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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5/04/27 (23:29) from 129.206.197.58' of 129.206.197.58' Article Number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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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헤드의 사상




화이트 헤드의 사상







화이트헤드(A.N.Whitehead 1861~1947)는 사변 이성과 형이상학적 체계를 역설했던 20세기 철학자이다. 그는 대다수의 다른 철학자들이 사변의 길은 허상 속을 맴돌게 할 뿐이라고 믿고 있던 시기에 거대한 사변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는 철학이 당대 문명의 다양한 영역 밑바닥에 깔려 있는 상충하는 전제들을 비판함으로써 이를 창조적으로 개선 통합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라는 남다른 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대적 조류를 역행하여, 사변의 길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20세기의 사상적 분위기를 대변한 철학자였다고 할 수는 없다. 20세기는 분석과 회의를 근간으로 하는 반(反)형이상학적 사조가 지배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단순한 시대의 산물로 전락·소멸하지 않고 21세기를 사는 우리 앞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처음부터 사변 철학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가 영국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하면서 처음 택한 전공은 수학이었고 이 대학에 자리를 잡은 것도 수학교수로서였다. 그리고 그와 『수학원리』(1910~1913)를 공동으로 집필한 러셀은 이 시절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저술에서 관계의 논리를 개발하고 순수 수학은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논리적 개념들의 공리적 도식에서 연역될 수 있다는 논리주의(logicism)를 전개하였다. 물론 이런 기획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뒤따랐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직관주의적 노선을 택하였다. 그가 후일 괴델의 불완전성 공리를 접하고는, 이를 모든 이론 구성이 유한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간주했던 것은 바로 이런 방법적 노선에 따른 이해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나의 첫사랑은 수학’이라고 했을 만큼 수학적 합리성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깊었고, 이런 그의 태도는 후일 그의 과학 철학과 사변 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화이트헤드는 1915년 임페리얼 칼리지 이공학부 응용수학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과학으로 시선을 넓혔다. 이 시기에 그가 심혈을 기울인 일은 과학적, 수학적 개념들이 감각경험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여러 요소와 이들간의 관계로부터 파생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자연인식의 원리』(1919)와 『자연의 개념』(1920) 등은 이런 작업의 결실이었다. 그는 ‘순간에 놓인 자연’이라는 뉴턴적 개념을 폐기하고 자연을 지각된 성질과 과학의 이론적 존재들(예컨대 전자나 양성자 따위)로 나누어 보는 근대적 시각을 거부하였다. 자연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지각 그 자체도 자연 내의 사건이다. 자연의 사건은 전통철학이 말하는 실체와는 달리 반복되지 않으며 서로 이어지고 중첩되는 관계적 존재들이다. 그리고 근대 물리학이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했던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기실 시공간적 사건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며 그 자체로 독자적인 존재성은 지니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과학철학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자연과 인간은 자연속의 사건



화이트헤드가 사변적 모험을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이런 결론이 미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각되는 자연뿐만 아니라 지각하는 인간까지도 자연 속의 사건으로 보는 시각은 그로 하여금 세계와 인간을 아우르는 형이상학적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과학과 근대세계』는 이처럼 과학철학으로부터 형이상학으로 시선을 넓혀가고 있는 과도기적 저작이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이 모험은 정확히 그가 1924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로 초빙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형이상학적 체계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내적 외적인 감각경험과 시공간적 사건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의 대작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1929)는 이 과제를 수행하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론 체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진정 위대한 저술이 대개 그렇듯이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에 구축되어 있는 웅대한 형이상학 체계는 웬만큼 철학적 훈련을 거친 독자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화이트헤드는 수리논리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시와 예술, 종교와 상식 등에 전제되어 있는 실재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융화시켜 그 자신의 독특한 언어, 따라서 독자로서는 생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언어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경한 언어를 구사했던 까닭은 전통적인 관념과 언어의 속박 하에서는 구체적인 실재의 실상을 기술할 수 없다고 보았던 데 있다. 어쨌든 실재의 구체적인 실상이 드러나기만 하면 우리는 이에 비추어 모든 문명적 사유의 배후에 있는 다양한 전제들은 평가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전통의 관념들을 비판 해체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이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시적, 종교적, 실천적 영역에서 구사하는 사고 방식들은 문제되는 사물들의 어떤 특정 측면에만 관심을 두고, 그밖의 다른 것들은 무관한 것으로 도외시한다. 이것은 인간이 다양한 영역에서 향유하는 경험들이 적대적으로 파편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인류문명의 비극이다. 우리가 이런 비극을 피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경험에서 오는 자료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나아가 이들을 낳은 전제들을 비판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가운데 이들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이따금 철학을 ‘추상관념의 비판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물론 추상관념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추상관념이 없다면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추상관념은 우리가 그것이 추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우리는 그것이 갖는 실천적 유용성에 감탄한 나머지 그것을 구체적인 실재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과학과 철학과 상식에서 흔히 통용되는 환원주의적 사유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릇된 착상으로서, 화이트헤드는 이를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라 부른다.



‘생성’은 ‘존재’보다 더 기본적

화이트헤드는 우선 실재의 구체적 모습에 다가서기 위해 주관-객관의 도식과 추상관념들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인식론 전망을 버린다. 그는 존재론적 시각에서 인간과 세계간의 차별을 철폐하고 동물, 식물, 바위 등과 인간이 공유하는 특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을 찾기 위한 실마리로 그는 인간의 경험 그 자체에 주목하였다. 인간의 경험 사건은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실재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영역, 다양한 층위의 경험을 통해 실재와 교섭하는 가운데 자연 속의 사건으로서 존립한다. 이를 유비적으로 일반화하면 자연 존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 존재도 인간 존재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무엇인가에 의존하여 존재한다. 이 의존의 방식이 형이상학적 의미의 경험이다. 자연 사건도 인간도 자기 이외의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경험의 구조적 특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화이트헤드는 인간의 경험 사건 자체의 내적 구조로부터 경험의 보편적 구조가 객체적인 것이 주체적인 것으로 옮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험에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요인들은 배제한다. 예컨대 의식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 체계의 핵심에 놓인 ‘현실적 존재’는 이렇게 경험 사건을 모델로 하여 구상된 범주적 존재이다. 이것은 객체적인 것을 주체적인 것, 즉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존립한다. 이 과정은 자기 구성의 과정, 즉 자기 생성의 과정이다. 이 과정적 존재들이 세계 과정의 궁극적인 구성요소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는 대부분 이 범주적 존재를 분석 기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실한 이해는 『과정과 실재』 전체에 대한 이해와 맞먹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 존재가 ‘경험의 계기’(moment)로부터 유추된 것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하여, 『과정과 실재』의 핵심적 이념에 어느 정도 다가설 수 있다. 우선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화이트헤드가 고대 그리스 이후 서양의 사유를 지배해온 정태적인 실재관을 거부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현실적 존재의 구조가 경험의 과정, 즉 ‘생성(becoming)’의 과정이라면, 그리고 현실세계가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생성의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면, ‘생성’은 ‘존재(being)’보다 더 기본적인 범주가 될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과정의 원리’로 정식화하고 있다



현실적 존재는 그것의 생성과정에서 ‘살아있다’. 그 과정이 종결될 때 즉 생성이 정태적 존재가 될 때, 그것은 과거 속으로 소멸하고 새로운 생성의 과정에 의해 계승된다. 그래서 우주에는 현실적 존재의 생성과 이들의 합종연횡으로 구성되는 현실 세계의 생성이 있다. 전자는 소우주적 과정이요, 후자는 대우주적 과정이다. 화이트헤드의 사변철학은 이 두 가지 과정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고, 흔히 그의 철학을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다음으로 현실적 존재들이 경험의 계기에서 유추된 것이라는 점은 이들 존재가 상호 의존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타자를 경험하는 주체로서 존립하거나, 타자의 경험에 주어지는 객체로서 존립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다. 이것은 ‘상대성 원리’이다. 이에 따르면 임의의 현실적 존재에 있어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는 본질적인 것이며 외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 존재들을 근본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organism)의 철학’이라 부른다.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17~8세기의 기계론에 대항하여 과학철학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확보했던 시각이다. 기계론의 특징은 그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 부분들은 상호 독립적이다. 유기체의 경우 부분과 체계 전체는 상호 의존적이다. 특정 유기체에 있어 부분과 부분 사이의 관계나 그 유기체와 우주 전체 사이의 관계는 그 유기체에 본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과정과 실재』에 구축된 우주론 체계는, 그것이 생성으로서의 존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과정철학’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는 동시에 이들 존재의 상호 의존적 연관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유기체 철학’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자신이 구축한 이 우주론의 체계가 완전한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후일 정정되고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에서 개방된 체계이다. 완벽한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목표일 뿐이다. 그가 확신하고 있던 것은 다만 자신의 체계가 전통의 체계가 제공했던 것보다 나은 실재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관념의 모험』(1933)에서 이 사변철학의 체계를 통해 다양한 영역의 인간 활동들, 즉 과학, 종교, 역사, 예술 등을 해명하는 가운데 문명사적 과제에로까지 시각을 확대하였다. 이는 그 체계의 현실적 활용성을 실험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2천 500여 년의 철학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이고 포괄적인 체계를 구축한 몇 안되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수학자로서 출발했고, 현대 물리학에도 상당한 식견을 갖추고 있던 화이트헤드가 전통의 관념과 당대의 연구성과를 응집시켜 구성해낸 거대하면서도 세밀한 체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다. 사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미 일개 철학자가 과학과 별도로 우주론 체계를 구성하거나 다른 과학의 체계를 심층적,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반성하기에는 벅찬 시대였다. 그렇기에 그가 『과정과 실재』에서 보여준 철학적 우주론은 어쩌면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최후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우주론은 물리과학에서 지식의 전형을 찾고 분석과 실증을 통해 정당성을 추구하던 시기, 그래서 감각을 떠난 인간의 통찰력은 신화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매도되던 시기에 태어났다. 사변적 구성은 인간의 경험을 오도하고 지식세계를 혼란과 정체로 이끌 뿐이라는 비판이 날카롭던 시기에 그는 오히려 사변이 인간에게 충실한 실재 경험을 가능케 하고 그럼으로써 지식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서, 과감한 체계 구성을 시도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변적인 지적 모험이야말로 인류문명을 끌고가는 궁극적 동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형화된 관념적 틀에 안주한 채, 분열과 분화의 길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회색의 문명은 오래지 않아 소멸한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이 시대시대의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할 화이트헤드 사변철학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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