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Die wahre Geschichte des Geistes ist nicht in gelehrten Büchern aufbewahrt,
sondern in dem lebenden seelischen Organismus jedes einzelnen.<
Carl Gustav Jung, GW XI, 37


2001/08/08 (09:03) from 147.142.196.118' of 147.142.196.118' Article Number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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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자와 읽는 자




글을 쓰는 자와 읽는 자 : 어느 선배의 비판을 듣고.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선배님이시다.
그저 인터넷을 통하여 만난 선배님인데
몇번을 거쳐 나에게 내가 쓴 글들에 대해서
정확한 비판과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고
오늘도 그러한 메일을 받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글,
또한 많은 연구과정을 겨쳐
전문적인 견해를 전달하기 위한 글,
그리고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억압을 해소하기
위하여 마치 대소변을 보듯이 쏟아내는 글,
혹은 자신의 허세를 자랑하기 위한 글등...

인터넷 홈페이지는 일기장이나 메모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에 들어서는 그러한
위치와 역할을 일정정도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일기장 열어서 펜으로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게 홈페이지를 열어서 글을
빨리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의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실은 내가 나의 지식이나 경험을 자랑하기
위하여 쓰는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일 수 있는지
경험이 얼마나 잠정적일 수 있는지를
결코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것은 아닐까.
낯선 세계에 들어와서 낯선 것들에 대한
이미지-아우라-들이 순간순간 다가오는데
그러한 이미지들은 실로 기억하기도 어렵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것들이라
그저 내가 행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는 것 뿐이다.
사실은 그 기록의 정확성이
그 글의 존재근거가 된다기 보다는
그 순간의 이미지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글들의 존재근거가 된다.
그러니 그 글이 낙서이건 일기이건
아니면 어떠한 견해에 대한 피력이건
순간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의미에서는
어떠한 형식이든 그것은
어쩌면 별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그 이미지들을 왜 내가 담아내는가.
첫째는 이미지는 그저 횡하니 날라가는
신기루와 같은 것들이고,
그 이미지의 배후에 여러 맥락과 환경을
해석하기 위한 작업이 분명히 이후에
잊혀지지 않고 수행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에 대한 해석을 글로 남기면
사실은 이후에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대면하거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때
이전의 생각을 비판하는 근거 내지는
새로운 생각과 대조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이다.
여기 와서 몇개월 전에 쓴 나의 글과 생각도
지금 헤아려보면 상당히 많은 오해와
해석의 변화를 나 자신이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아주 분명한 이야기라 보인다.

삶은 나의 세계에 대한 해석의 총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낯선 나라에 와서
이 엄청나게 다른 삶의 자리들을
해석하는 것은, 그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빚어지는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서 우리나라 토종산?
전문가들이 모여서 분석하고 해석하는
토론을 보자. 서로간의 엄청나게 많은 반론과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전혀 세상이 다른 외국에서
그 나라의 삶과 사회환경과 여러 시스템을
이해하고 더군다나 해석한다는 것?
5년 10년을 산다 하더라도 특별한
노력과 사회현상에 대한 귀기울임
없이는 그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엇갈리다가
그냥 '몸'이 몇년 살다 가는 것 뿐일런지도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어린 아이가
뒤죽박죽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사물에 대해서 이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부모님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단어를 줏어 들으면서
틀린 발음으로라도 끊임없이 내뱉고 쏟아내고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알때까지 명상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고 유용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내 앞에 다가온 이미지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해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해석의 새로운 의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이고
떠돌아다니는 과거의 글의 사체들을 헤아리면서 그것을 통하여
불현듯 떠오르는 새로운 해석과 정보를 찾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어느 선배님은 그런 맥락에서 내가 쓴 글들을 조목조목
오랜 독일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된 부분을
비판해주고 지적해 주어서 매우 반가웠다.
더군다나 독일의 문화와 지적 형세들을 정확하게
접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좋은 방송내용들을
나에게 알려주셨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이것은 선배의 후배에 대한 본능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후배들을 보면 어느 때에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을
그냥 거치지 않고 관통하고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정말 간절하게 갖은 적이 많았다.

사실 알고보면 문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이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선후배 뿐만이 아니라 사제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선조와 후세를 묶어주는 가장 중요한
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하간 자신의 글에 대해서 그 문제점을 지적받는 것은,
수많은 칭찬과 덕담보다 어느 때는 더욱 빛나는 것이고
또한 실질적으로 글을 쓰는 의도에 부합하는 경우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체질적으로 이성ratio에 대한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다. 독일을 관념론의 왕국으로 보고
이성주의를 상당히 고깝게 보는 식의 해석은
여기에 와서는 많이 깨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생각하는 이성은 결코 감성을 죽이려 하거나
혹은 건조한 관념의 왕좌에서 나오기를 싫어하는
게으름이 아니라,
정말로 한번 이해해보자는 진지한 시도인 것이다.
사실 뭐 이것만 장점이 있다는 것은 아니나
내가 이해못하면 한번 끝까지 이해하려는 것,
머리로 이해못하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이런 것들은
감성이 특히 발달하고 정이 특히 발달한
우리 특유의 민족성과 비교해 볼때 매우
필요한 차원이라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기숙사 소냐라는 친구가 나의 밥통이 몇시간 계속
전원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하였다.
소냐의 생각은 밥을 했을 때에만 전기가 필요하지
왜 계속 밥통에 전원이 들어오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 이후에는 그냥 전자렌지로 따뜻하게 밥을 데우면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계속 전원이 들어오면 전기세도 많이 나가고 말이지.
나는 한국에서는 당연한 면으로 생각한 것들을
이렇게 질문을 받고, 설명해 주었다.
전자렌지로 데우는 것보다 이렇게 보온을
하는 것이 훨씬 밥맛이 좋다고.
그러니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다.
전기세에 대한 낭비보다 밥맛이 더 중요하다는
나의 이야기가 그 친구에게 더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소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만약 내 말이 설득력 있으면 전기세가 많이 들어도
소냐는 그것에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설득한다는 것, 이것은 사실 우리가 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라 생각해보았다. 그간 한국에서
설득하고, 대화하고, 비판하고, 이런 훈련을
나는 정말 잘 받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여하간 그 선배님은 나에게 조목조목 잘못된 점을
말하고 지적하고, 나는 그 비판에 설득 당해서
몇 개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정하여 그 원글에
첨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완벽하면 글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글은 사상의 똥이라 하는 선생님의 말씀도 있는데
다시 말해서 사상이 완벽하여도 글은 어딘가 결함이 있는데
그 자체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예 꿈의 해당항목에 결코 포함될 수 없는
것들일런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꾸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현재에 조금은 충실해지려는 노력이고
앞으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와 자세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읽는 자의 자세는
글에 대한 맹목적인,
애호적인 태도만을 갖는 것보다는
그 똥의 흔적과 사체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면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들과
비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긴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그 선배님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정말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2001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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