신학교수님도
티브이에 나와서 토론하는 것도 보았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종교와 역사가 얼마나 서로
얽혀 있고, 그러한 영향사들이 지금까지
계속 지속적으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교권의 흐름을 역사의 맥락에서
교회사의 맥락에서 짚어내고 현재의 의미들을
발견해 나아가는 눈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이 글에서는 나오지 않은
카톨릭과 개신교의 현재 지형들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들었다.






한겨례 21 [ 움직이는 세계 ]  2001년05월15일 제359호   


동방에 눈돌리는 교황의 야심



노구 이끌고 그리스·중동에서 평화 제스처… 이면엔 동구 가톨릭 세력 확산을 위한 포석






사진/ ‘앙숙’의 화해. 그리스정교회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GAMMA)


아테네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그리스의 상징인 올리브가 든 바구니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교황은 의례적으로 행하던 의식인 도착시 땅에 입맞추는 것조차 포기할 정도로 그리스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했다. 또한 그리스정교회쪽에서 먼저 요청하기도 전에 교황은 공항연설에서 과거 가톨릭신도들이 정교도신도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줄 것을 하느님께 기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교황의 겸허한 사과에 그리스정교회의 대주교 크리스토돌로스는 박수로 응답했다. 이로서 천년 동안 앙숙처럼 지냈던 가톨릭과 정교회의 관계가 조금씩 녹는 조짐을 보였다.


러시아 ‘입성’ 전초전


동서의 기독교가 신학적인 이유로 1054년에 결별한 뒤 그 골은 계속 깊어져왔다. 1204년의 십자군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수많은 인명의 손실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의 손실을 가져왔으며 끝내 비잔틴제국이 오토만제국에 정복당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가 터키에 의해 400년간의 긴 식민지지배를 당하게 되는 역사적 출발이 바로 십자군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었기 때문에 그리스국민들의 반가톨릭의식은 뿌리깊게 박혀왔다. 전체인구 중 96%가 정교회신도인 그리스에는 약 2만명의 가톨릭신자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은 서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이어서, 그리스인들 중에서 가톨릭신자는 극소수이다. 따라서 교황의 그리스 방문은 그의 개인적인 공식순방이유였던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여행으로서는 너무나 큰 부담을 안은 것이었다. 고령의 나이에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역력히 드러나는 가운데서도 그리스라는 환영받지 못할 나라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대주교의 언론보좌관인 콘스탄티누스는 “교황의 순례여행이라는 것은 사실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그리스를 찾은 진정한 이유는 러시아방문을 위해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황이 다녀간 바로 다음 날 그리스의 대주교 크리스토돌로스는 러시아로 날아가서 교황의 러시아방문을 협의하고 돌아왔다. 교황의 러시아방문은 사실상 6월에 예정돼 있으나 그 성사여부가 불분명했다. 이에 바티칸에서는 그리스정교회의 도움을 얻어 러시아방문을 성사시키는 것을 이번 방문의 최대목적으로 삼았다(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그리스정교를 믿어온 국가다). 사실 많은 그리스정교회 신부들과 수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황이 방문한 목적은 그리스라는 나라 하나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넓은 대륙을 염두에 두었다. 발칸지역과 동유럽을 제외한 전세계에 세를 확장시켜온 가톨릭으로서는 동유럽으로 그 세를 확장시키기 위한 최초의 단계로서 정교회세계의 반가톨릭적인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교황의 사과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추상적인 사과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정교회 소속 수도승들과 수녀들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교황의 방문이 있던 날 약 150명의 그리스정교회 수도승들과 수녀들은 교황의 구체적인 사과와 현실적인 보상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그리스정교회에서 요구했던 것도 사실상 가톨릭쪽의 추상적인 사과보다는 실질적인 보상조치였다. 그 실질적인 조치는 바로 가톨릭이 정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구권에서 교세확장노력을 중단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약속받은 것이 없다. 정교회는 가톨릭이 시도하는 교세확장을 동구권에서 중단시켜 이곳에서의 안정적인 종교적 지배를 원하고 있다.


정교회 교인 학살의 책임은?





사진/ “교황은 실질적인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 정교회 수도승들이 교황의 ‘추상적인’ 사과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바티칸은 이미 1700년 전에 로마제국의 기독교국교화를 통하여 서유럽을 제패한 이후 끊임없이 동유럽을 넘봐왔다. 기독교가 처음 시작될 당시부터 약 1천년간은 기독교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로마 등 다섯개의 대교구가 있었다. 로마제국을 국교화한 뒤 로마교회는 이곳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세운 교회라면서 다른 교회보다 더 높은 권위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교구에 불과했던 로마교회가 갑자기 교황제를 만들고 가톨릭의 중심으로 나선다고, 다른 교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할 리 만무했다. 동서교회가 분리되고 나서 십자군원정으로 동방교회를 무력으로 쓰러뜨리려는 시도가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나타났다. 원래 십자군원정은 성지탈환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됐지만 그 내용은 동방교회의 멸망이었다. 소피아성당의 유린과 대도서관의 방화, 수많은 정교도들의 학살 등은 이미 계획된 전쟁으로 역사가들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1차대전 이후 정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산주의화하고 로마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본주의국가로 남으면서 동서교회의 대립은 동서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즉 냉전구조의 재생산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의 분리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많은 기독교 역사가들이 의혹을 가지고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가, 가톨릭교회가 히틀러와 협조하여 동구권의 정교회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교황방문 중 그리스정교회에서 요구하려던 사과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2차대전중에 벌어졌던 80만 세르비아정교도들의 학살에 대한 것이었다. 2차대전중 독일나치군은 크로아시아(옛 유고슬라비아)에서 가톨릭 신부들을 각료로 내세워 약 80만의 세르비아인(정교도)들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의 언론보좌관인 콘스탄티누스는 80만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학살건은 사실상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가톨릭과 매듭지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고 밝혔다.

최초로 회교국가를 방문했던 교황은 시리아방문중 연설을 통해 다른 믿음에 대해 참을성을 가질 것을 호소했다. 그동안 구원을 위한 오직 한 길만을 강조하여 다른 종교들을 모두 이교도로 배척해왔던 가톨릭의 ‘수장’이 다른 종교, 그것도 적대적이었던 회교국을 방문하여 이슬람사원을 참배하는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교황이 시리아방문에서 받았던 대접은 아테네에서의 그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는 교황방문을 계기로 중동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아보려는 시리아정부쪽의 계산과 기독교의 유일한 지도자로서 인정받으려는 바티칸쪽의 의도가 맞물려 거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중동의 평화협상이 7개월째 지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충돌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진 시점에서 바티칸의 시리아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지난 3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바티칸쪽에서 시리아에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했거나 평화협상에 대한 중대한 물밑협상들이 오고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국제정치전문가는 바티칸의 아테네방문과 시리아방문, 그리고 6월의 러시아방문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그는 교황의 방문을 완전히 정치적인 방문으로 보면서 바티칸의 러시아방문은 전통적으로 회교권과 냉전시대부터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동평화협상의 협조를 얻어내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종교도 ‘세계화’한다


물론 교황의 방문을 단지 정치적인 시각에서만 해석하기도 어렵다. 교황의 우먀드모스크의 방문과 회교지도자들과의 만남은 종교도 세계화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톨릭, 정교회, 회교, 유대교 등과의 만남을 보여준 가톨릭교황의 여행은 앞으로 인도의 힌두교지도자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어 곧 세계도 초국적독점자본처럼 초국적독점종교가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았다는 예견도 가능하게 되었다.

고대시대 인류가 국가라는 기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는 종교제사장이 국가의 수반을 겸했다. 바티칸의 교황과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와의 만남, 그리고 교황과 회교도지도자와의 만남은 다시 한번 ‘인류의 종교성’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교황이 다녀간 뒤 아테네 시민들의 반교황적인 분위기가 많이 약화된 것을 통해 만남밖에 다른 갈등해소의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아테네= 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http://www.hani.co.kr/section-021019000/2001/05/0210190002001051503590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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