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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10:45) from 84.173.71.224' of 84.173.71.224' Article Number :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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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주의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글에 담긴 사상체계 또는 칸트의 글을 연구함으로써 생긴 이후의 철학(→ 칸트).

성격과 유형

칸트주의에는 칸트처럼 철학을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인간 인식의 성격과 한계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진 다양한 철학들이 포함된다. 이 철학들은 칸트의 비판적 정신과 방법을 공유하고 독단론, 사변적 자연주의, 비합리주의 등에 반대한다. 칸트주의의 다양한 조류는 경험 지식의 성격, 인간의 인식과 도덕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선천적 범주 구조의 성격, 인간의 대상인식 뒤에 숨어 있는 궁극적 실재인 '물자체'(Ding an Sich)의 지위, 인식과 도덕적 관계 등 칸트의 철학에서 비롯된 관심사들 가운데 몇 가지를 나름대로 선택하여 연구한다(→ 인식론).

칸트의 철학체계는 인식의 성립에서 경험의 역할을 강조한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 등의 영국 경험론과 아이작 뉴턴의 과학 방법론, 그리고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체계화한 크리스티안 볼프의 형이상학적 합리론 등 서로 다른 기원과 성격을 가진 요소들을 종합한 것이었다. 이러한 칸트의 비판철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크게 3가지 유형, 즉 인식론적·형이상학적·가치론적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식론적 칸트주의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인식론 또는 과학 인식과 방법론에 관한 순수이론으로 보는 유형이다. 인식론적 칸트주의는 다시 생리학 또는 심리학의 연구에 기초한 경험적 칸트주의, 논리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마르부르크 학파의 논리적 칸트주의, 오스트리아의 알로이스 릴의 실재론적 칸트주의로 나눌 수 있다. 형이상학적 칸트주의는 비판철학을 형이상학 또는 존재의 성격에 관한 비판적 이론으로 보는 유형이다. 형이상학적 칸트주의는 독일 낭만주의의 선험적 관념론에서 출발하여 비판철학을 귀납 형이상학의 기초로 본 실재론으로 발달했다. 가치론적 칸트주의는 비판철학을 규범적·가치론적 반성이론으로 보는 유형이다. 가치론적 칸트주의는 칸트의 비판서인 3권(〈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의 방법을 사유의 규범으로 해석한 가치론적 접근법과, 비판철학을 사회적·문화적·역사적 조건에 의존하는 사상체계로 본 절충주의적 또는 상대주의적 칸트주의로 갈라졌다.

칸트주의 운동은 형이상학 대신 과학을 강조한 반철학적 실증주의가 우세해진 시점을 기준으로 두 시기, 즉 1790년에서 헤겔이 죽은 1831년까지와 1860년에서 현재까지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째 시기는 칸트의 주요저서 〈순수이성비판〉을 철저히 연구하고 교정하면서 시작되었으나 곧 독일 관념론의 낭만주의 경향과 뒤섞였다. 둘째 시기는 이른바 신칸트주의의 시기이며 전체적으로 실증주의에 반대했다. 초기 신칸트주의는 철학을 인식론과 과학방법론으로 환원했으며 20세기초부터 일어난 체계적 신칸트주의는 형이상학 체계를 세우려 했다.

초기 칸트주의(1790~1835)

칸트에 따르면 〈순수이성비판〉은 과학 연구에 필요한 예비탐구로서 방법론에 관한 저작이다. 칸트는 뉴턴의 방법(귀납·추론·일반화)을 데카르트와 볼프의 방법(자명한 직관에서 연역)보다 높게 평가했으며, 그결과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칸트는 '본체'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순수이성비판〉에 긍정적 역할을 부여했다. 칸트는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시작하여 인식이란 외부 실재의 기술이 아니라 인식하는 주관의 산물이며, 이 주관이 대상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칸트에 따르면 감각경험의 질료가 주어지면 주관의 선험적 요소가 인간의 경험과 과학을 구성한다. 이 선험적 요소는 첫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감성의 형식, 둘째, 실체·인과·필연 등 인간 오성의 범주, 셋째, 선험적 '자아', 세계 전체, 신 등 이성의 이념이다. 인간의 감성의 형식인 공간·시간과 그 재료인 '질료'가 결합하여 지각이 생기며 이 지각이 오성의 형식인 범주와 만나 현상에 대한 경험지식이 구성된다. 공간과 시간, 범주 등의 형식은 주관 자체에서 생긴다. 그리고 경험지식의 재료인 질료는 궁극적으로 물자체와 관계를 맺지만 우리는 물자체를 알 수 없다. 물자체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한계이다.

칸트의 이런 주장은 볼프의 추종자들과 칸트의 제자들 사이에서 많은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들이 칸트주의의 첫째 시기를 이끌었다. 초기 칸트주의자들은 칸트가 인식의 선험적 요소를 3가지로 구분하여 정신의 3가지 기능 차원, 즉 감성·오성·이성과 묶은 점과, 칸트가 물자체를 인식의 구성요소로 받아들인 점을 비판했다. 그들은 공간과 시간, 범주, 이성의 이념 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기능일 뿐이고 감성·오성·이성도 하나의 근본 능력을 3개의 각도에서 표현할 뿐이므로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선험적 주관만 있으면 물자체는 필요 없다고 논증했다. 초기 칸트주의 사상가들은 인식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선험적 절대주관을 다양하게 해석했다. 독일의 실재론자 카를 L. 라인홀트는 표상능력, 리투아니아의 관념론자 잘로몬 마이몬은 대상을 구성하는 정신능력, 칸트의 제자인 관념론자 야코프 S. 베크는 종합작용, 칸트주의에 대한 경험론적 비판자 G.E. 슐츠는 감각 인상, 윤리학적 관념론자 요한 G. 피히테는 자아와 비아의 본래적 대립, 미학적 관념론자 F.W.J. 폰 셸링은 '절대자아', G.W.F. 헤겔은 '정신' 또는 '절대정신', 염세적 낭만주의자 아서 쇼펜하우어는 '절대의지'로 보았다. 이 모든 사상가들은 물자체의 실재론적 해석을 거부하고 다양한 수준의 선험적 관념론을 선호했다.

신칸트주의(1860)

19세기 신칸트주의

실증주의가 모든 철학을 거부하자 이상하게도 칸트주의가 되살아났다. 왜냐하면 많은 사상가들은 실증주의 자체에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고 싶어했으며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과학 지식을 현상의 영역에 제한한 칸트주의가 바로 이런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순수이성비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그리하여 신칸트주의의 여러 조류들, 즉 경험론적·논리주의적·실제론적·형이상학적·가치론적·심리학적 조류들이 생겨났고 이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20세기에도 살아남았다.

경험론적·논리주의적·실제론적 학파들은 인식론적 신칸트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경험론적 신칸트주의의 대표자는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인 헤르만 L.F. 폰 헬름홀츠와 F.A. 랑게였다. 헬름홀츠는 칸트의 철학을 근거로 첫째, 지각이 외부 사물을 표상하지만 그 속성을 기술하는 것과는 방식이 다르고, 둘째, 공간과 시간은 지각하는 주관이 창조한 경험적 틀이며, 셋째, 인과는 선험적 법칙이고 철학자는 이 법칙을 바탕으로 절대적으로는 알 수 없는 실재를 추론한다고 주장했다. 랑게도 과학 지식을 현상 차원에 제한하고 물자체를 거부했다.

논리주의적 신칸트주의는 가장 유명하고 번성한 칸트주의 학파인 마르부르크 학파로서 랑게의 계승자인 헤르만 코헨이 창시했다. 코헨은 선험적 주관을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논리적 사유기능으로 보아야 하고 이 기능은 인식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치 미적분에서 수학자가 공간과 시간의 작은 조각을 상상하고 그 면적을 더함으로써 운동을 형성하듯이 경험은 철저히 인간의 논리적 정신의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코헨의 연구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파울 나트로프는 정밀과학의 논리적 기초를 연구하면서 심리학을 마르부르크 학파의 선험주의 안으로 끌어들였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인간의 기호화 능력을 강조하면서 논리주의에 근거하여 현대 철학의 역사를 밝혔다. 실재론적 신칸트주의는 과학적 일원론자 알로이스 릴과 그의 제자 리하르트 회니히스발트가 대표자였다. 릴은 마르부르크 학파의 논리주의에 반대하면서, 모든 인식은 주관 외부의 사물과 관계하므로 물자체가 인식의 구성에 긍정적으로 참여한다고 주장했다.

오토 리브만은 실재를 분석하면서 칸트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형이상학적 접근법을 도입했다. 낭만주의자 요하네스 폴켈트도 인간 자신의 주관적 의식의 확실성 외에 상호주관 영역에도 새로운 종류의 확실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도덕가 프리드리히 파울젠은 칸트가 언제나 형이상학자로서 활동했으며 〈순수이성비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가치론적 해석의 대표자인 빌헬름 빈델반트와 하인리히 리케르트는 모두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강의했으므로 가치론적 신칸트주의는 남부독일 학파 또는 바덴 학파라고도 부른다. 빈델반트는 철학사에 대한 '문제' 접근법으로 유명했으며 리케르트는 빈델반트의 이 견해를 체계화했다. 두 사람은 논리가 사유에 가하는 제약과 의무감이 사유에 가하는 제약이 똑같다고 보면서, 인간의 '행동'이 절대 가치(선)에 대답해야 하듯이 인간의 '사유'는 규제 가치(진리)에 대답해야 하며 이것은 인간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은 이 의무를 수행하는 규칙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선험주의를 심리학 용어로 해석하기 시작한 사람은 프리지아의 경험론자 위르겐 보나 마이어와 괴팅겐의 윤리학자이자 법철학자 레오나르트 넬존이었다. 다른 칸트주의자들이 객관적 인식의 선험주의적 분석에 몰두하고 있을 때 넬존은 주관적 자아 또는 내적 자아를 분석하면 정신의 선험적 장치를 곧바로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신칸트주의

신칸트주의의 최근의 발달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신칸트주의는 이제 인식론 학파로서만 여겨지지 않고 형이상학 학파로서 연명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 칸트 연구의 대부분은 칸트의 철학사상의 발달, 형이상학자로서의 칸트, 그의 존재론과 과학, 선험적 연역 등에 관한 것이다.

독일 이외의 칸트주의

칸트의 각성은 독일에 머물지 않고 서양철학에 널리 퍼졌다.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쿠쟁이 그의 영향을 처음으로 받아들였으며 샤를 르누비에는 개인적 비판철학을 옹호했다. 영어권 나라들에서는 칸트의 비판철학보다 헤겔의 관념론이 더 많이 흡수되었으나 스코틀랜드의 종교적 절대론자 에드워드 케어드와 스코틀랜드의 비판적 실재론자 로버트 애덤슨은 칸트의 영향을 받아들였다. 미국에서는 1840년경 뉴잉글랜드의 선험주의자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에 의해 칸트주의가 알려졌다. 물리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는 칸트가 헤겔주의에 대해 평형추 역할을 한 덕분에 자기의 실용주의를 세울 수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도 알폰소 테스타의 주도로 칸트 연구가 활발히 일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신칸트주의의 대표자는 실증주의에 반대한 실재론자 카를로 칸토니였다.

칸트주의에 대한 평가

오늘날 독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도 순수한 형태의 칸트 철학은 없지만 칸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문제점

과학이 경험적 기초를 가져야 하는 한 비판철학의 인식론은 과학철학으로서 이 경향에 일치했다. 그러나 과연 경험 없이도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지닌 인식을 얻을 수 있는가, 즉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현상학의 창시자 에트문트 후설은 칸트의 선험주의에 격렬히 반대했다가 결국 이 선험주의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왔다. 경험주의는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철학의 전통적 주제 대신 언어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존주의의 경우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에서 매우 독특한 해석을 제시했다. 코엔의 제자이자 형이상학자인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실재론적 접근법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인식의 형이상학을 분석하면서 2가지 형식의 존재, 즉 사유와 실재를 구분했으며 칸트와 반대로 사유의 원리가 실재의 원리와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하르트만은 칸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형이상학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특히 그는 공간과 시간이 선험적이라는 칸트의 주장을 의심했으며 인간의 인식에서 물자체가 차지하는 지위를 분석하면서 물자체의 역할을 소박하게 인정했다. 윤리학 분야에서 현상학자와 실존주의자는 칸트 윤리학의 매우 형식적인 성격을 불만족스러워했으며 구체적 의무들을 명시한 '실질적' 윤리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결함

칸트는 현대 철학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중요한 주제를 제공했다. 그러나 1860~1918년의 시기에서와는 달리 그뒤 그의 철학은 눈에 띄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철학을 과학철학에 제한하는 경향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 칸트주의는 점점 구체적인 관심사에 기울고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이다. 이런 결함은 특히 윤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심각한 것이다. 셋째, 칸트주의의 주관주의적 성격은 사유하는 주관인 자아의 진정한 보편성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인간의 인식이 주관의 구성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강요한다. 이런 주관주의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 접근하는 길을 원천봉쇄한다. 이 3가지 주요결함 때문에 칸트주의는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문제와 사상을 제공했다.

H.J. de Vleeschauwer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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