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2/18 (18:01) from 61.73.142.41' of 61.73.142.41' | Article Number : 306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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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 : 3249 , Lines : 27 |
| 신성모독(2004.2.14하늘뜻나누기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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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 1896년 발견된 에집트의 파라오 메르넵타의 승전기념석비에 새겨진 상형문자 가운데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씨가 말랐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서 이외의 텍스트에서 이스라엘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비석입니다. 대략 기원전 1200년대 초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팔레스틴 동부 산악 지대에 이스라엘 지파동맹이 출현했다고 알려진 시기보다 대략 한 세기 이상 전에 ‘이스라엘’이라는 어떤 종족적 실체가 존재했다는 증거입니다. 성서학자들은 매우 고무되었습니다. ‘봐라. 성서는 그 시대의 역사를 잘 담고 있지 않느냐’는 신앙적 통념이 이로 인해 정당한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서 외부의 증거물들이 메르넵타 비석처럼 성서의 주장들과 잘 부합하기만 할까요? 물론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증거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데 더욱 문제는 메르넵타 비석에서조차도 성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입증한다고 해석내리는 일이 그리 자명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 비석이 말해주는 것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실체가 아주 고대에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 절제된 비문에서 그 이상의 해석을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날 저명한 이스라엘 고대역사가들 가운데는 이 비석의 이스라엘과 성서의 이스라엘을 바로 연계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한 대가급의 성서 역사가는 성서의 이스라엘도 개념의 변천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유래한 ‘잘 정의된’ 족속, 즉 혈연에서나 사회적 조직에서나 명료하게 규정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통념은 성서의 후대 자료층에서 발견됩니다. 보다 오래된 자료층을 통해 추정해보면, 이스라엘은 동부 산악지대에서 건국된 사울의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였고, 이후 팔레스타인 중북부 지역에 건국된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발전하였으며, 좀더 후에 야훼 종교가 신학적으로 다듬어지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 등등과 같은 혈연적, 사회적으로 잘 정의된 조직처럼 이해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천사는, 메르넵타의 비석에서 보는 것 같은, 성서의 이스라엘보다 이전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동부 산악지대를 지칭하는 용어였다는 가설과 연결됩니다. 이 재미없는 학술적 얘기에서 혹 여러분은 신앙의 위기를 느끼지는 않습니까? ‘성서’에 담긴 역사적 서술들이 오늘날 알려진 역사학적 성과물들과 전혀 부합하지 않을 때 여러분의 신앙은 문제가 없나요? 혹 출애굽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나요? 이스라엘의 가나안(팔레스타인) 정복이 역사가 아니라 상상적 허구라고 해도 괜찮나요? 다윗-솔로몬의 왕국이 기원전 10세기 경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국가가 아니어도, 아니 작고 보잘 것 없는 군소국에 불과했다고 해도 여러분의 신앙엔 문제가 없나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후손이고 기원전 12~10세기 경 팔레스타인 동부 산악 지대에 구축된 열두 부족 연합체이며 다윗-솔로몬 대(代)에 고대국가로 발전했다는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이 후대에 ‘만들어진 과거의 기억’에 불과하다고 해도 여러분의 신앙은 굳건히 존속할 수 있나요? 혹 여러분은 신학자들은 ‘신앙이 없다’고 하는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불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혹 여러분은 성서 내용에 대한 ‘왜?’라는 질문이 불신앙의 증거라는 위협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위기의식’이든 ‘불평’이든 ‘위협’이든 이러한 것들은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들이 끊임없이 성서를, 아니 성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일반적인 신앙적 통념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대안적인 주장이 신학의 이름으로 통용되곤 합니다. 현대의 학문 영역에서 거의 대화할 수 없는 이러한 주장은 지식의 바다 위의 ‘게토화된 신학’이라는 외로운 섬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한백의 사람들은 이런 게토화된 신학을 잘 신뢰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서를 믿나요?’라는 어떤 기독교인들의 물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혹 성서를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대답을 유보시키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성서를 믿지 않습니다. 한 친구가 이런 저의 단언에 대해 ‘신성모독’이라고 경고의 말을 던집니다. 물론 그 친구의 말은 저를 단죄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변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극언이지요. 아무튼 신성모독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지만, 좀더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저의 극언을 극언으로 맞장구친 친구가 신서모독이라고 한 표현에 주목해봅시다. 그는 성서를 모독한다는 취지의 말을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신앙적 텍스트를 ‘성서’, 거룩한 책이라고 이름붙인 것과 잘 맞아떨어지는 표현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진리의 책’이라는 뜻일 겁니다. 신앙은 진리를 거룩함과 동일시해왔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라고 부언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진리의 책’이라는 성서는 구원만이 아닌 인간사 모든 것에 대한 진리를 표상하는 책이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비(非)진리 아니 반(反)진리를 필요로 하고, 또한 반진리와 투쟁해야 하는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법의 언어에 대한 최근의 일련의 연구에서 제기된 견해인데, 진리의 책이라는 거룩한 경전(經典), 나아가 경전 가운데 유일 정통의 경전인 정전(正典)의 언어에 대한 해석으로 바로 연결시켜도 전혀 무방합니다. 요컨대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진리, 즉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진리’를 대표하는 책이 바로 ‘성서’라는 기독교의 종교적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서를 믿는다’는 표현 속에는 역사적 진실성에 대한 믿음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믿는 대상이 ‘성서’가 아니라면, 가령 ‘친구인 너를 믿는다’는 말은 믿음의 함의가 전혀 다릅니다. ‘친구가 지금 내게 거짓을 말하고 있을지라도, 아니 더 나아가 그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친구이니까 너의 이 태도는 나를 해하려는 것은 필경 아닐 거야’라는 확신이자 자기 암시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성서를 믿나요?’라는 물음은 초시공간적인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거기에는 ‘진리다’와 ‘반진리다’라는 두 가지 대답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둘 다를 부정할 수 없는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그래서 대답을 유보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의 고리 속에 꿰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지식과 진리간의 이러한 긴장을 누구보다도 첨예하게 마주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첨예한 긴장은, 가장 현대적인 학문적 언어로 채워진 신학일 경우에도, 많은 경우 잘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거룩’, 즉 시공간적인 초월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거룩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인과성에 관한 학문적 설명도 포기하지 않으려니 어정쩡함은 불가피한 현상일 것입니다. 한데 흥미롭게도 그러는 와중에서 여러 성서학자들이 성서를 ‘신앙적 성찰의 책’이라고 재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찰’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성찰을 얘기하려면 ‘통념’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통념은 같은 문화권대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혜입니다. 매 순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지 등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통념은 그러한 혼란스러움을 제거하는 사회가 공유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통념이, 양심이나 상식처럼 이해되는 세속화된 사회와는 달리, 종교적으로 구성될 때 종종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진리인양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통념은 사람들의 경험들을 해석하는 인식 체계입니다. 또한 종교적 통념은 그러한 해석 체계가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경향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데 이것은 통념이 경험을 억압하는 인식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성찰이란 바로 이때 나타납니다. 즉 통념으로 인해 경험이 억압되는 현상을 고통스러워하는 데서 성찰은 출발합니다. 고통스러워함은 종종 통념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문제제기는 통념의 부정으로 나아갑니다. 성찰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견고한 인식 체계, 모든 것을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게 하는 사유의 틀, 심지어 자기 자신의 내면까지 지배하는 이 견고함에 고통스러워하고 문제제기하고 투쟁하는 것, 이러한 통념에 대한 부정의 과정이 곧 성찰인 것입니다. 성찰은 ‘이것이 답이다’라고 말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이 답이 아니다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찰만으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끝없이 진리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맞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찰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흔드는 인식의 과정인 것입니다. 성서가 신앙적 성찰의 책이라는 성서학자들의 규정은 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성서를 믿는 게 아니라 성서를 ‘성찰’하라고, 그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준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말입니다. 현대의 학문은 성서에 대한 믿음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성찰하는 신앙은 지식과 진리의 싸움에 신앙을 낭비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을 성찰하는 태도를 일깨웁니다. 이럴 경우 학문은 성서의 편견, 성서에 대한 편견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물론 학문이 또 하나의 진리로 자리매김하려 할 때, 성서를 성찰하는 신앙은 그러한 학문의 편견, 그 배제의 메커니즘에 저항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누가 제게 성서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성서를 믿는 것도 아니요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서를 성찰하겠다고 대답하겠습니다. □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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