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01/16 (09:35) from 211.191.202.180' of 211.191.202.180' | Article Number : 163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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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492 , Lines : 24 |
| 노충국, 그를 애도하는 일상의 법(하늘뜻나누기 원고20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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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교육> 2006년 1월호에 게재된 글을 다듬어 설교한 것임 노충국, 그를 애도하는 일상의 법 지난 10월 24일 <오마이뉴스>에 의해 사건이 처음 알려진 지 사흘 만에 노충국 씨는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태권도 학과를 다녔던, 신장 180센치에 체중 80킬로인 건장한 청년이 다 죽어가는 몰골로 제대하여 두 주 만에 위암 말기로 판명되어 투병중이라는 기사입니다. 이후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이 사실을 보도했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회자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에 대한 보다 통렬하고 공격적인 시민사회적 반응은 네티즌들에 의해서 수행되었습니다. 개인 블로거들은 기성의 공적 뉴스매체들보다 심층적이며 공격적으로 사태를 해석하여 논의를 발전시켰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열성 네티즌들은 누구보다도 심화된 인식 수준으로 넷 공간의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고 노충국 씨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및 군대내 의료 접근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인터넷보다 빠르지는 못하지만, 온-오프라인에서 활성화된 여론을 조직해내어 정치적․법적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전문가들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 또한 퍽 신속했습니다. 이 위원회 이름이 말해주듯, 노충국 씨 사망 사건으로 말미암은 여론은 군대내 의료접근건의 확대에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또한 이것이 좀 더 확대해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병사들의 병영생활 개선에 대한 시민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부랴부랴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구성되고, 악화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공식적 조사 발표를 서두르다 오히려 엉성한 은폐 사실이 드러나고, 얼떨결에 또 다른 사실들이 발설됩니다. 최근에만도 노충국 씨 외에 세 명이 제대 직전 혹은 직후 말기암임이 판명되어 투병중이라고. 결국 정부와 군은 부대내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병영생활을 좀 더 개방적으로 운영할 기획안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해서 온-오프라인의 행복한 만남은 시민사회에 또 하나의 성공사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민사회단체들은 군의 기획안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하겠고, 군대도 개혁의 내적 목소리가 강화된 지금과 같은 양상이 더욱 힘을 받아 나가야 하겠지요. 모든 이들이 바라마지 않는 대로 말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이 사태에서 우리는 착한 시민, 착한 네티즌, 착한 정부, 착한 군의 모습으로 진화해 갈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선한 존재, 무욕(無慾)의 존재들이 된 듯, 국가와 시민사회의 각 행위자들은 이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면서도 또 서로 화해해나가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말입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그렇게 보는 믿음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믿음이, 아름답게 ‘보이는’ 믿음이 노충국 씨 사건의 신속한 성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게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한데 그것으로 족한가요? 이 행복한 성과의 뒷맛이 왠지 제겐 그리 개운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최근 착한 과학자와 착한 언론, 착한 시민 사이의 과열된 공조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경험한 탓에, 노충국 씨 사건을 되돌아보는 시선이 더욱 냉소적으로 됩니다. 지나친 ‘착한’ 역할 이면엔 사회의 공공 자원을 독과점하려는 욕구가 도사리고 있음을, 하여 착한 이미지 뒷면은 맹독성의 표독한 얼굴이 숨겨 있음을 우리는 종종 체험해야 했기에 말입니다. 결국 저는 노충국 씨 사건을 둘러싼 착한 이미지들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계기가 된 군대 폭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에 한편으로는 그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점을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공은 ‘기억의 관성’을 낳기 쉽습니다. 기억이 관성을 갖는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정한 요소가 성공의 열쇠였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요소들에 대한 생각을 추방해버립니다. 즉 특정한 기억이 특권화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충국 씨 사건의 진실게임이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진행된 화해, 그 과정에서의 사회 각 행위자들의 ‘착한 연기’ 속에는 성찰이 추방된 기억의 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사건을 단순하게 이해하게 하며, 군제도개선이라는 방식으로 사태 해결의 시각을 즉물화시켰습니다. 한 청년에게 가해진 그 처참한 불행은 군의료체계의 무능 때문이니 군제도상의 보건복지 체계를 개선하는 것으로 가는 것이 사태의 최적의 해결방법이라는 시각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시각은 의식적인 해석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곧 무의식적인 형태로 내면화됩니다. 기억의 관성이란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편견의 틀인 것입니다. 권인숙 교수는 최근에 펴낸 책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이러한 편견의 틀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기억의 노예가 되게 하는지를 문제제기 하고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주역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군사문화’를 개선하게 하는 기억의 관성을 낳았지만, ‘군사주의 문화’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고 말입니다. ‘군사문화’가 군부독재세력이 만들어낸 제도라는 좁은 의미의 폭력의 체계를 의미한다면, ‘군사주의 문화’란 그러한 제도가 사회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내면화된 것까지를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폭력의 체계를 뜻합니다. 하여 군사주의 문화는 군부독재 정권이 퇴진한 이후에까지 계속되는, 군사주의 시대의 발전주의적 성공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의 관성으로 서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박정희 향수는 군부독재 시대에 서민들의 삶의 안정성이 급격히 향상되었다는 성공의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데 이러한 기억의 관성은 군사주의를 척결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독재자들이 구축했던 오염된 제도들, 군사정권의 주체들과 그들만의 특권적 장치들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이룩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실상이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그 시대에 생산된 일상의 제도들 속에 자신들이 그 군사주의의 충실한 가담자의 하나였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 해서 자신들은, 자신들의 몸에 새겨진 폭력성은 제거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제도들이 숱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 비해 결코 경감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거의 폭력들이 좀 더 원초적이었다면, 오늘의 폭력들은 보다 교활한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폭력의 야만성은 은폐되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인숙 교수는 자신에게 성폭행을 가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성공한 기억이 자신이 가담되어 있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게 얼마나 깊은 몰성찰의 요소가 되고 있는지를 절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적을 처벌할 줄만 알았지, 적의 무의식적 공모자인 자신을 처벌하지 않는 태도, 그것은 자기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들의 ‘적’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책에서 우리는 노충국 씨의 죽음에 대한 2005년의 우리의 기억을 반성적으로 되돌아 볼 시선을 얻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의분은 군대폭력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인 계기가 되었음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우리의 의분을 제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면서 약속했습니다. 한데 그러한 의분에 찬 우리는 우리 자신의 폭력성이 군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제기하는 계기로 그의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군대라는 예외공간에선 우리의 일상의 폭력성보다 훨씬 원초적으로 폭력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시위’라는 예외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도소, 수용소, 그리고 교실 같은 예외공간도 그렇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지양되지 않는 폭력성은 예외공간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외공간의 민주화는 그곳에서의 제도를 통해 폭력성이 억제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일상의 폭력성을 지양하기 위한 뼈아픈 성찰이 수반되지 않는 한 새로운 예외공간 속에서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수히 타인을 도구화하는 게임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은폐된 폭력 속에 희생되는 ‘제2, 제3의 노충국’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의 공모 속에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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