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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30 (17:35)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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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08. 09]  6. 독일의 디아코니아, 그리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






여섯번째, 독일의 디아코니아 시스템, 그리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


4.

국가교회의 시스템은 교회적인 영향력이 단지 몇몇의 교회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과제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여준다. 나는 독일의 기독교가 교회를 향해서 방향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고 또한 세계를 향하여 일하였고, 일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몇 달전 디아코니아 재단은 모든 장학생들을 제29회 교회의 날 행사에 초대하였다. 여기에서 나는 독일 교회의 실체와 내적인 역량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나는 디아코니아 조직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한국의 봉사활동(Diakonie)은 주로 개교회의 지평에서 계획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디아코니아 조직에 대한 관심 속에서 나는 디아코니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요한 힌리히 비셔른을 깊이 알게 되었다.  그는 1848년 9월 22일에 열렸었던 비텐베르크의 교회의 날 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 “나에게 사랑은 신앙에 속합니다.” 이 말은 내 마음과 영혼에 감동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디아코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이다. 독일 디아코니아의 150년이라는 오래된 전통과 경험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5.

내가 여기 바로 여기 부유한 유럽에서 제3세계의 어두운 그림자들과 고난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울만한 사실이다. 이는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경험이다. 특히 나는 우리의 생명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남미와 동유럽의 슬픈 얼굴들을 생각해본다. 전 세계의 5억명의 우리 이웃들이 지금까지 기아에 직면하여 고통당하고 있다. 매일 이 땅에서는 25만명의 이웃들이 죽어가고 있다. 실로 우리는 같은 하늘과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삶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부유한 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항상 가난해진다. 이에 나는 볼프강 보흐헤르트가 던지고 간 몇마디를 떠올리고 싶다 : “우리는 의리도 없고 깊이도 없는 천박한 세대이다. 우리의 깊이는 지옥과 같다. ... 그리서 우리는 신이 없는 세대이다.” 내 독일에서의 경험은 실로 지금까지 내가 진정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신음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로마서 8장 22절). 나는 많은 교회와 디아코니아가 바로 이러한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 하고자 함을 알고 있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는 폭력을 넘어서! 라는 테마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꼭! 이루어가야만 할, 정말 중요한 에큐메니칼의 여정들인 것이다.

6.

이렇게 한국과 독일 사이의 교회적인 혹은 문화적인 차이는 나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신학자로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하나의 도전을 주고 있다. 그 도전이 또한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나는 이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 바로 그 길이 에큐메니칼한 정신을 깨닫는 길이라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신학은 근본적으로 언제나 에큐메니칼적이다!”라고 하셨던 나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독일, 그리고 이 세계에서의 새롭고 놀라운 에큐메니칼한 경험을 갖도록 인도한 한 세계교회협의회와 독일개신교회의 디아코니회에 정중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는 이후 진행되는 독일에서의 학문연구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나님의 평화가 온 세상에 함께 하기를!


4.

Das System der Volkskirche ermoeglicht, den sich der Kirchlicher Einfluss nicht auf eine einzige Kirche konzentriert, sondern dass alle Kirchen ihre diakonischen Aufgaben wahrnehmen koennen. Ich fand, dass die Kirche in Deutschland nicht nur nach innen orientiert ist, sondern auch in die Welt wirkte und wirkt. Vor einigen Monaten hat das Diakonische Werk alle seine Stipendiaten zum 29. Deutschen Evangelischen Kirchentag eingeladen. Hier sah ich die Realitaet und die innere Kraft der Kirche in Deutschland.

Vor allem interessierte ich mich fuer das Diakonische Werk. Weil Diakonie in Korea hauptsachlich als auf die kirchengemeindlichen Ebene organisiert ist. Durch das Interesse fuer das Diakonischen Werk beschaeftigte ich mich intensiv mit Johann-Hinrich Wichern(1808-1881), der als der Vater der Diakonie bezeichnet wird. Er hat am 22. September 1848 auf dem Kirchentag in Wittenberg geredet : “Die Liebe gehoert mir wie der Glaube.” Diese Rede begeisterte mein Herz und meine Seele, und bin ich sehr beeindruckt von ihr. Heutzutage besteht fuer die Kirchen in Korea die Tendenz, dass das Interesse fuer die Diakonie immer mehr steigt. Die 150 Jahre alten Tradition und Erfahrung wird fuer die Zukunft der Kirche in Korea eine gute Lehre sein.
5.
Erstaunlich ist, dass ich mir der dunklen Schatten und der Leiden der dritten Welt gerade im reichen Europa bewusst geworden bin. Es ist fuer mich eine wichtig Erfahrung. Besonders denke ich an das traurige Gesicht Afrikas, Asiens, Suedamerikas und Osteuropas, in unserer gemeinsamen Welt. Fuenf Hundert Millionen Menschen in der Welt leiden bis jetzt unter Hunger. Es sterben Jeden Tag ein Viertel Millionen auf unser Welt. Wir leben auf der gleichen Erde. Aber nicht in einem Gleich gewicht. Die Reichen werden immer reicher und die Armen immer aermer. Ich erinnere mich an das Wort von Wolfgang Borchert : “wir sind die Generation ohne Bindung und ohne Tiefe. Unsere Tiefe ist Abgrund. ... So sind wir die Generation ohne Gott.” Meine Erfahrung in Deutschland fuehren mich bisher zu vielen Fragen, die ich noch nicht beantworten kann.

Nach der Bibel seufzt die ganze Schoepfung (Roemer 8, 22). Ich sehe, dass die Kirche und das Diakonische Werk sich fuer die ganze Schoepfung interessiert. Auch sehe ich, dass der oekumenische Rat der Kirchen fuer die 퍂eberwindung von Gewalt!?arbeitet. Die sind wichtige oekumenische Prozess, die unbedingt fortgefuehrt werden sollten.

6.

Die kirchlichen und kulturellen Unterschiede zwischen Korea und Deutschland sind fuer mich eine Herausforderung dafuer, wie ich als Christ und Theologe existieren kann. Obgleich sie auch gross ist, nehme ich gerne die Herausforderung an. Ich glaube, dass dieser Weg von oekumenischem Geist gepraegt ist. Ich entsinne mich an das Wort meines Professors, dass Theologie grundsaetzlich immer oekumenisch sei!

Ich bedanke mich hoeflich und herzlich beim oekumenischen Rat der Kirchen und dem Diakonischen Werk der EKD fuer die Einladung, die mir neue ueberraschende oekumenische Erfahrung in Deutschland und der Welt ermoeglicht. Ich wuensche mir, dass ich bei meiner weiteren Arbeit fuer die Promotion in Deutschland Gottes Wille finde.

Gottes Friede geht durch die Welt!





탄피 1

한국에서 여기 오기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풍요로운 곳에서 궁핍함을 잃지 말게 하시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헤아리게 하소서 라고. 정말 나는 여기서 이곳의 풍요로움에 내 눈이 팔리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하게시리 아프리카와 동구 그리고 아시아, 그리고 우리 민중들의 슬픈 얼굴들이 더 가슴에 시리게 머리에 한참 떠올랐다.

탄피 2

독일교회는 텅텅 비었지만, 사실 우리가 외면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조직과 내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국가교회의 또다른 면모이기도 하겠고, 이곳의 천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가 그저 공염불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내가 여기에서 외국인이라는 사실보다 더 나를 머리 아프게 한 것은, 그리고 정말 백년의 역사밖에 안되는 한국기독교의 세례를 내가 어떤 계기로 받았는가에 대한 정체성의 물음이고, 또한 정말 기독교는 나의, 우리의 종교인가라는 물음을 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사 무릎팍 꿇고 들어가서 기독교는 우리의 종교이며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하여 이 영광의 축제에 참여하였다손 치더라도, 우리 한국 기독교의 소망과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한국기독교는 내외적으로 많은 시험과 과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내적으로는 교회와 사회에 대한 변혁과 갱신의 자생력이 우리에게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외적으로는 한국의 수천년의 면면한 역사와 전통종교의 수맥 가운데 새롭게 출현한 기독교와 다른 전통종교와의 대화, 그리고 앞으로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들과 비전을 창조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내 짧은 생각에 독일 기독교의 첫째 문제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왜냐하면 시청 옆에 교회가 같이 나란히 서 있는, 교회와 사회가 애시당초 공고하게 묶여진 국가종교Volkskirche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독일 기독교의 둘째 문제에 대한 대답도 비교적 간단하게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카톨릭과 기독교 이 두 종교만 쌍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유대교와의 대화, 그리고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신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주요 관심사는 아닌듯 하다. 그렇기에 종교다원의 문제도 한국만큼 그렇게 절실한 문제가 아닌 듯 하다.

탄피 3

한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열정이 있다. 독일의 기본과 한국의 열정, 이 얼마나 그럴싸한 몰트만의 콘트라스트적 언급인가. 독일은 한국의 열정을 배우고, 한국은 독일의 기본을 배우고. 이곳에서는 어찌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유입이 백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국 국민의 사분의 일이 크리스찬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한국교회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함이 아닐까 진단해본다. 부러움이라면, 수천년의 역사가 누룩처럼 익어갔어도 국가교회의 경직성과 관료성 때문인지,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 듯한 독일 교회에서 단지 백년만에 놀라운 역사를 이룩한 한국이 정말 부럽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의아함이라면, 도대체 빠른 시간을 통하여 성장한 교회가 교회내외적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앞으로는 어떠한 양상을 띄고 진행되는가에 대한 한편의 의심적인 관심일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놀라운 성장을 그들에게 놀라움과 벅참으로 느끼게 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단지 의아스러움과 의심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닌지 대단히 염려가 된다. 물론 우리가 꼴리는 대로 용기있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개신교가 번성한 독일, 그리고 신학의 전통을 가진 독일에 있어서 미국의 개신교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는 중요한 그네들의 교회적 신학적 관심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가진 열정이 정말 쉬이 사라지지 않고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탄피 4

죽어가는 독일 교회에 한국의 새로운 선교의 바람을 넣어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독일을 한국의 선교사역지로 이해한 어느 분의 이야기, 그리고 독일 교회가 텅텅 비었다고 우리는 이들의 전철을 밟지 말자고 말한 분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고 그 허실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러한 외형에 대한 외형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정말 심각하게시리 독일이든 한국이든 땅 위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서서 존재하는지, 그리고 세상을 향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물음의 일환으로 나는 디아코니아의 다양한 사회봉사의 모습과 세계교회협의회의 폭력극복운동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보다도 더 긴 150년의 역사를 간직한 디아코니아는, 신학으로부터 독립한 하나의 학으로 존재할 정도로 상당히 깊고 넓게 그 문제설정 및 과제가 구상되고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혼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혁명가로서의 예수, 세상을 위한 봉사가로서의 예수, 우리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예수상을 품고 있다. 세상을 위한 봉사가로서의 예수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대립적 지대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모색으로 보여진다. 디아코니아에 대한 여러 신학적 진단과 교회를 통한 접맥은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탄피 5

몇년 전에 김상근 목사님과 대한기독교총연합회의 어느 목사님과의 기독교사상에서의 지상논쟁 내용 전문을 오늘 접하게 되었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보수가 전통을 지키자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전복세력에 대한 기독교의 정통성을 유지하자는 논리도 아닌, 기독교가 현실에 적극 참여해 보았자 정치나 역사는 매일 그 나물에 그밥이니 쓸데없는 짓이 아니겠는가 하는 논조였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상인가. 고난의 고리를 끓고 끊임없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갔던 많은 선조들과 선배들의 덕으로 이렇게 우리는 이 순간이나마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거늘. 이는 신앙의 차이 이전에 역사관이나 현실인식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말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면 모든 것들은 종교적이며 모든 것들은 정치적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날 터인데 말이다. 우리는 자주 남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탄피 6

지난 며칠동안 방에만 있었다는 이유로 턱의 털들이 그냥 대책없이 자라고 있다. 한번 턱털의 끝을 잡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안병무 박사님이 비누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손의 지문의 힘!으로 세수를 하였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실감나게 경험하고 있다. 여기는 비가 자주 와서 공기도 맑고 먼지도 별로 없기에 정말 비누가 없어도 별 탈이 없다. 이제는 턱털이 많아도 별 탈이 없는지 한번 시험해보아야겠다. 나는 별 탈이 없는데 정작 내 왼손으로 이 털들을 꼼지락 꼼지락 만져대고 즐거워하는 나 때문에 이 털들은 조금 귀찮아 할 것 같다. 속으로 차라리 나를 면도로 빡 밀어줘 하면서 말이지.

탄피 7

한장 반의 양이 넘쳐서 조금 줄여야 하나. 여하간 다 썼고, 이제 이메일로 왕언니에게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독일어로 생각을 가다듬고 쓰는 연습을 멈추지 않아야겠다. 완벽하게 언어를 정복하려는 노력으로 즐겁게 나아가야겠다.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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