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k zum Wissen





2001/12/02 (07:33) from 129.206.82.100' of 129.206.82.100' Article Number : 101
Delete Modify Geist Access : 6010 , Lines : 425
[2001. 12. 02] 12. 기억에 대하여(Das Gedaechtnis)











Sarah Brighman | La Califia








나에게 있어서
기억[Gedaechtnis]은 존재가
시간의 계기를 넘어
정신적 자생성을
확보하는 어떠한
메카니즘으로 이해된다.

여기에서 기억의 주체는
인간, 존재,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는 어떠한 인격적
소유자가 아니라,

시간을 만나는 모든
존재의 자리가
기억의 주체라고
생각해본다.

물리적 연장의
정신화와 관련된
기억,
또한 모든 존재가
나름대로의 자기지속을
위하여 확대하는 기억,

기억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참하게 산산조각내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텃세를 부리는
존재의 만용일런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의 기억은
대단히 객관적 기억이자
물리적인 지위로서의
기억일런지도 모른다.
존재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자기를 누적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기억을 통하여
고안하였다.

개별 존재들의 저 연장적
물리적 기억이 더욱 집단적인
위상으로서 포섭되고
어떠한 패턴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때 그것을
우리는 역사Historie라는
관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존재의 기억이나
역사의 문제는
인간범주와는 비교적
근사한 관련성과
긴밀성을 지니지
않는 대단히 보편적인
맥락의 범주이며

여기에서는 좀더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사용되는 "기억"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모든 물리적 경험은
시간을 머금고
그 자리에 기억된다.

인간 또한 그의 물리적 경험을
시간성 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화하여 기억의 자리로 편입시킨다.
편입되는지 편입시키는지의 문제,
즉 기억에 관련한 능동성과 수동성의 문제는
심리학에서 조금 더 다루어야 할 문제로도
보여진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억의 방식은
일차적으로 주관적
정신성에 의하여 주도되어지고
변모되어지며 심지어 그를
'악의'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미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고도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현재의 경험을
나름대로 적재적소의 기억의 자리에
재배치 하는 과정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의도된 기억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 주체의 소망과 이미 타진되어
변형되어진 하나의 '창작물'이요,
의도되지 않은(혹은 의도를 거부하는) 기억은
다른 의미에서는 주체와 일견 거리를
두고자 하지 않으려는 열망에 의하여
대단히 어두운 구석에 방치되곤 한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처음 말하였던
물리적 연장의 자리에서 누적된
'기억'과 인간과 타진되어 누적되는
의도적 '기억'과 비의도적 '기억'의
자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지느냐의
문제이다.

저기 헤드폰이 있다.
세계 안에서의
헤드폰의 연장과 존속은
헤드폰 그 자리에서의
물리적 기억을 매개로
지금 축적되어 있으며
자족적으로 그 자체로 기능한다.

헤드폰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 헤드폰과 나 사이의 경험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 사이에서
이미 자리잡혀 있거나
어떠한 특정한 자리를 의도하고 있다.

만약 나는 헤드폰을
누구에게 선물받았다고 한다면,
저기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헤드폰의 물리적 포지션과
특정한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헤드폰의 정신적 기억을 매개로

내가 헤드폰을 선물받은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타진하는 과정 가운데
헤드폰과 나 사이의 기억은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은 헤드폰 자신의 물리적 기억과
나의 특정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헤드폰의
정신적 회상Erinnerung의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회상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
대단히 적극적인 인간의 능동행위로 여겨진다.

기억과 회상의 함수를 고민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기억은 물리적 배타성을
바탕으로 시공의 지평에 응축되어 있는 방식이며
회상은 정신적 수용성을 바탕으로
특정한 시공의 기억내용 가운데
어떠한 일부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능동적' 기억의 지평이다.

그렇다면 '수동적' 기억의 지평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수동적 기억의 지평은
일단 주체의 의식화가 비교적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하는
내용에 대한 비의도적 수용이다.
동시에 주체가 의식화를 애써
거부하여 기억의 자리에 안치하지
않을 때 형성되는 또 다른 의미의
'어두운 기억'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차원의 기억은
회상과는 직접으로 관련을 맺기가
어려운 면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심리학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회상과 관련되어 있지 않지만
인간 주체의 행동에 대단히 깊이
연루되어 있다고 보는 그림자Shadow 론이나,
심층의식론과 같은 문제들 말이다.)

여기까지는
개별적인 물리적 장이
시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저장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억

어떠한 개별적인 물리적 장과
생명적 주체의 소망 사이에서
빚어지는 능동적인 기억과
수동적인 기억,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되는 회상의
성격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기억에 대한 분석이
개별자의 존재방식에 대한
기술이라 한다면
조금 더 의미를 확대적용해서
특정한 집단과 특정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조직과 국가,
민족과 관련하여 기억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모든 존재는 경험을
기억화 하고
그로 인하여
기억 안에 존재는 머무르게 된다.

기억 안에 존재가 머무른다는 것은
이전의 존재가 기억을 통하여
의도하려는 바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서 기억이라 함은
존재가 자신의 모든 경험과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특정한
방식으로 압축하여 자족적 생산성을
확보하려는 하나의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타자에 대한 경험은
과거에 대한 '연속성'을 매개하고 있는
기억과 대면하면서 순간을 의미화한다.
기억은 존재에게 정체성을 건네주고
경험은 존재에게 자신의 정체성의 실현과
연속적 확대를 유도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억은 존재를 향한
매우 단단한 물리적 관념이며,
순간 순간의 경험이 장구하게
유입된 생생한 역사적 관념이다.

모든 특정한 존재는 이런 의미에서
특정한 경로를 거친 기억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경험을 해석해 낸다.

언어와 문화와 민족은
어찌 보면 특정한 시공이
독자적으로 구현한
기억 공동체의 활동행위 이며
그를 바탕으로 미래와의 관련 안에서도
독자적 자생력을 구축해 나아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에 대하여서는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Das kulturelle Gedaechtnis를
읽고 더욱 분명하게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육체와 정신에
관련하여 기억의 문제를
떠올려보자.

육체 혹은 물리적 존재는
자신의 경험을 고유하게
'기억화' 한다.
다차원적인 육체 혹은
물리적 존재들의
국지적인 기억과
재생산의 과정을
관장하고 조율하는
정신의 활동은 기억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물리적 존재들의 기억내용의
유용한 보존을 유지하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그 다차원적 물리적 기억들의 경로들을
어떻게 정신의 차원에서 통합해내고
혹은 비교적 고도의 기능을 매개로 한
'창조적 기억'으로 승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고민한다.
물리적 기억의 과거적 보존과 더불어
회상행위를 매개로 한
정신적 기억의 미래적 투사와 관련된
이 양가적 행위는
인류가 소위 인간 '영혼'의 의미를
발견함으로 더욱 유용하게 진행된다.

그간 '정신 차리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몸의 기억은
인간 영혼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그 미미한 시점에서부터
정신적 기억의 영역으로
빠른 템포로 급속하게 유입되고
있으며 그들의 제 자리를 찾아주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여겨진다.

배타성을 바탕으로 한 몸의 기억과
수용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마음의 정신의 기억,

그리고 이러한 특정한 경로로
계속 진행되어 온 사회적 역사적
물리적 기억의 층적,

또한 존재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경험에 연속성을
확보해주며 새롭게 정체성을
형성케 하는 기억의 기여.


기억은 결국
우리 존재는
공간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말하며,

우리의 경험은
점멸하는 경험임을
특이한 방식으로 암시하며,

시간의 유동 가운데
자신을 엉뚱하게
공간화 하려는
대단히 진지한 시도의
산물일런지 모른다.

더 나아가서
경험을 기억에
유입시킨다는 것은
특이한 시공경험을
더욱 공고한 방식으로
확대하여 일반화하려는
창조적 고안이며,

그 성공과 실패의
유무에 따라서
기억과 경험 사이에
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예증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기억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연속의 연속성이라는
불완전한 관념을
외양으로 띄고 있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신' 관념에는
이러한 요소가 요소가 비교적
배제되고 있다. 오히려
기억과 경험 자체가 의미없는
논의구조에 신의 관념은
의미를 발할런지도 모른다.

완전한 존재는 어쩌면
미래를 과거에 투여하는
기억도 없으며
과거를 미래로 투기하는
회상도 없으며
기억과 회상의 장인
경험도 없다.

신이 완전한 존재라면
기억과 경험도 필요 없다.
특히 인간에 대한 기억과
인간에 대한 경험도 필요 없다.

그렇다면 인간과 관계없는
신이기에 그 신은
우리의 표상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가 신을 생각할 수 있는
계시와 은혜를 주신 신이라면
그는 완전한 영역에서
불완전한 영역을 확보해야만
가능한 언설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과 경험에
논의 맥락에서 완전한 신과의
관련성을 쫒는다면
첫째, 불완전한 세계에 대한
자신의 배려가 전제되어야 하며
둘째, 경험 가운데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불우한 존재들을
긍휼히 보시는 신의 태도를
우리는 검토하는 것이리라.

생명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애써 판단하는
'거룩한' 착각의 산물이다.

생명은 불연속적인 현재를
연속화함으로 지금의 시공을
영원과 접속시키려는
'열정적인' 공허함의 산물이다.

기억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며
지금 자신의 경험이 유일한 경험임을
바탕으로 한 존재의 '진화된' 생존방식이다.

만약 이러한 생명과 관련된
신의 언설을 우리가 구상한다면

- 신을 생명활동과 동등하게 놓아서
신의 자리를 해체시킬 필요성이 없다면 -

신은
생명의 중심화(Zentralisierung des Lebens)
생명의 지속화(Dauerhaftigkeit des Lebens)
기억의 보존(Erhaltung des Gedaechtnises)
이를 위하여 활동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키워드 :

기억의 자리
물리적-관념적 기억
능동적-수동적 기억
몸과 마음의 기억
집단적 기억
회상, 경험, 생명,
신의 기억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