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cle Bank

한국신학논문은행에 대하여

2007/04/24 (07:05) from 84.173.190.17' of 84.173.190.17' Article Number : 499
Delete Modify 문장수외 Access : 5062 , Lines : 330
양자역학의 <숨은 변수> 개념에 대한 역사비판적 접근




양자역학의 <숨은 변수> 개념에 대한 역사비판적 접근*


경북 대학교 기초 과학 연구소·문장수**·최상돈***



I. 문제 제기

II. 양자역학에 대한 Einstein의 해석

III. David Bohm의 Einstein해석과 <숨은 변수>

IV. Louis de Broglie의 <입자-파동 이원성>과 <숨은 변수>

V. John S. Bell에 있어서 <숨은 변수>와 Bell-Théorème

VI. 결론



I. 문제제기


<숨은 변수> 개념은 20 세기 초반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물리학의 토대문제>와 관련하여 물리학적 정신들의 실질적인 전개를 이끈 중요한 개념들 중의 하나임에 분명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한 용어이지만, <의식주관>, <물리적 실재>, <관찰>, <측정>, <결정>, <표상의 통계적 특성>, <이론적 완전성> 등의 소위 물리학의 인식론과 관련되는 다양한 관념들을 총망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양자역학의 탄생과 발전에 폭넓게 기여한 Einstein은 1927년부터 그것의 인식론적 혹은 존재론적 해석을 둘러싸고 Niels Bohr, Max Born을 위시한 코펜하겐 정통파와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 오늘날은 어느 정도 그들 상호간의 다양한 논쟁들의 방향을 가닥잡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학적 전개에 필연적인 국면이지만, 상호간에 이해의 빗나감과 <색깔의 불투명성>이 농도 깊게 깔려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숨은 변수>를 중심으로 전개된 다양한 물리학적 논의들 중에서, 우선 Einstein의 양자역학적 해석을 전체적으로 구조화하고, 이것에 연유하여 전개된, David Bohm, Louis de Broglie, John S. Bell의 대안들을 <역사비판적> 관점에서 추적함으로써, 아직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토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념들에 가능한 한 <투명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토대에 주안점을 두는 우리의 이러한 역사비판적 분석은 자연히 물리학적 의미의 구체적인 실험적 사태들의 재구성 혹은 그것들에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물리적 수식들과 방정식들의 연역과정들에―단 하나의 실험과정과 그것에 관련된 방정식의 연역과정의 재구성도 사실 우리에게 허락된 지면을 넘어설 것이다― 대해서는 물리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둔 채, 과학사 혹은 물리 교육학적 관심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에서 기본적 <개념들의 분석>과 역사적 <변형 과정들>을, 그것도 <숨은 변수> 개념을 중심으로, 개괄하는 데 만족하고자 한다. 그러나 <역사비판적>이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함축하듯이, 문제의 논의들의 단순한 역사적 제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의 인식론의 가장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모든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우리의 직관적 표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양자계의 상태들을 직관적인 수준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자칫 <부적절> 혹은 <범주착오>를 범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즉 문맹퇴치 운동을 위해 프랑스의 모든 관공서에 붙어 있는 한 표어를 상기할 때,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용인 즉, "말을 하는 것은 멀리 간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더 멀리 간다"이다. 이를 읽은 논자는 즉각적으로 이 문장의 앞뒤에 각각 한 구절씩 더 부연하여, 다음과 같이 교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 "감각-운동적 생물체보다는 음성 기호를 사용하는 동물은 더 멀리 간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더 멀리 간다. 그러나 자연 언어를 쓰는 것보다는 인공언어를 쓰는 것은 더 멀리 간다." 수학적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달나라에 가겠는가 ? 말하자면, 일상 언어로 진행될 우리의 이 논의는 논리학, 수학, 물리학 등에 고유한 <인공 기호들>을 직접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보다 <엄밀성>, <풍부성>, <필연성> 등이 훨씬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에 어느 정도 접근할 지 의문이며 걱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지 발달 이론>의 본질적인 주장, 즉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든 행동적 차원으로 환원되어 <회귀적 직관지>가 되기 전에는 문제의 인식주관에게는 애매하거나 모호한 채 머문다는 강령에 힘입어 무리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감히 시도해 보고자 한다.


II. Einstein의 양자역학 해석


초기의 <양자 이론> 자체는 제법 고양된 <형식주의>의 방향에서 제출되었지만, 이 이론의 <물리학적 해석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분명하지 못했다. 세부적으로 많은 해석적 변이들이 있었지만, 당시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분명 코펜하겐-괴팅겐 학파의 해석일 것이다. 이 입장의 근본적인 방향은 오늘날 거의 분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Niels Bohr의 <상보성 철학>을 본질 구조로 갖는 <관념론적 인식론>이었다. 단순히 <물리학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 해석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이러한 코펜하겐 학파의 운동에 자극된 Einstein은 그러나 물리학적 이론들이 단순한 <현상학>에 만족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고, 물리학의 학적 <자율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근본적인 요구들, 따라서 물리학적 이론들의 인식론적 내지는 메타 이론적 토대들을 마련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활용한 수단은 특수 혹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처럼 기하학적 표상과 그것의 대수학적 연역도 아니면, 실제 실험실에서 구체적 실험에 의존한 것도 아니라, 소위 Galilei가 자유낙하의 문제를 다룰 때처럼, <사유 경험> 혹은 <사고 실험>이라 명명되는 그 방법이었다.


1. 제 1 기 : 실재성 문제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토대문제와 관계하여 과학사가들은 Einstein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 번째 시기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고무된 <장이론>의 방향에서 물리학의 제1원리를 논구하는 시기로, 이 때 그의 사유를 지배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물리학적 <실재의 본성>과 그것의 <표상>이었다. 당시의 양자역학의 정통파들은 <실재>를 <관찰> 혹은 <측정>과 동일시했다. 양자계의 어떤 입자들의 존재성은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거나 측정할 때, 오직 그 때에만 확보된다. 그러나 Einstein은 반대로 물리적 실재는 측정 행동과 독립적으로 사유되고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를 원했다. 그가 1949년 <비판에 대한 답변서> 속에서 Michel Besso에게 "처음부터 계속적으로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선신"을 옹호한다고 쓸 때, 그가 말하는 <선신>이란 기독교적 <인격신>이 아니라(그는 종교를 떠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에), <최초의 실재>, 즉 의식적 주관이 그것에 포섭되어 있든 독립되어 있든, 우리의 물리적 이론이 그것에 일치하든 하지 않든, 어쨌든 그 자체적으로 있는 즉자적 존재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물리학적 <실재>란 바로 이러한 원초적인 순수 존재를 의미하는 바, 우리 <의식> 혹은 <측정>에 단순히 환원된 관념적 실재 이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Einstein의 <실재성> 개념이 고전역학적 실재성 개념에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역학에 있어서는 <측정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단지 <예측될 수 있는 모든 물리량들>도 곧 물리적 <실재성>을 갖는 것으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인식론은 측정이전의 어떠한 존재론적 즉자도 거부하며, 관찰 혹은 측정에 의해 현상으로 등록될 그 때만, 오직 <실재>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직관적으로 말하면, 지금 여기서 직접적으로 우리가 <백두산>을 지각하지 않더라도 <백두산>은 동서경, 남북위 몇도 위치에 <있다>고 예상하고 확신하지만, 그것은 단지 신념이고, <지금 여기서 직접적 지각>만이 <실재>라고 주장하는 고펜하겐 양자역학 인식론은 따라서 그 당시의 소위 <현존성의 우위>적 사고방식을 지지한 <현상학적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고전적 실재론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자역학적 결과들을 무시할 수도 없었던 Einstein의 고민은 양 입장의 중도적 노선에서 양자를 적절히 종합한다 : "만일 우리가 물리계에 대한 그 어떤 방식의 교란이 없이, 한 물리량의 값을 확정적으로(즉, 확률 1로)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의 한 요소가 존재한다(아포로 실재성)."따라서 관측량과 예측될 수 있는 모든 물리량이 곧 실재라고 본 고전적 실재론과는 달리, Einstein의 실재론에서는 한편에서는 관측량과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의 계에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일체의 교란 혹은 간섭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예측될 수 있는 물리량들이 실재이다.


2. 제 2 기 : 완전성 문제

물리학적 <서술>의 문제는 이러한 물리학적 <실재>가 확보된 뒤에 비로소 정당한 문제로 고려될 수 있으며, 사실 물리학적 이론의 <완전성>의 문제는 Einstein의 학적 추론의 질서에 있어서 두 번째 국면을 구성한다. 실재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이론적 완전성의 문제는 이론적 표상의 실재에의 적절성의 문제일 것이다. 거시적으로 말하면, 완전한 이론이란 실재의 모든 요소들을 다 고려해야 한다. 이론적 <완전성>의 이러한 요구를 양자역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아무리 양자계의 극미적 크기라 할지라도 물리학적으로 완전한 이론(잘 정의되고 잘 제한된 범주를 갖는 이론) 속에서 정의된 크기라면, 그것에 대응하는 실재의 요소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연산자> 혹은 그것을 도구로한 <측정>이 <실재성>의 유일한 보증자라고 하면서, 우리가 대수적으로 기술하는 그러한 수치들에 대응하는 구체적 물체의 존재성은 알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Einstein은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고 평가한다.

이론과 실재, 인식과 대상, 예측과 확인의 일치성의 문제는 물리학의 정의의 선험적 요구이지, 우리의 예측이나 확인이 실제로 얼마나 엄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별도의 문제이다. 전자는 물리학의 완전성의 권리문제라면, 후자는 실질적인 사실의 문제이다. 사실에 있어, 우리의 예측은 종종 부정확하고, 측정장치의 엄밀성의 격차 때문에 엄밀한 측정을 놓친다면, 그것은 인식주체인 우리측의 제약이지, 존재론적으로 반드시 그래야 된다는 당위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Einstein이 <완전성> 관념으로 물리학의 원리를 세우려고 노력할 때, 물리학적 이론의 타당성 혹은 객관적 가치문제로서의 권리문제이지, 개별적 이론들에 고유한 다양한 개별적 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3. 제 3 기 : 국소성 문제

세 번째 국면은 <완전성>의 요구는 논의에서 제쳐 둔다 하더라도―사실 이 요구는 물리학적 이론의 이상성이지만, 객관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는 검정 수단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유는 실재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주장과 "먼저 사유가 없으면 실재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단순한 논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의 형식적 혹은 실질적 측면에서 대등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물리학적 이론이 <가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내지는 <원리>를 탐색하는 시기이다. 즉, 어떤 실질적 물리 체계가 있다면,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특성화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 다시 말하면, 어떤 물리학적 이론이 있다면, 이 이론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를 관찰할 수 있건 없건 간에(완전성의 요구의 유보),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의미를 지니기 위한 최소의 조건은 무엇인가 ?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두 하위 체계의 상관관계의 의미이다. 즉 상관관계 속에 있는 두 체계가 있을 때―양자역학적 실례를 들어 위치와 운동량이라 하자―, 위치 체계(A)의 가능성의 조건이 운동량 체계(B)의 가능성의 조건을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반대로 B의 가능성의 조건이 A의 가능성의 조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대항하여 이것을 Einstein의 <분리 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separability)라고 하는바, 때로는 광의로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라고도 한다. 이는 <실재성의 원리>에 이어, 물리학적 이론의 가능성의 두 번째 근본적인 원리로 고려된다. 여기는 사실 이미 실재와 이론의 이원성이 전제되고 있음이 사실인데, 그러나 완전성의 요구를 보류한 채, 문제의 체계의 이론적 기술의 최소한의 조건만 따진다. 물론, 문제의 대상의 구체적인 측정 혹은 관찰을 수행할 수도 있겠는데, 이러한 광의의 <국소성의 원리>을 대상적 측면에서 말한다면, A와 관계된 측정이 B와 관련된 측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이 원리는 함축할 것이다.

그런데 <분리 가능성의 원리>와 <국소성의 원리>는 학자에 따라 한편에서는 자주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내포적으로도 외연적으로도 미묘한 차이를 함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개념 모두 <실재성>을 전제한다는 차원에서 유사하다. <분리 가능성의 원리>는 언뜻 Descartes의 보편적인 단일 실체인 <연장>의 <무한한 분할 가능성> 개념을 상기시킨다면, <국소성의 원리>는 Descartes의 <개체성의 원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양자역학과의 관계에서 Einstein의 이 두 원리에 대한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해석들 중의 하나는 Howard의 해석이다. 후자에 따르면, Einstein에 있어서 <분리 가능성의 원리>란 공간적으로 분리된 둘 또는 그 이상의 체계들은 그들 자신의 분리된 실재 상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국소성의 원리>는 한 체계의 상태는 광속보다 느린 유한한 속도로 전달되는 <제한적인 효과>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관찰에 종속되어야 하는 이러한 <효과> 없이는 문제의 체계의 어떠한 변화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즉 Newton의 운동의 제 1 원리가 시사하듯이, 어떤 외력없이는 초기의 체계는 영원히 초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이다. 만약 외력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광속보다 낮은 단계의 속도가 문제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측정될 것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만약에 광속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환영적인 실체> 혹은 이것에 동가치적인 어떤 것이 있다면―이러한 방향의 문제 정립이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될 <숨은 변수>이다―, 문제를 다르게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의 모든 물리학적 이론들은 광속 내에서만 유의미하다는 것을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이미 잘 논증했다. 어쨌든 <분리 가능성의 원리>와 <국소성의 원리>의 관계를 말하면, 후자는 전자의 가능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좀 더 근본적인 원리이다. 즉 <개체의 수다성>의 원리에 앞서 있는 <개체 자체의 가능성>의 원리에 비유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미 주석 번호 1에서 제시했듯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표준 해석은 <비분리성>(nonseparability)과 <비국소성>(nonlocality)을 기본 강령으로 수용한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비분리성>이란 세계는 각각의 개별적인 독립적 체계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다양한 사물들을 구조적으로 또는 체계적으로 구분하거나 변별화하여 각각의 사태에 마치 고유한 자기 동일적 실체가 있기라도 하듯이 이해하고 사용하지만, 그것은 단지 도구적 편리이고, 세계는 분리될 수 없는 일자라는 철학적 관념을 <비분리성>이라는 용어는 함축한다. 따라서 어떤 색깔의 안경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듯이, 양자역학에서는 측정이 문제시될 때, 거기에 활용된 <연산자>의 특성에 따라 <상태 환원>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비국소성>의 관념은 독립적으로 고려된 두 체계 사이에서, 따라서 비가환적인 두 물리량 사이에서 한 물리량의 측정행위는 단순한 측정행위 그 자체로써 다른 쪽 물리량의 상태를 예측불가능하게 <교란>시킨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원격 작용>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이 용어는 TV의 리모콘의 역할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후자에서는 충분히 그 인과성을 추적할 수 있지만, 전자에서는 어떤한 인과성도 보지 못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다시 고안하게 된다.

결국 <분리가능성>과 <국소성>이 각각 <분리불가능성>과 <비국소성>으로의 대체는 바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대비의 본질을 드러낼 것이다. 설명하자면, 고전역학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연속성>의 관념이었다. 예를들어 고전역학의 한 함수인 속도와 시간, 그리고 거리 사이에 성립하는 한 관계식(s=vt)을 보면, 이 식에서는 편력 공간은 속도가 주어지면, 시간 변화에 따라 <연속적인> 값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오면, 상황은 반대이다. 전자의 스핀을 예로 들면, 이것은 다시 스핀 각 운동량(spin angular momentum)과 스핀 자기모멘트(spin magnetic moment)로 구분되는데, 그들 사이에 μsubs = - e over m S

( μ sub s

= 스핀 자기 모멘트, S = 스핀 각 운동량)라는 관계식이 성립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스핀(S)이 있을 수 있는 존재 상태는 오직 <두 상태>(spin up 과 spin down)뿐이고 그 각각의 상태에 고유한 값, +h/2 와 -h/2 가 각각 대응한다. 말하자면, 스핀의 거동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연속적인 공간적 궤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spin up 상태로 어떤 때는 spin down 상태로 양자택일적으로 존립하고 다른 모든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측정 이전에는 어떤 상태에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여기서는 두 경우뿐이기에 이것 아니면, 저것일 것이다. 각 경우는 1/2의 확률을 갖고서 있지만, 결정론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이런 국면을 <중첩 상태>라 하는데, 쉬뢰딩거 방정식(때때로 파동방정식, 상태방정식라고도 명명)은 바로 이러한 중첩상태를 물리학적 인공언어로 표현한 서술 형식이다. 스핀이 가질 수 있는 값도 두 값 이외에 중간적인 어떠한 값도 없다. 즉, <고유 상태>에 대응하는 <고유 값>이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어떤 연속적인 매개 값이 없는 이런 국면을 <불연속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보다 더 심오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국면이다. 즉 두 개의 전자, A와 B가 있다 하자. 그들 각각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항상 두 가지의 가능성, up 상태 또는 down 상태를 양자택일적으로 가질 수만 있다. 여기서 up 상태를 '+'로, down 상태를 '-'로 표기한다면, 두 전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조합 짝은 다음과 같은 4 가지의 가능성으로 주어질 것이다 : [+, +], [+, -], [-, +], [-, -]. 그런데, 총 스핀의 합이 0인 singlet 상태에 있다가, 그들 상호간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전자 A의 스핀 상태를 측정해서 up 상태를 확인했을 때, 전자 B의 상태는 반드시 down 상태이고, 반대로 일자가 down 상태일 때, 다른 일자는 반드시 up 상태로 측정된다면, 이는 일자의 측정 그 자체가 다른 일자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아닌가 ?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한 영향의 과정을 전혀 추적할 수 없다면, 이는 광속도를 넘어서는 어떤 영향을 가정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개별적 체계 하나만을 고려하거나 측정할 경우 유한적인 고유 상태 혹은 고유값들이 확률분포로 나타나지만, 동일한 것으로 고려되는 체계를 둘 또는 그 이상을 동시에 고려하거나 측정할 경우, 그들 사이에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손 치더라도, 일자의 측정 행위 자체가 다른 일자의 상태 혹은 값을 부지부식간에 결정해 버리는 이러한 국면을 <환원>(reduction), <붕괴>(collapse), 드물게는 <양자 도약>(quantum jump) 등으로 표현한다. eigen이라는 독일어는 <특징적인> 또는 <고유한>이라는 형용사인데, 이러한 <고유 함수>, <고유 상태>, <고유 값>의 존재는 고전역학의 <연속성> 관념을 <비연속성>으로 대체시키게 했다면, <양자 도약>, <환원>, <붕괴> 등의 관념들은 고전역학의 <분리성 원리>와 <국소성 원리>를 <비분리성의 원리>와 <비국소성의 원리>로 대체하면서 양자적 체계에 고유한 속성을 정립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중 슬릿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위치의 국소화는 운동량의 결정을 불가능하게 하고 반대로 운동량의 결정은 위치의 국소화를 배제하는 이러한 상황을 Einstein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 양자역학은 이처럼 교환되지 않는 두 가관측량 A와 B가 있을 때, 즉 [A, B]≠0 일 때, A의 고유 상태에 대하여 B는 동시 고유 상태를 갖지 않으며 B의 특별한 값을 발견할 확률만이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EPR는 1) A와 B 둘 다 물리적 실재가 아니거나, 2) 양자역학이 불완전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고 상정해 두고서, 첫 번째 대안이 모순이라는 것을 물리학적 계산법에 의해 논증하면서, 결국 따라서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수용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위 문제를 보다 새로운 각도에서 비판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적 표상에 덜 친숙한 논자 자신과 독자를 위해, 이 문제와 관계하여 장 회익 교수가 준 직관적인 실례를 여기서 재정리하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지금 속이 꽉 차 있는 하나의 단단한 고체 구가 있다고 하자. 그 내부는 어떤 폭발 장치가 있어서 이것이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고 하자. 편의상 왼 쪽으로 튀어 나간 조각을 물체1이라 부르고 오른쪽으로 튀어 나간 조각을 물체2라 부르기로 한다. 이때 이들 각각에 대해 그 질량(a)과 표면적(b), 그리고 형태(c)를 관측할 때, 만일 그 질량이 전체 질량의 반 이상의 값을 가지면 이를 +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라 부르기로 하자. 마찬가지로 그 표면적이 전체 표면적의 반 이상인 경우를 +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로 부르고, 또 그 갈라진 면의 형태가 볼록한 경우를 +로, 그렇지 않은 경우(오목한 경우)를 -로 부르자. 그러면 이들 조각 중 어느 하나의 질량이, 가령 +이면 나머지 하나의 질량은 반드시 -가 되며, 그 표면적이나 형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 물체1이 a(+), b(-), c(-) 라는 물리량들을 가지면, 물체2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측정하지 않더라도 a(-), b(+), c(-)의 값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가 또한 분명히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a, b, c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변수, 양자역학적 표현에 따라 소위 <비가환 연산자들>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 물체1의 질량(a)이 + 물리량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물체2의 a는 -라고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두 대상에 대해 a는 동일한 연산자이기에), 물체1 또는 물체2의 표면적(b) 또는 형태(c)가 어떤 물리량을 가질 것인지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겠는가 ? 물론 +아니면 -일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측정이전에는 어떤 결정적인 값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가능적인 몇 개의 값이 발견될 확률이 중첩되어 있을 뿐이고 측정 후에 비로소 관측된 물리량만이 유일한 실재성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코펜하겐 해석이다. 그렇다면, a, b, c 모두 다 실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EPR는 말한다. 왜냐하면, a가 측정될 때, b, c는 실재성을 갖지 못한 <무>이거나 기껏 <잠재>로 머물듯이, b만 측정하면, a, c가 또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관한 방정식들을 객관적인 실상이라고 말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양자역학은 자기모순에 빠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EPR의 역리이다. 따라서 설사 a만 측정했다 하더라도 b, c도 역시 실재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b, c까지도 실재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확정적인 예측을 양자역학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양자역학이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이다는 것이 EPR의 역리의 요지이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이러한 불완전한 특성은 여러 체계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관련되는 전체성의 통계학적 기술에 있다. 즉 양자역학은 통계적인 이론이지, 개별적 체계를 직접적으로 기술하는 엄밀하고 정확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이 엄밀한 이론이라면 그 이론의 서술의 중심 장치인 소위 <파동 함수>는 <국소성의 원리>를 준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Einstein는 여기서 무심결에 세 물리량의 <동시> 측정이 가능하다는 전제없이도 이들이 모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잘 못 생각한다. 우리의 사유는 언제나 질서적이며 순서적이다. 이는 우리의,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추론의 가장 중심 원리가 <인과성>이라는 데서 이미 분명히 볼 것이다. 우리의 상식적 신념은 세상 만사가 지금 여기 동시에 있다고 믿지만, 사실 이는 단순한 신념일 뿐 어떤 두 물체의 <동시 존재성>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Kant는 논리적 차원에서 해소했다. 즉 어떤 두 사건 A와 B가 있다면, 한편에서 A 사건 다음에 B 사건을 보는 것이 가능하고 다른 한편으로 B 사건 다음에 A 사건을 보는 것이 가능할 때, A와 B는 <동시 존재한다>고 추론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이러한 단순한 관념적인 해결이 아니라 실제로 동시성의 물리학적 측정의 원리를 구축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동시성의 상대성>을 논증하고 만 장본인이 바로 Einstein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아니었던가 ? 간단히 말하면, 어떤 복수적 상태들의 동시 측정의 가능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이 사실인 만큼, 그러한 동시적인 확인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동시 존재성>을 말한다는 것은 일상적 생활의 가능성을 위해 유용한 편리한 신념은 될 수 있지만, 엄밀한 학적 판단으로 고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용적 도구적 차원 혹은 권리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현실의 학적 사태들의 실질적인 논리의 차원에서는 Einstein의 <실재론>의 요청에 대해서 Bohr의 <상보성>의 승리를 말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양자역학의 토대 문제와 관계하여, Einstein의 사유 관심 변천을, <실재론적 요구>, <완전성의 요구>, <분리 및 국소성의 요구>라는 세 시기로 구분하여, 역사비판적으로 분석했는데, 이 동안에 <인과성>과 <결정론>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언급하기를 삼갔다. 왜냐하면, Einstein 이후 그를 해석하는 양자역학의 주요 대가들은(우리가 뒤에서 곧 살펴보겠지만) 전자의 세 <요구>를 후자의 두 <문제>와 동일한 문제로 간주하면서, <인과론적 결정론>의 측면에서 그를 해석했으나, Einstein 자신은 그들이 자기를 잘 못 이해한다고 계속 말했기 때문이다. 소위 <숨은 변수> 개념이 바로 이러한 <인과론적 결정론>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었으나, Einstein 자신이 과연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함축할 수 있는 논의를 했는지의 여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곧 보겠지만, 이 문제를 두고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을 미리 밝히자면, 이미 어느 정도 암시되었듯이, 전자의 세 문제는 물리학의 가능성 내지는 <객관적 가치 문제>라는 소위 <선험적 권리 문제>이고, 후자의 두 문제는 현재 실제로 전개된 물리 이론들의 <실상 문제>이다는 것이다. 이 말이 함축하는 의미는 이러하다. 만일에 <실재론적 요구>와 <인과적 결정론>을 동의어로 간주한다면, Einstein는 인과론적 결정론자이고 따라서 Bohr의 <상보성> 혹은 Heisenberg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근본으로 삼는 코펜하겐 인식론(비결정론)과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Einstein는 권리적 측면에서 물리학의 정의를 구축하는데 관심을 가졌지, 사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해석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완고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경우에는 <실재론적 요구>와 <비결정론적 인식론>이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Michel Paty는 이 점에 관한 우리의 입장의 좋은 후원자이다. 그는 Einstein 해석가들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뒤에 있는 보다 심오한 의미를 놓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Einstein이 1949년 Michele Besso에게 보낸 원문은 "나는 소위 처음부터 연속적으로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관념에 반대하여 선신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연속적으로 주사위 놀이를 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은 <실재>가 있고 난 연후에는 그것이 <비결정론적>, <확률적>, <통계적>일 수 있다손치더라도, 적어도 처음 시작에서부터 <내기> 혹은 <도박>으로 최초의 실재가 정초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권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함축할 것이다. <권리 문제>와 <사실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실재론>과 <결정론>을 혼돈한 데서 Einstein을 코펜하겐 인식론과 대립적으로 정립시키게 되었다는 것이 Paty의 주장이다.


III. David Bohm의 Einstein해석과 <숨은 변수>


David Bohm은 Einstein과 Pauli에 의하여 그 진가를 인정받은 자기의 주저 Quantum theory―지금은 이 분야에 한 고전이 되었다―를 출판할 당시에는 Bohr의 상보성 철학의 깊은 영향 하에서 <숨은 변수>와 <양자 역학>은 양립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즉 <숨은 변수 이론>은 일련의 비가환적인 물리량들에 실재의 일련의 요소들이 동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함축하는데, 이는 <양자 역학>의 <불확정론적 인식론>―비가환적 두 물리량의 동시 실재성을 거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에 대립된다고 Bohm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Bohr의 관념론적 접근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과 특히 Einstein과의 서신 혹은 공개 지면을 통한 연속적인 논쟁은 Bohm으로 하여금 <숨은 변수>의 문제를 재고하게 했다. 이 때, 그는 Einstein의 <실재론의 요구> 혹은 <완전성의 요구>를 <관찰주의의 전망>―그러나 Einstein은 단순한 경험론적 관찰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을 자주 말했다―에서 특성화한다. 즉 양자역학은 개별적인 체계에 대한 가장 완전한 기술이 아직 못된다는 Einstein의 지적을 주시하면서,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근본 원리인 <파동 함수>에 새로운 한 형식 , R과 S는 실수 함수(밀도 확률, p(x) = R^2 (x ) = ⁰Ը ‧⁰^2

)인데, 이들 각각의 방정식은 쉬래딩거 방정식 안에 있는 파동함수(Ը)에 근거하여 얻어진다. S의 방정식은 Hamilton-Jacobi의 역학 방정식에로 되돌아 온다. 이 S의 방정식은, h가 0으로 수렴하면, 고전적 극한에 있게 된다. 이 S의 그라디엔트, {∇S} over m

는 고전 극한에서는 문제의 입자의 위치 x에서의 속도로 해석된다. 을 - 이것의 세부적인 관계식의 도출 과정은 뒤에 있는 부록1을 참조 바람 - 주면서 Einstein의 <완전성의 요구>를 <인과론적 결정론>의 방향으로 끌고 간다. 즉 Bohm은 <파동함수>(՘)에 의해 기술된 전체성의 각각의 입자는, <초기 상태>가 주어지기만 하면, <위치>(x)와 <운동량>(mv)을 소유하며, 따라서 잘 규정된 궤적을 확보한다. 고전적 포텐셜에 양자적 포텐셜 , 즉 위치 함수가 첨가된다. 이러한 양자적 포텐셜은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며, 입자들의 비고전적 운동들의 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위치>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궤적을 기술하는 <변수>가 <숨어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그 근본적인 변수가 숨어 버리게 되는 것은 문제의 <체계>와 <측정 장치> 사이의 <상호작용>이 체계 전체성에 근거한 양자적 포텐셜에 순간적인 동요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라고 고려한다. 즉, Bohm은 우리들의 <측정 장치의 한계>에서 <환원>이 기인되지 <파동함수 자체>는 정보 교환이 없는 일련의 온전한 과정을 확보할 수 있고, 따라서 Einstein의 <상대성 원리>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지지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해석은 양자역학적 비국소성의 사태도 설명하면서 동시에 파동함수의 환원의 난점도 모면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파동함수는 Einstein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통계적 확률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장을 표상한다. 따라서 이후의 모든 물리학적 예측은 양자역학적 예측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거시계의 예측의 정확성은 단지 양작적 예측의 특별히 제한된 경우이다.

그러나 Bohm의 기대와는 반대로 Einstein은 "결정론적 방향에서 양자역학을 해석하려는" Bohm의 시도는 "너무나 손쉬운" 방법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양자역학에 대한 가능한 해석들 중의 한 해석일 뿐인데, 특히 <경험론적> 색조가 강한 해석이라고 Max Born에게 보낸 서신 속에서 말한다. 결국 Einstein은 쉬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들 중에서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은 Born에 의해 제안된 통계학적 해석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점에 대해 Bohm은 Einstein에게 다음과 같이 쓴다 : "당신이 보기에 나의 관점은 그럴듯하지 않다는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은 나의 관점을 수락하기를 원치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aty에 따르면, Bohm에 있어 "그럴 듯함"이란 주관적인 느낌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어떤 이론의 수락 혹은 거부의 유일한 기준은 그 이론의 내적 일관성, 알려진 사태들과의 일치성, 실재에 대한 객관적 기술을 줄 수 있는 능력 등이어야 하지 이러한 주관적 감으로 어떤 이론을 매도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부당한다는 항의를 함축한다고 해석한다. 사실 Bohm은 Einstein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명시적으로 항의한다 : "당신은 나의 모델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논증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이 모델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든 사태들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바로 뒤에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을 본다 : "어떤 이론을 거부하기 위해 [논리적 단순성이라는] 당신의 원리를 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Einstein도 왜 Bohm의 입장을 지지할 수 없는가를 단순한 주관적 성향이 아닌 논리적인 이유를 1953년 Aron Kuppermann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언급한다 : "Bohm 박사는 30 년 전에 De Broglie가 착안한 관념을 재발굴하여, 대단한 통찰력으로 이를 확장시키고 심오화했다. 이렇게 한 목적은 문제의 체계가 속하는 전체성을 서술하는 대신에 문제의 그 개별적 체계 자체를 서술케 하는 대안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 논리적 관점에서는 작금의 양자 역학에 대한 이러한 형식주의적 해석"에 대해 논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방향의 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Einstein은 말한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Bohm의 이론은 고전적 경우를 제한적인 것으로 되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Bohm 자신은 자기와 De Broglie에 의해 착안된 인과적 해석이야말로 유일하게 거시적 경우를 제한적인 경우로 되찾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양자계에서 문제시된 전체 구조에 관련된 모든 토대적 개념들을 완전히 새로이 개조함이 없이, 작금의 양자역학에 어떤 몇몇의 새로운 변수를 첨가하는 것으로는 실제로 문제시되고 있는 양자역학의 통계적 특성을 제거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Einstein의 일관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중첩원리>와 <통계적 해석>은 서로간에 분리불가능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계적 해석을 피해야 하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곧 더 이상 쉬뢰딩거의 선형 방정식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쉬뢰딩거 방정식의 <선형성>이란 바로 <상태들의 중첩>을 함축한다라고 Einstein은 강조한다. 이러한 Einstein의 논리는 사실 Bohm의 이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인과적 결정론적>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모든 태도들을 거부하는 공통된 논거로 활용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재성>, <완전성>, <국소성>을 주장한 장본인인 Einstein이 철저하게 양자역학과 관련해서는 <인과성>, <결정론>을 거부한다는 것을 다시 볼 것이다.

1954년부터는 Bohm 자신도 양자역학의 통계적 속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대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인과적 속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활용된 방법은 당시의 구조주의이다. 즉 이제 Bohm은 파동함수는 물질의 통계적 속성을 표현하며, 보다 근본적인 어떤 장의 통계적 근사를 나타낸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과적 해석의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의 가능성의 방법을 구조적 위계의 관점에서 찾는다. 즉 그는 통계적 확률적 특성을 속성으로 하는 양자역학적 지평 아래에 인과적 연속적 방법으로 결정되는 운동들의 영역인 <하부양자적 지평>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원자적 지평의 사태들만을 고찰할 경우 불규칙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전개되는 운동들이 문제시될 것이고 따라서 <우연성> 또는 <통계적 확률성>의 법칙을 정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자들의 우연적 거동들 아래에 있는 어떤 새로운 실체들의 관점(숨은 변수의 관점)에서 본다면, 외관상의 통계적 특성은 실재에 있어서는 <필연적 인과성>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Bohm은 물리학의 토대에 대한 인식론적 해석의 방향도 상대적으로 보다 더 미시적인 단계에서 보다 더 거시적인 단계에로 진행되어야 하지 그 역방향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Bohm이 볼 때, Einstein은 양자계의 사실들을 인정하고 이러한 양자역학의 인식론에서 고전물리학의 인식론을 개조하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고전역학의 인식론을 단정적으로 인정하고 양자역학의 인식론을 불완전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Einstein은 또 다시 직접으로 Bohm에게 쓴다. "미시적 구조들의 끝없는 위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대안은 오늘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의 생각이지만, "나는 미시계를 위한 법칙만 믿거나 또는 거시계를 위한 법칙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엄밀한 타당성을 갖는 법칙들만을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들은 논리적으로 단순하며, 바로 이러한 단순성에 대한 신뢰가 나의 최고의 안내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처음 출발에서부터 경험적 사실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연이 조직화되는 방식이 이러한 나의 신념에 일치되지 않는다면, 자연을 보다 심오하게 이해할 희망은 우리에게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논리적 단순성>도 그것에 활용된 기본적 개념들이 좋지 못하면, 우리를 기만할 수도 있다는 것을 Einstein은 인정한다. "예를들어, 실재는 연속적인 장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 정확하지 못하다면, (그것을 기술하는) 법칙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단순성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나의 모든 노력들은 허사일 것이다." 요약하면, Einstein에게 있어서는, 어떤 이론의 경험적 검정불가능성이 그 이론의 <틀렸음>의 증거는 아니다. 어떤 이론의 진위여부는 그것에 활용된 방정식들의 수학적 본성, 특히 논리적 단순성의 여부에 좌우된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지금의 양자역학에서 활용되고 있는 수학적 방법들은 어떤 결정에 도달하기에는 불충분하다." Bohm은 이론의 논리적 일관성뿐만 아니라, 단순성의 원리를 다소 위반하더라도, 그 이론이 알려진 사실들에 얼마나 잘 일치하느냐 와 또한 실재를 얼마나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방향의 요구가 바로 Einstein의 입장일 것이라 기대했으나, 사실, 후자는 타당한 개별적 모델들을 만드는데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개별적 모델들의 인식론적 토대, 소위 메타물리학적 문제에 집중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요청된 것이 <논리적 단순성>의 원리이다.


IV. Louis de Broglie의

<입자-파동 이원성>과 <숨은 변수>


Max Born에 의해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이 나온 시기와 동일한 시기(1926-1927년)에, de Broglie가 양자역학의 토대문제와 관계하여 <이원론적 해결책>을 제시했을 때, 이러한 이론의 중심 목적은 Einstein의 광양자의 <입자적 현상>과 당시의 광학을 지배한 <회절>과 <간섭>이라는 <파동적 현상>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빛양자에 관한 새로운 광학]이라는 저서 속에서, de Broglie는 빛입자는 "퍼진 파동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단일체인데, 이 단일체는 파동과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 파동이 이 단일적 입자의 운동을 안내한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소위 그의 <파동 조종자>(onde-pilote)의 개념이 유래한다. 그리고 조금 나중에 그는 이러한 관념을 Einstein에게서 착안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사실 입자-파동 이원론의 여명기에 Einstein은 단일체적인 점들을 포섭하는 <장의 가설>을 고안하여, 어떤 <환영적인 장>이 빛입자를 안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Bohm의 논리와 분명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Eintein의 <환영적인 장>이라고 말할 때, <환영적>이라는 용어는 다분히 양자역학의 파동함수의 <통계적 확률에 의한 전체성>의 차원을 비꼬면서 한 것이라 짐작되는데, de Broglie 역시 양자역학의 파동함수(Ը)는 실제로 문제시되고 있는 파동을 서술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다양한 체계들을 무차별적으로 즉 동질적으로 표상하며, 따라서 단칭성(개별적 체계를 그 자체적으로 표상할 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파동함수는 통계적 평균값에 만족하는 불완전한 표상이며, 따라서 그가 표상한 파동은 <허구적 파동>이다. 따라서 양자역학의 이러한 통계적 대안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 대안, 즉 실질적이고 개별적인 체계를 그의 시공적 거동 안에서 표상할 수 있는 단칭성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방향에서 de Broglie는 빛의 효과에 나타난 파동-입자 이원성을 물질의 요소들에까지 확장시키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시된 파동-입자 이원성은 고전적 이원성과 구별해야 한다. 즉 고전이론에서는 <파동 또는 입자>의 관계가 문제시되었다면, 이제 여기서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의 관계이다. 파동성과 입자성의 공존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러한 종합의 의미 내지는 공적은 미시적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를 제공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서의 <입자성>은 고전이론에 있어서의 입자적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서 통계적 앙상블의 개연성으로부터 벗어나 인과론적 결정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가능 근거를 마련한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관적 단순성을 보장하는 이러한 입장을 수학적으로 형식화하는데 큰 곤란이 있었는데, Pauli는 이러한 착안의 부당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de Broglie 그 자신 양자역학은 입자의 거동을 고전 역학에 엄밀히 부합되도록 기술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즉 양자역학적 표상은 물리학적 직관적 공간에 근거한 표상이 아니라, 수학적 기하학에 고유한 조작적 공간에 근거한 표상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de Broglie는 파동함수가 표상한 파동이 실재적인 것이라고 해석한 쉬뢰딩거를 비판했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이유들 때문에, de Broglie는 인과론적 결정론의 방향에서 등을 돌리고, 상보성, 불확정성, 비국소성, 통계적 확률 등과 함께 있는 양자역학의 정통 해석에로 재합류한다. Einstein으로 하여금 de Broglie의 [물리학과 미시 물리학]의 영어 번역본 서문에서 후자를 부추키며 격려케 한 상황은 바로 이러한 국면이었다 : "나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물리학의 논리적 개념적 토대를 확보하려는 투쟁의 진지한 표현이다. 이러한 진실된 노력은 최종적으로 그로 하여금 모든 기본적 과정들은 통계적 본성을 갖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했다." 즉 Einstein은 de Broglie를 자기의 <통계적 확률 해석>의 아주 좋은 지지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1953년경에 한편에서는 Bohm이 de Broglie의 <파동-조종자>의 관념을 재지지하면서 이를 보다 새롭게 개선하여, Pauli의 비판을 어느 정도 수그러지게 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Jean-Pierre Vigier가 de Broglie의 이원론적 대안과 Einstein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정리를 함께 접목시키려는 시도, 즉 양자역학의 시공적 표상을 재시도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자극된 de Broglie는 1927년에 착안한, 그러나 곧 포기한 <파동-조종자> 이론을 1953년경부터는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즉 그는 현재 실질로 통용되고 있는 양자역학의 타당성을 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Einstein의 <완전성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원자적 단계들의 실재들의 확정적 표상 불가능성과 비결정론>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그는 <숨은 변수>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즉 이 때부터의 그의 목표는 "우리들의 실험적 결정에는 포착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변수들에 의하여,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완벽하게 결정되고 기술될 수 있는 실재"의 획득이다. Einstein 자신도 이 점을 잘 간파하여, 1953년 de Broglie에게 헌사한 텍스트 안에서, 고전 역학의 개념적 틀(물질 점, 포텐셜 에너지) 안에서 양자적 체계를 기술하려는 de Broglie의 노력을 지적한다. 그러나 Einstein은 자신의 탐구 방향은 이러한 길이 아님을 다시 강조한다 : "그러나 나는 양자의 수수께끼를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간단히 말하면, de Broglie는 Einstein의 탐구 길이 자신의 길과 유사한 방향일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지만, 양자 사이에는 방법론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우선 이론가의 <사색의 자유>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Einstein은 de Broglie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당신은 이러한 자유는 이론가들에게 큰 불행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러한 자유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나를 사로잡아 우리들의 자유를 제한할 형식적 원리를 탐구하는 데 몰두하게 했다." 사실, de Broglie의 방법을 <현상학적 물리 이론>(모델화의 관점에서 경험적 사실들을 표상하려는 방향)과 <수리물리학>(수학적 표현에 유사한 형식적 양상의 탐구)의 결합으로 특성화할 수 있듯이, de Broglie 자신은 Einstein에 의해 제안된 <일반적 형식 원리>을 기꺼이 수용할려고 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토대>로서가 아니라, <조정>의 대안으로서 이었다. Einstein은 de Broglie의 방법을 <경험적 구성주의>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는 양자하부들 아래로 내려갈 수 없고, 현재에 기술되고 있는 양자들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양자와의 관계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든 토대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일반 상대성 원리처럼, 모든 물리적 법칙들에 적용될 수 있는 논리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통합된 하나의 원리를 양자계에서 찾고자 한 Einstein은, 양자역학의 <고유 값>, <고유 상태>, <파동-입자 상보성> 등의 개념이 함축하듯이, 어떤 하나의 통일된 원리가 없이 국면에 따라서 다양한 원리를 가져오는 것은 그야말로 <자의적 해석>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de Broglie에게는 <파동-입자 이원성의 정확한 시간 공간적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 중심 관심사였다. Einstein은 <시공적 연속체>의 관념을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지지하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공적 연속체를 직접적인 이미지로 즉 직관적인 표상으로 나타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고전 물리도 양자 물리도 너무나 경험적이라서 논리적 형식적 엄밀성 내지는 필연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본다.


V. John S. Bell에 있어서

<숨은 변수>와 Bell-Théorème


Bell은 Einstein에 의한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의 진단, 소위 통계적 특성에 대한 불만과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Bohm과 de Broglie 등을 대표자로 한 <숨은 변수>를 찾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모델 혹은 프로그램들을 동일한 노선에 둔다. 그러나 Bell이 언급하고 있는 Einstein의 저서들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실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Einstein이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직접 사용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숨은 변수>의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논의는 Bell에 와서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속성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러한 방향의 논의의 성과를 분명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Bell은 Einstein의 <국소성 원리>의 구축 노력과 Bohm과 de Broglie의 <숨은 변수>를 위한 새로운 모델의 구축 작업을 동일한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이러한 차원을 수학적인 형식으로 보다 엄밀화하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양자역학적인 비결정성 내지는 비국소성의 사태를 단순한 <표면상>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러한 외관상의 비국소성 아래에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숨은 변수>가 있으며, 따라서 비국소적 상태 하부에 결정적인 국소성이 있을 것이다. <숨은 변수> 때문에 우리가 국소성을 보지 못하지 자연의 실상은 국소적이다고 일단 인정하자. 이처럼 자연의 실상이 국소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수행하는 일련의 과학적 추론 질서들 내지는 과정들 사이의 관계를 Bell은 수학적인 형식으로 형식화하는데, 이것이 소위 혹은 라 명명되는 바의 것이다. 이 식은 <국소성>을 인정할 경우에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추론 방식의 <일반적인> 관계식이기 때문에, 양자역학도 <국소성의 원리>를 준수할 수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이 부등식에 대응되거나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Bell 부등식은 우리의 일반적인 과학적 추론(국소성을 인정하면서)에서 예측하고 검정하는 인과적 추론과정의 일반적 관계식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국소성의 원리를 만족하려면, 양자역학에서의 예측과 검정의 관계식들도 이러한 Bell의 부등식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관계식들은 Bell 부등식을 위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Bell의 부등식을 잘못된 것으로 고려하든가 양자역학에서 국소성의 원리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Bell의 부등식을 거부하기에는 그 형식적 체계가 너무나 완전하다. 따라서 결국 <비분리성>을 양자역학의 <일반적인 속성>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제 <숨은 변수>에 대한 어떠한 모델도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의 속성을 더 이상 무력화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떠한 방향의 인과론적 혹은 결정론적 이론도 양자역학에 적용될 수 없다. 때로는 양자역학의 <비결정성>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숨은 변수> 혹은 <국소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논리는 한편에서 양자역학의 <비결정성>은 단순한 <외관>으로서 인정해야 하며,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한계 때문이지 완전한 어떤 장치만 갖춘다면, 하부 세계의 보다 근원적인 <국소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Bell의 부등식은 이제 이런 타입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한다.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은 단순한 <외관>이 아니라, 근본적인 <일반 속성>이며, 아니 이는 거시계와 미시계를 다 포괄한 <실재 일반의 속성>이다는 것을 함축한다. 거시계의 국소적 예측의 적용의 용이는 단지 확률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다고 해석된다. 지금까지 <국소성의 원리>가 우리의 물리학적 사유 영역에서 제 1 원리로 유지될 수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알지 못했고, 통제할 수 없었는, 따라서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완전한 벙어리 상태로 있게 한 어떤 <숨은 변수> 때문이다고 역공한다.

따라서 Bell에 있어 <숨은 변수>의 의미는 인과론적 결정을 구축하기 위한 어떤 개별적인 모델형성을 위한 토대관념이 아니라, 물리학적 체계의 일반 속성(국소적 비분리성)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양자역학은 <비국소성>을 해석상의 필요 때문에 <요청>했을 뿐, 그것의 본질적인 속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벙어리 상태에 이었다. 사실 당시의 양자역학적 형식 속에 비국소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리>의 수준에서 논증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외관>의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고 따라서 하부의 국소성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다. <비국소성에 관한 일반 정리>의 자격을 갖는 Bell의 정리를 Bell로 하여금 도출케 한 것은 Einstein의 <국소적 분리성의 가설>을 <숨은 변수의 일반 프로그램들>에 동화시키면서, 국소성의 원리를 구성할 관계 구조를 수학적으로 형식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즉 <국소성>과 <숨은 변수>에 대한 <역사 비판적 연구>와 <형식화적 연구>의 종합의 산물이 Bell의 정리이다. <비국소성>을 일반화시킨 자가 Bell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인과론적 결정론의 방향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Bohm의 인과론적 모델과 de Broglie의 <파동-조종자> 개념에 호감을 갖고 지지했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히 개별적인 모델들의 구축보다는 Einstein과 마찬가지로 고전 역학적 기술과 양자역학적 상태의 기술의 원리적인 차이 내지는 경계를 해명하고자 하는 메타물리학적 관심에 더 집중했으며, 이러한 물두가 그로 하여금 문제의 그 정리를 구성할 수 있게 했다.


VI. 결 론


우리의 지금까지의 논의는 두 가지 문제로 집약되겠다. 우선 첫 번째 문제는 Einstein의 양자역학 해석이 <숨은 변수 이론>의 탐구를 권유하거나 함축하는지의 문제이며, 두 번째 문제는 <숨은 변수> 개념과 <양자역학>이 실제로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 Born, Bohm, de Broglie, Bell 등등은 Einstein의 양자역학에 대한 <불완전성>의 진단은 <숨은 변수> 프로그램으로 그러한 불완전성을 보완하려는 의도에 동가치라고 주장하면서, Einstein의 의중을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반대로 Abraham Pais, Max Jammer, Paty 등은 Einstein의 어떠한 저서들이나 편지들 안에서도 <숨은 변수>라는 개념 혹은 그것에 동가치적인 용어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특히 Bell은 Jammer의 Einstein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공개적인 지면상의 논쟁으로 확대되었는데, 이것이 Bell로 하여금 [Einstein and hidden variables]라는 한 논문을 쓰게 했다. 이 논문 안에서 Bell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Einstein은 <숨은 변수>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첫째는 Einstein은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체계의 독립성의 가설을 확고하게 지지한다. 둘째로, Einstein은 <통계적 양자 이론>의 상황을 <고전 역학>에 비교된 <통계 역학>의 상황에 비교한다. 즉 <고전 역학>에 있어서의 통계적 확률이란 사실 <국소성>, <인과적 결정>, <실재론적 예측> 등을 지지한다. 즉 Bell은 이러한 맥락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숨은 변수>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맥락에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한편에서 그는 [양자역학은 완전한 이론인가 ?]라는 타이틀이 붙은 Einstein의 한 논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 논문은 1) 양자 이론은 불완전하며, 2) 이러한 불완전성은 그것의 통계적 본성에서 유래되며, 3) 완전한 이론은 가능하다는 세 가지 요점을 결론으로 주장한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이미 분석한, Born에게 보낸 Einstein의 편지를 다시 분석하면서 <근본적인 시작에서부터의 게임>의 관념을 Einstein은 반대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결국 <숨은 변수>에로 되돌아온다고 Bell은 주장한다.

이러한 Bell의 해석에 대해 Paty는 대립적인 입장을 준다. 그에 따르면, Einstein이 양자현상에 대한 완전한 이론을 획득하기를 희망하며, 계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길은 현존하는 양자역학적 이론들에 있어서 불충분하거나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몇몇 요소들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길이 아니라, 현존의 이론적 모든 셰마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혀 다른 어떤 원리 혹은 개념에서 새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평가한다. Einstein이 말하는 완전히 새로운 원리란 고전역학적인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숨은 변수>의 방향도 아니다. <숨은 변수>라는 이 개념이 양자적 지평의 구조 안에 포섭되어 있는 어떤 하부적 구조에 의해 보증되는 보다 섬세한 결정론의 전망,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해서라도 고전적 개념에 대응 내지는 유사를 확보할 수 있는 그러한 방향의 전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전망은 전혀 Einstein의 전망이 아니라고 Paty는 주장한다. Paty는 <숨은 변수>의 문제가 세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이미 Einstein 자신이 그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 분명히 했다고 말한다. 즉 Einstein이 현재의 양자역학은 순간적인 원격 작용을 요청하지 않고는 개별적 체계들을 완전하게 기술할 수 없다는 주장을 주시하면서, 따라서 "개별적 체계의 완전한 기술은 다른 데서 찾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다"라고 말할 때, 그가 말하는 <다른 데>란 <숨은 변수>의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Paty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Bohm의 초기의 아주 단순한 형태의 <숨은 변수> 개념뿐만 아니라, 나중에 보다 세련되고 섬세해진 Bohm 자신과 de Broglie, Vigier, 그리고 그 후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의 <숨은 변수> 개념들도 모두 다 <통계학적 양자 이론>의 개념적 틀 안에(서) 접목시키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나 Einstein이 양자역학의 완전성을 위해 요청하는 "서술의 요소들은 통계학적 양자 이론의 개념적 셰마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Paty는 "근본적인 시작에서부터 연속적인 주사위 놀이"의 관념의 Einstein적 거부는 <실재론>의 요구이지, 이것이 곧 <인과적 결정론>의 요구는 아니라고 해석한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재론>, <완전성>, <국소성>의 요구가 <인과적 결정론>에 동가치적인 것은 아니다는 것이 Paty의 주장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정론의 구축이 곧 <국소성>의 재건인 양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Bohm은 <결정론>을 구축하기를 원했지만, <국소성>을 구축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Bell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Bohm이 만든 모델들은 비국소적이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숨은 변수>와 <양자역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두 번째의 근본적인 논의로 이끈다. <숨은 변수>와 <양자역학>이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자는 Von Neumann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떤 종류의 <몇몇의> 대표적인 숨은 변수 모델들이 양자역학적 실상과 적절히 양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숨음 변수 이론>이 양자역학과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한 von Neumann의 논증의 요점만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러하다. 즉, <숨은 변수 이론>에서는 일련의 연산자들, A, B, C가 <함수적 항등성>(functional identity), 즉 f ( A, B, C ) = 0 를 만족한다면, 각각의 연산자들이 취하는 구체적인 값들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함수적 항등성>의 조건, f ( v(A), v(B), v(C) ) = 0 이 만족된다는 것을 함축하거나 가정하고 있는데, 사실 아주 간단한 스핀의 경우를 보아도, 위의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즉 파울리 행열, ռx와 ռy의 예를들자면, 이들은 각각 ⁑ 1 을 고유값으로 취하다. 따라서 v(ռx) + v(ռy) 는 -2, 0, 2 중의 하나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값은 v( ռx + ռy )와 같지 않다. 왜냐하면, ռx + ռy의 고유값은 ⁑√2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이만의 이러한 논증은 처음 출발부터 <어리석은>(silly) 가정에서 근거한다고 봄이 주장한 바 있는데, 오늘날 머민도 또한 노이만의 <어리석은 가정>을 다시 한번 더 폭로한다. 후자들에 따르면, <숨은 변수 이론>에서는 가환적 연산자들 사이에서만 위의 함수적 동일성의 조건을 적용시키지, 비가환적 연산자들 사이에는 그러한 조건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Bell에 오면, <숨은 변수 이론>을 가환적 연산자들 내의 문제로 제한할 때조차도, <모든> 종류의 숨은 변수 모델들이 양자역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논증된다. 즉 Bell의 정리는 <비국소성> 혹은 <비분리성>은 양자역학의 본질적인 속성이라서 어떠한 종류의 숨은 변수 모델들도 여기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입장, 즉 숨은 변수 개념과 양자역학의 양립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입장은, 현재의 양자적 기술은 하부에 보다 섬세한 실재론적 과정이 있는데, 단지 그러한 하부의 미세한 과정을 포착하지 못하고 단지 통계적인 평균값을 주는데 만족할 뿐이다는 입장을 반대한다. 즉 이 입장은 현재의 양자역학적 기술은 자연의 실상이다는 것을 함축할 것이다. <비국소성>, <비분리성> 등은 현재의 양자역학의 서술양식의 불완전성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실재하는 고유한 방식이라는 것을 시사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실재란 모든 주관들에 객관성의 최후의 기준이라기 보다는 해석의 문제로 환원되고 물리학적 모든 서술의 가치는 도구적 실용적 지위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이 나올 수 있겠는데, 이러한 회의론적 입장의 거부가 바로 Einstein의 <신은 근본적인 시작에서부터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는 관념으로 표현되었다고 Bohm과 de Broglie는 해석한다. 그렇게 하여, 후자들은 현재의 양자역학은 보다 하부의 개별적 체계들의 실질적인 과정을 기술하지 못하고 통계적인 평균값에 만족하는 불안전한 이론이라는 Einstein의 평가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숨은 변수> 개념을 착안했다. 이렇게 할 때, Bohm과 de Broglie는 양자역학의 통계적 양상과 <숨은 변수> 개념을 적절히 양립시킬 수 있을 것으로 고려했다. 그러나, Einstein은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은 그것의 통계적 확률성에 있다고 평가한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이러한 불충분성의 보완이 <숨은 변수> 개념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Paty는 평가한다. 왜냐하면, Einstein이 보기에 양자역학이 완전한 서술양식을 갖기 위해서는 통계적인 방법을 완전히 포기하는 전혀 새로운 서술양식을 고안해야 하는데, <숨은 변수> 개념은 아직 통계적 전체성의 도식양식과 제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본 연구가 가능하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학술 진흥원>에 감사하며, 우리 학계에 물리학과 철학의 상호학문적 연구의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주면서, 제일 저자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물심 양면으로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고 격려해 주신 최 상돈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드리며, 물리학에 문외한인 논자를 위해 조직된 양자역학 세미나 회원들, 조 상규 교수, 김 정호 교수, 이 창열 및 김 명석 대학원생 등, 모든 분들의 활발한 토의와 지적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록1. Bohm의 <숨은 변수 프로그램>의 형식적 구조.


우리가 위에서 제시한 Bohm의 이론을 보다 전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의 형식적 구조의 이해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고려되기에 그 내용을 여기 부록으로 첨가한다. 이 내용은 Bohm 자신의 1952년 논문을 직접적으로 참조하여 작성된 것이다.

Bohm의 근본적인 관념은 다음과 같다. 그는 우선 비상대론적인 Schrödinger의 방정식

Կ ㅨ ∂՘ over ∂t = - ㅨ^2 over 2m ∇^{2} ՘ + V՘

(1) 을 일단 일정하면서 이를 토대로 하여, 두 개의 실 수 함수 R과 S를

՘= R exp (ԿS/ㅨ)

(2) 로 정의한다. 여기서 방정식 (2)를 방정식 (1)에 대입시켜 나온 결과를 실수 부와 허수 부로 분리시키면, 다음과 같은 두 관계식을 얻을 것이다 :

∂R over ∂t = - 1 over 2m [R∇^2 S + 2∇Rㅗ∇S]

, (3)

∂S over ∂t = - [ (∇S)^2 over 2m + V - ㅨ^2 over 2m {∇^2 R} over R ]

(4).

여기서 양자적 포텐셜을 U로 기호화하면,

U ㅟ - ㅨ^2 over 2m {∇^2 R} over R



(5) 로 정의된다. 이제 여기서 다시

P = R^2 =|՘|^2

(6) 으로 동일화하면, 식 (3)은

ㅤP over ㅤt + ▽ (P {▽S} over m ) = 0

(7) 으로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U가 항등적으로 제로라면, 식 (4)와 식 (7)은 모두 잘 정의된 고전적 궤적을 따르는 모멘텀 입자들의 연속적인 흐름, 즉

P = ▽S

(8) 을 나타낼 것이다. 여기서 P = mv로 고려하는 것과 더불어, 방정식 (7)의 P = |՘|2 는 입자들의 분포의 확률 밀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방정식 (7)은 표준적 연속성 방정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양자역학에서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과정들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즉, 양자역학에 있어서, Current 확률 밀도는,

j = iℏ over 2m (՘∇՘* - ՘*∇՘) = R^2 over m ∇S ≡Pv

(9) 로 정의되며, 따라서

v = 1 over m ∇S

(10) 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방정식(8)을 사용하여 아래와 같은 변형을 얻을 수 있는데, 이때, 방정식(8)의 사용은 U ≢ 0일 때조차도 가능할 것이다 :

dP over dt = v_j {Њ}over Њx_j (∇S) + Њ over Њt (∇S) = 1 over m P_j {Њ} over Њx_j (∇S)+ Њ over Њt (∇S)






= 1 over m ∇S·∇(∇S) + Њ over Њt (∇S) = ∇ [{1} over 2m (∇S)^2 + ЊS over Њt ] .


(11) 이 관계식의 마지막 항은 위에 제시된 방정식 (4)와 마찬가지로

dP over dt = -∇(V + U)

(12) 를 함축한다. 여기서 다시

dP over dt = F

(13) 라고 고려한다면, F는 포텐셜 에너지(V + U)의 마이너스 그래디언트이다. 여기서 언급된 이러한 포텐셜은 따라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포텐셜(V)과 양자 포텐셜(U)을 동시에 포함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식들을 다체 문제에로 쉽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 질량 m인 두 입자가 있다면, 이 두 입자에 대한 양자 포텐셜은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

U(x_1, x_2 ) = - ℏ^2 over 2m {1} over R ({∇^2}_1 R + {∇^2}_2 R )

(14)

그런데 여기서 R = R(x1, x2)이기 때문에, 다체 양자 포텐셜은 여러 입자들의 운동들을 뒤섞는다. 이는 바로 둘 이상의 여러 입자들이 전체로 결합된, 전체성의 체계의 파동함수, 즉 ՘(x1, x2, t )는 일반적으로 단일 산물처럼 분리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상호 독립적 체계들로 구성되는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의 파동 함수는 다음과 같이 단일 산물들로 인수 분해된다.

՘(x_1 , x_2 ,t) ≡ R(x_1 , x_2 ,t)exp[iS(x_1 , x_2 ,t)/ℏ] = ՘_1 (x_1 ,t) ՘( x_2 ,t)




= R_1 (x_1 ,t) R_2( x_2 ,t)exp({i} over ℏ [S_1 (x_1 , t) + S_2 (x_2 ,t)])

. (15)

이 경우에 있어 양자 포텐셜은 각각의 독립적인 두 포텐셜의 단순한 합이며 따라서 우리는 독립적인 두 체계를 가진다 :

U = U(x1) +U(x2) (16)



참고 문헌


문 장수, 1996, 12, [구성주의적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조명된 양자 역학의 인식론], 철학 연구 제 58집.

장 회익, 1994, [양자 역학과 실재성의 문제], 과학사상, 제9호 여름호.

------, 과학과 메타 과학, 지식 산업사, 1990.

전 일동, 1994, [양자 역학의 세계상], 과학 사상, 제9호 여름호.

조 인래, 1995, [양자 역학과 결정론], 현대 존재론의 향방, 철학과 현실사.

이 중원, 1996, [양자 역학의 인식 구조와 실재성의 문제], 현대 사회와 철학 교육, 제9 회 한국 철학자 연합 학술 대회 대회보.

임 경순, 1994, [보어-아인슈타인의 논쟁의 전개 과정], 과학사상, 제9호 여름호.

윤 용택, 1996, [과학에서의 인과성의지위], 현대 사회와 철학 교육, 제9회 한국 철학자 연합 학술 대회 대회보.

Bachelard, G., 1942, L'expérience de l'espace dans la physique comtemporaine, P. U. F.

Bell, J. S., 1964, "On the Einstein-Podolsky-Rosen Paradox", Physics 1, pp. 195-200.

Bell, J. S., 1966, "On the problem of hidden variables in quantum mechanics", Rev. Mod. Phys. 38, pp. 447-452.

Bell, J. S., 1982, "On the impossible pilot wave", Found. Phys. 12, pp. 989-999.

Bell, J. S., 1987, Speakable and Unspeakable in quantum Mechanics(Cambridge University, Cambridge)

Bohm, D.,1952, "A suggested interpretation of the quantum theory in terms of 'hidden variables'" Phys. Rev. 85, pp. 66-193.

Bohm, D., On the Role of Hidden Variables in the Fundamental Structure of Physics(이 논문은 실제로는 1968 내지는 1969 년도 쓴 것으로 추정), Fund. Phys. 26, No. 6, 1996, pp. 719-786.

Bohm, D., 1983, Wholeness and the Implicate Order(ARK PAPERBACKS). 국문 번역판 : 1991, 전 일동, 현대 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 대우 학술 총서, 번역 39, 민음사.

Cushing, J. T., 1994, Quantum Mechanic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and London.

de Broglie, L., 1941, Le continu et le discontinu en physique morderne, Paris.

Destouches, J. -L., 1943, Corpuscules et systèmes de corpuscules, Paris, Gauthier-Villarrs.

Dirac, P. A. M., 1930, Principle of Quantum Mechanics, Oxford, 1930.

Eddington, 1936, Nouveaux sentiers de la science (tra. Guénard), Hermann.

Einstein, A., B. Podolsky, and N. Rosen, 1935,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 Phys. Rev. 47, pp. 777-780.

Ferrero, M., and Alwyn van der Merwe, 1995, Foundamental problems in quantum physics, Kluwer academic publishers.

Gettys, W. E., Keller, F. J., Skove, M. J., Physics, 1992, 최 상돈 외 역, 범한 서적 주식 회사.

Goswami, 1992, Quantum mechanics, ADTEC.

Hawking, S. W., 1988, A brief history of time, 현 정준 역, 삼성 이데아.

Heisenberg, 1932, Principes physiques de la théorie des quanta(tra. Champion et H. Charde), Gauthier-Villard.

Hughes, R. I. G., 1989, The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H. U. P.

Jammer, M., 1974, The Philosophy of Quantum Mechanics(Wiley, New York).

Kochen, S., and E. P. Specker, 1967, "The problem of hidden variables in quantum mechanics", J. Math. Mech. 17, pp. 59-87.

Mermin, N. D., 1993, Hidden variables and the two theorems of John Bell, Rev. Mod. Phys., Vol. 65, No 3.

Moun, Jean-Sou, 1995, La notion de structure chez Jean Piaget, thèse de doctorat, France.

Paty, M., 1993, "Sur les variables cachées de la méchanique", La pensée 292.

Paty, M., 1995, The Nature of Einstein's Objections to the Copenhagen Interpretation of Quatum Mechanics, Found. Phys. Vol 25, No 1.

Peres, A., 1990, "Incompatible results of quantum measurements", Phys. Lett. A 151.

Piaget, J., 1950, Introduction à l'épistémologie génétique, 1, 2, 3, P. U. F.

Piaget, J., 1967, "Epistémologie des mathématique" in Logique et connaissance scientifique, Gallimard.

Prigogine, Ilya, 1980, From being to becoming, 이 철수 역, 민음사.

Santos, E., 1992, Problem of Hidden Variables, Plenum Publishing Corporation.

von Neumann, J., 1932, Mathematische Grundlagen der Quanten-mechanik(Springer-Berlin). 영어 번역판 : 1955, The Mathematical 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