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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30 (17:34)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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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08. 08]  5. 신학은 애시당초 언제나 에큐메니칼적이야!








다섯번째, 신학은 애시당초 언제나 에큐메니칼적이야!


1.

내가 독일에 오기 바로 전에 나를 많이 지도해주신 교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 “신학은 애시당초 근본적으로 언제나 에큐메니칼적이야.” 1년 여의 시간이 지났는데, 이 말씀은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중한 진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6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의 대학에서 신학을 그저 이론적으로만 공부하였다. 나는 현재 교회공동체가 배려하는 교환프로그램과 연관하여 세계교회협의회의 추천과 독일개신교의 디아코니아 재단의 지원으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하고 있다. 나는 교환프로그램을 통하여 나의 신학적 연구를 심화하려는 뜻을 가지고 독일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뜻은 결코 나의 온전한 뜻대로 이루어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여기에서 기대하지 않은 상당한 변화를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전의 학업과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경험들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2.

나는 한국교회와, 그리고 여기 독일교회에 대하여 느낀 바에 관하여 간략히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단지 백년의 전통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백년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영역에서 기찬 성장을 이루어왔다. 어쩌면 한국인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울만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회는 다른 어느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많은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기독교가 점점 쇠락해져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몇몇 비판적인 신학자들은 이제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그리 큰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 한국의 기독교에 대하여 한국의 교회와 신학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독일의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렸을 때, 나는 교회당의 텅텅 빈 자리들, 그리고 교회의 벽에 걸려 있는 많은 무덤의 비석들을 보고 매우 놀라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인가 머리를 때리면서 이런 느낌을 문득 받게 되었다 : “혹시 내가 주소를 잘못 찾아 기어들어 온 것은 아닌가?”

3.

물고기는 물 안에서는 물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이와 정 반대로 나는 기독교의 근원인 독일과 유럽을 찾은 이후에 한국의 기독교가 독일교회의 상황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선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텅텅 빈 교회에 대하여 놀라워 하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나의 관찰은 매우 표면적인 관찰에 불과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독일의 개신교(EKD)가 많은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교회들, 그리고 교회 조직들과 더불어 매우 조화롭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한국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1/2)


Theologie ist grundsaetzlich immer oekumenisch!

1.

Bevor ich nach Deutschland gekommen bin, hat mein Professor von dem ich sehr viel gelernt habe mir gesagt : Grundsaetzlich ist Theologie immer oekumenisch. Ein Jahr ist vergangen und dieses ist viel wichtiger, als ich gedacht hatte.

Waehrend 6 Jahre lang ich an der Universitaet in Korea Theologie nur theoretisch studiert. Im Rahmen eines Kirchlichen Austauschprogramms studiere ich jetzt an der Universitaet Heidelberg durch die Empfehlung des Oekumenischen Rats der Kirchen und mit der Unterstuetzung vom Diakonischem Werk der EKD. Ich kam nach Deutschland mit dem Plan durch dieses Programm meine theologische Forschung zu vertiefen.

Aber das ging alles nicht nach meinem Wunsch. In meinem Leben trat eine unerwartete Wendung ein. Ich habe viele neue Erfahrungen erworben, die ich mir vorher nicht vorstellen konnte.

2.

Ich moechte erwaehnen, was ich an der Kirche in Korea und in Deutschland gefuehlt hat. Das Christentum in Korea hat nur 100 Jahre Tradition. In den 100 Jahren sind aber auf vielen Gebieten des Christentum in Korea ueberraschende Fortschritte gemacht worden. Es ist kein Wunder, dass ein Viertel der Koreaner Christen geworden sind. Die Kirche in Korea hatte viel Leidenschaft und Energie, die wo anders nicht mehr gefunden werden konnte.

Aber ich habe schon lange den Eindruck, dass das Christentum in Korea immer schwaechlicher geworden ist. Die koreanischen kritischen TheologInnen meinen, dass das Christentum in Korea fuer die Zukunft keine Hoffnung mehr hat. Um unseres Christentum sind Kirche und Theologie in Korea ernstlich besorgen.

Als ich das erste Mal an einen Gottesdienst in Deutschland teilgenommen habe, war ueber die leere Kirche und die vielen Grabsteine in der Kirche ueberrascht. Augenblicklich spuerte ich, dass ich meinen Wohnsitz falsch gesucht habe!!

3.

Der Fisch weiss nichts von Wasser, wenn er einfach im Wasser bleibt. Umgekehrt erkannte ich es erst, nachdem ich nach Deutschland und Europa als der Wurzel des Christentums gekommen bin, dass die Kirche in Korea von der Kirche im deutschen Kontext lernen kann.

Natuerlich war ich erstaunt ueber die leere Kirche. Aber meine Betrachtungsweise war sehr oberflaechlich. Nachdem einige Zeit, habe ich entdeckt, dass die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mit verschiedenen Landeskirchen und kirchlicher Organisationen trotz mancher Unterschiede einig ist. In Korea waere das undenkbar.    (1/2)





탄피 1.

이 글은 디아코니아 재단의 사빈네 비그만 목사님이 나에게 요구한 두 페이지 짜리 짧은 글 가운데 일부이다. 조만간 약속된 기한에 맞추어서 보내드려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두 페이지 가운데 한 페이지를 작성하였다. 제한된 공간에 생각을 정련해야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거기다가 외국어로. 나는 한국교회와 독일교회의 스케치를 하였고, 다음 페이지에는 독일교회의 저력이자 전국적인 단위로 진행되는 디아코니아 시스템을, 개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국의 디아코니아의 모습과 비교하고, 독일개교회의 교회의 날, 세계기독교협의회의 목력추방운동 10년사업, 그리고 정교회와 개신교와의 관계도모를 에큐메니칼한 시선에서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이 두 장 짜리 글이 어떤 곳에서 출판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왕 언니가 시키는 것이니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탄피 2.

디아코니아는 독일개신교에서 주도하는 국내외 사회봉사를 위한 전국적인 시스템이며 교회 안의 선교를 넘어서서 교회 밖으로, 사회를 향한 각종 사회봉사 및 여러 복지를 위하여 노력하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진 교회이다. 한국교회도 이제 디아코니아에 많은 관심이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가 개별적으로 디아코니아에 상당히 열성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교회적인 방향과 진단에 머물러 있는 것도 또 한편의 진실이기도 하다. 일단 우리나라는 너무나 혼재한 교단의 분열 때문에, 모든 교단이 독일개신교(EKD) 안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조화롭게 일들을 해나가는 독일개신교, 그리고 거기에서 진행되는 디아코니아 시스템을 쉽게 모방할 수도 없고,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따라갈 필요도 없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사명을 신학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또한 효율적으로 미래 한국교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보여지는 이 사명을 조직적으로 구상하는 작업은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정교회의 전통에서 온 친구들이 디아코니아를 보고, 디아코니아학을 공부하고, 놀라워하고 기뻐해하지만, 정작 다시 정교회의 전통 안으로 들어가서 황량한 그 터전에서 이 자산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스러운 고민을 들었을 때이다. 한국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더군다나 정교회라는 상당히 무거운 종교적 지평을 여전히 안고 있는 분위기에서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교회는 여러모로 좋은 여건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탄피 3

독일어 본문을 같이 올렸으니 더욱 좋은 표현과 생각을 누군가가 지적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뭉실뭉실한 한국생각에서 독일어로 다시 문장을 뽑아내어 작문하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고, 이게 외국어의 한계인가보다. 직접 생생한 독일어가 머리통을 따면 그저 좔좔 참깨 쏟아지듯이 흘러 나왔으면.

탄피 4

밑의 친구가 답장을 올린 것을 가까스로 이 글을 올리기전에 보았다. 잘 생각해서 좋은 대답이 나오기를 바란다. 요즘 책 읽다 보니까 판넨베르크 그리고 몰트만도 바르트를 여지없이 까고, 특히 벨커가 자기 지도교수 몰트만을 까는 대목에서는 참 이상스럽게도 멋적은 감동을 받았다. 서로 머리통을 들여대면서 진리를 찾는 이들의, 조용하지만, 거친 숨소리들을 듣고 나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았으니 죽어도 자기 소리를 그렇게 지껄이는가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분들에게 배울 것이 아직은 훨씬 많은 젊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동료들의 한 줌의 질문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모른다. 인터텍스튜얼 라이팅의 긴장과 묘미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의 생각에 걸려 넘어져서, 혹은 남들의 생각을 넘어서,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질문들을 기꺼이 받아내면서 끌고/끌려 가야 하는 것이기에.

탄피 5

그간 십년 사이 기독교사상에 원자력발전의 문제에 대하여 자주 언급된 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원자력발전, 이것 상당히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는 며칠 전 그 원자력발전에서 활용되어 쏟아지는 엄청난 증기들 사이를 그저 뛰어다녔으니, 그 쓰고 남은 온수와 주위의 여러 핵 관련 쓰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고기허리가 휘어버리고, 무뇌아가 나왔는데 말이다. 내 하부단위의 세포들은 벌써 저 냄새도 안나는 원자력에 아예 씨가 말라 버렸을런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원자력발전 의존국가이다! 물론 석유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이유도 있지만 50프로의 수치는 가히 상상 이상이다. 독일은 2020년까지 원자로의 원칙적 전면폐기가 법으로 통과가 되었다 한다. 선진국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이 핵 쓰레기 정말 심각한 골치 덩어리이다. 인류는 완전한 폐기방법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 배로 운송하다가, 차로 운송하다가, 바다에서 도로에서 사고가 나거나, 앙심을 품고 전쟁 중에 그것이나 원자력발전소를 터트리면 끝장이다. 왜 이렇게 엄청난 놀라운 사실들을 바보 멍텅구리같이 한국에서는 죽었다 깨나도 모르고 살았는지. 그리고 이 원자력을 통한 단가도 그리 생각보다 싸지도 않다. 또한 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하여 전두환 정권 때 엄청난 로비와 뒷돈이 오갔다는 사실 및 기술이전 및 건설에 관하여 대단히 분분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지적은 매우 신학적이다. 하나님이 만든 원자구조를 인간의 기술과 욕심으로 쪼개어버리는 핵분열 자체가 사실은 매우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시대만을 위하여 우리의 터전인 이 땅에, 우리의 엄청난 후손에게 이 엄청난 가공할 만한 쓰레기를 자자손손 건네주어야 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것을 원죄처럼 받아 안을 의무 또한 우리 후손들에게도 없다. 앞으로의 생태학에 대한 신학적 태도와 자세가 가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타격요소는 전쟁과 무기의 주요한 요건이자 우리의 자연과 환경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핵, 원자력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백날 쓰레기만 줍고, 기껏 신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만 말끔하게 도표화 하면 뭐하나. 이렇게 커다란 엄청난 일들을 감지하고 이 땅에서 진행되는 대단히 잘못된 기획과 허황된 꿈의 실체를 폭로해야 하는 것이 우리 교회와 신학의 비판적인 과제가 아니겠는가.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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