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06/11 (03:21) from 210.219.99.152' of 210.219.99.152' | Article Number : 18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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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2631 , Lines : 26 |
| 파렴치한들의 역사(6.11 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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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한들의 역사 김 진 호 판관기 20장 48절 이스라엘 군은 다시 베냐민의 민간인에게로 돌아와서 그 성 사람과 짐승을 만나는 대로 칼로 쳐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성읍들에도 닥치는 대로 모조리 불을 놓았다. [공동번역 성서] 지난 5월 23일자 '국방일보'에 실린 한 군사평론가의 글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보조자료 참조). 그것은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양민학살을 저질렀다는 '한겨레21'의 연속보도에 대해 반박하는 논조의 글입니다. 그 자신이 월남전에서 만3년이나 장교요원으로 복무했으나, 그러한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양민학살의 주요 책임자는 미군과 한국군 등 참전국(과 월남군)이 아니라, '베트남인민해방전선'(베트콩)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따이한 군대'는 월남인들에게 흠보다는 천 배나 칭송받는 군대였다고 주장합니다. 평소에 매우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논조의 주장을 펴왔던 인물인지라, 이 글을 보면서 저는 과연 그가 이 글을 진짜 썼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얼핏보아도 그의 글은 유치한 반공적 냉전주의식 발상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한겨레21의 보도에는 많은 베트남인들뿐 아니라 일부 월남 참전 한국인들의 증언을 포함하고 있고, 수많은 정황증거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박이라는 게 기껏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는 일축일 뿐입니다. 더구나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임이 의심의 여지없이 밝혀진 상황에서 한국군만은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변론이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겨레21의 특파원을 향해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애숭이가 영웅심에 도취해 무책임하게 떠들고 있다고 극언을 퍼붓습니다. 그에게서 '전쟁을 안다'는 말은 자신이 전쟁을 직접 체험하였다는 것과 자신이 군사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라는 것을 동시에 뜻할 것입니다. 확실히 이 두 가지 점에서 한겨레21의 특파원은 그와 대등한 논쟁을 벌일 처지에 있지 못합니다. 또한 그 글을 접하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겸손히 자기의 소리를 경청하라는 충분한 위협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전쟁을 아는' 그가 펴는 논리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선 앞서 말한 대로, '전쟁을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전쟁을 냉전의 시각에서만 묘사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그에게 통한다는 것입니다. 즉 전쟁이란 좋은 편과 나쁜 편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한겨레21의 기사의 논조가 '정당한 공산주의자들과 반역적인 우익 연합군의 전쟁'처럼 묘사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아는' 그는 그 전쟁은 반대로 '악랄한 빨갱이들과 의로운 민주주의 수호자들간의 전쟁'이라고 '점잖게' 교정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한겨레21의 기사는 이런 냉전주의적 시각의 전쟁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군인이, 나아가 우리 군대가, 결국에는 우리 정부가 이 전쟁에서 베트남 양민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선악의 싸움에서 누가 선이냐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게 이러한 범죄를 야기했다면, 가해자는 어떻게 그것을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느냐를 문제제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군사전문가는 '전쟁을 알기 때문에' 젊은 혈기가 넘치는 청년 군인이 양민을 죽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양민이 실제로는 단순한 양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피아가 분간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민을 보호하다가 도리어 무수한 아군이 죽어가는 전쟁에서 양민학살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전쟁을 아는' 그는 명백한 양민학살 사건임이 밝혀진 노근리 사건을 들먹입니다. 양민들의 중립적이지 않은 행위들 때문에 "전우를 잃은 미군은 (그들에게) 무자비한 보복을 가할 수도 있"고, "이게 바로 전쟁이다"라며, 철부지 특파원을 향해 그는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쟁을 아는' 전문가의 눈엔, 양민은 야구경기의 심판처럼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월남전에 사병으로 참전했던, 그러나 군사전문가는 전혀 아닌, 올리버 스톤이라는 미국의 영화감독은 그가 아는 전쟁의 야만성을, '우리와 적' 모두에게 나타나는 그 야만성을 다루고 있는 숱한 영화들('플래툰', '7월 4일생' 등)을 감독했고, 그러한 본능적 추악성을 발산시키는 요소인 전쟁의 원인을 '우리 사회의 권력 혹은 존재 내부에서 추적하는'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JFK', '닉슨', '내추럴 본 킬러', 'U턴' 등). 그에게선 이것이 '전쟁을 아는' 방법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미군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쟁을 아는' (그러나 역시 군사전문가는 아닌) 또 한 사람인 브라이언 윌슨은 미군의 양민학살을 고발하고, 반전운동을 열렬히 벌이는 평화운동가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쟁을 아는 군사전문가와 이들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세계의 대표적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인 노엄 촘스키는 한국군은 양민학살 정도가 아니라 전쟁수행 방식의 하나로 양민을 인질로 삼는 전술을 펴기까지 했다고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여러 연구기관들(랜드 코퍼레이션 연구소 등)에서도 한국군의 양민학살에 관한 숱한 보고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국의 군사전문가는, 심지어 그 전쟁에 참전까지 한 그는 이 모든 것이 '금시초문'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그는 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가해자의 사죄를 촉구하는 양심적 언론을 비난하는 파렴치한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리도 그와 같은 파렴치범이 되도록 조장하는 가증스런 지식인의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전쟁을 아는' 방법인 모양입니다. 판관기의 제일 마지막 부분(19~21장)에는 바로 이러한 전쟁의 야만성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에프라임을 필두로 하는 이스라엘 연방과 베냐민 족속간의 경직된 관계가 어떤 이유로 내전으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베냐민 족속의 마을에서 불량배 몇이 한 레위인의 여자를 강간하여 죽게 한 사건이 전쟁의 발단이었습니다. 물론 보다시피 이 사건 자체가 전쟁으로 이어질 필연성은 없습니다. 그러한 사태 전개에는 이 사건에 대응하는 부적절한 방식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 레위인은 자신에게 배타적인 마을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여자를 내주었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밤을 편안하게 보냈습니다. 아침에, 밤새 농락당하다가 문 앞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를 보고는 그녀를 매고 고향으로 돌아가 시신을 토막내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레위인이 발견할 당시 이 여자가 죽은 상태였다는 어떠한 암시도 본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인이 여자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려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우리는 본문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레위인의 유일한 태도는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여자의 시신으로 자신의 분풀이에 이용하고 있는 모습뿐입니다. 에프라임 족속이 이끄는 연맹군은 범인을 인도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이에 베냐민의 기브아 지역 장로들은 거절합니다. 여기에는 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동맹의 헤게모니 세력은 에프라임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족속은 그러한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세력이었습니다. 상황은 지파동맹 말기였던 것 같고, 그것은 지파동맹의 연결망이 속속 교란되고 있던 때임을 의미합니다. 자연, 에프라임과 베냐민 족속간에는 크고 작은 분쟁들이 잇따라 일어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양족속간의 감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원만하게 수습할 수도 있었건만, 사태는 서로간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됐고 급기야 내전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판관기는 베냐민 지파가 패전했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전투 양상은 패배자에겐 혹독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양민까지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종전이 되고 에프라임 주도권이 재확인된 후에, 종족보전의 위기에 빠진 베냐민 족속을 재건하기 위해, 야베스길르앗이라는 변두리 족속에 대한 살육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이 족속의 여자를 베냐민 종족보전을 위해 희생양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실로 지역의 여자들을 납치 겁탈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성서'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서는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있는 발언도 회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담담하게 사태 전개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결코 자랑스런 일이 아니었다는 걸 화자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이 사건을 화자는 전혀 화려하게 치장하고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화자는 파렴치한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건의 야만성에 대해 한마디 고백이나 사죄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부끄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호한 본문이 성서 안에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파렴치한의 역사를 우리는 성서 속에서도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강간당한 여인은, 결코 원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남편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파렴치한인 그의 남편은 그녀의 죽음을 종족 전쟁의 계기로 변질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의 시신은 그 못지 않은 비극의 여인을 양산했고, 아이와 노인과 숱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폭탄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종족간의 주도권 투쟁에 몰입된 자들의 편협한 경쟁의식은 파렴치한 역사의 본 장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매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전쟁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파렴치한의 대열에 서야했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고발하거나 사죄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을 보전하고 있는 성서도 파렴치한의 대열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해야겠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의 세계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파렴치한의 역사를 거스르는 실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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