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erwegs zur Theologie



안녕하세요. 전철의 신학동네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신대학교 신학과와 대학원 Th.M을 졸업하고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 일을 한 후 현재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학동네를 여는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998년 가을이었죠. 학부와 대학원의 강의실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학의 언어들을 나름대로 일관되게 주워 담고, 정리할 수 있는 묘안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을 즈음, 인터넷 홈페이지가 문득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물론 저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강의내용을 직접 타이핑하곤 했지만 어느 리얼한 컴퓨터 하드보다 더욱 안전하고 신속한 저장고는 바로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의 버추얼한 공간으로 파일들을 올리는 그 순간은, 마치 허공에 부유하는 신학 언어를 저 밤하늘에 붙박아 늦게나마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경험과 같다고나 할까요. 이 홈페이지 덕분에 컴퓨터에서 제정신 없이 돌아다니면서 배회하면서 사라지는 글들과 파일들이 그래도 저렇게 박제가 되어 자신의 자리로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공간을 인터넷에 홍수같이 쏟아지는 정보를 묶어내는 저장고로 삼으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처음 인터넷의 바다에 풍덩 빠졌을 때, 저는 입을 쉽사리 닫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인터넷에 쌓이는 다양한 신학적인 정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주 가까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일히 인터넷 파일을 다운받아 한글파일(HWP)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였는데, 그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며, 매우 비효율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추상화가 불가능한 극단의 공통분모, http://www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고 사이트를 링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이 인류의 정보의 형태와, 지식 축적의 과정 마저도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예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홈페이지를 저의 관심을 끄는 인터넷의 자료사이트를 링크시키는 유용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이러한 계기를 가지고 출발한 홈페이지였지만, 가끔씩 이 홈페이지를 통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메일로 혹은 직접 건네주실 때는 매우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부족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제는 저에게 있어서 이 홈페이지가 단순한 신학 언어의 창고, 혹은 인터넷 정보의 저장소의 차원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나에게 신학의 언어를 새롭게 세공하고 단련하게 하는 심장의 껄끄러운 가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이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분이 아무리 적은 숫자라 하더라도 인터넷 공해, 혹은 정보 쓰레기로 추락되지 않고, 모르는 것은 서로 묻고 아는 것은 공유하고, 또한 신학의 새로운 꿈을 꾸어가는 희망의 자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회색 빛 까까머리 중고등학교 시절에 루터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집에 주인 없이 꽂혀 있는 빛 바랜 루터의 전기를 우연히 손에 쥐어서 보다 그의 고민, 그의 열정, 그의 삶을 향한 자세,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고스란히 나의 혈액으로 수혈받은 느낌을 여전히 아련한 기억 가운데 품고 있습니다. 루터의 고민도 그러했듯이, 저의 관심도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있습니다. 제가 감히 <아르키미데스의 점>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 인간의 정체성이 Imago Dei, Persona, Soul, Subject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정신사에서는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금광이 감추어진 그 점을 향해 하나 둘씩 광맥을 추적하는 이 과정이 참으로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신학을 전공하면서 참 크고, 깊고, 넓고, 즐거운 학문을 한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에 매우 큰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신에서의 6년의 기나긴 용광로에서의 단련과 같았던 수업기간은 저 숭고한 가치, 진리, 사랑, 자유를 헤아리고 우리의 몸과 더불어 저편 하늘에서부터 이곳에 묶어내리고자 하는 부단한 과정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신앙과 자유혼과 스승님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진지한 정열이 아름답게 익어간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쇠와 강철이 부숴지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라!>(Eisen und Stahl, sie mögen vergehen, unsere Liebe bleibt ewig bestehen!) 는 본회퍼의 명구는 하나님에 대한, 교회와 신학에 대한 우리들의 철없는, 하지만 진실한 사랑과 고민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품고 있습니다.

저는 1학년 신학에 첫 발을 조심스럽게 디디면서 '언어'에 매우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학에 있어서 말과 언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하고, 우리는 듣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세상을 향하여 말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저는 1990년대 한국 인문학에 새롭게 논의가 되는 언어학이나 구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덩달이 유모어>는 희대의 담론이었습니다.이 유모어는 한국사회의 감추인 이면을 폭로하는 시대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모어의 문제를 언어의 차원과 이데올로기의 차원, 그리고 논리의 관점으로 접근한 글이 " 유모어 분석과 분석의 유모어 "(한신 18, 1994)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처음으로 정리한 글이었기에 매우 정이 남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글이 갖고 있는 아쉬운 부분은 유모어를 인간 삶의 깊은 의미 속에서 해명하지 못하고 단지 의미의 논리 계형의 충돌과 급격한 변이로서 이해하였다는 점입니다. 유모어는 논리 이상의 깊은, 인간 삶의 또 다른 무늬라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진리가 드러나는 매개로 보고, 음악이 현상되는 그 현상 자체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글이 " 음악의 현상학적 이해 "(한신 20, 1995)입니다. 여기에서는 "음악"의 현상 자체에 대한 기술과 음악이 진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를 고찰하였습니다. 음악을 아주 가까이 하였던 때라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피어올랐던 때였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면밀하게 음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논문을 쓴지 3년 후에 다시 덧붙인 필자주를 여기에서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 위의 아티클은 3년전이죠, 1995년 제가 대학 2학년때 남긴 '상흔'입니다. 저의 문제의식은 '음악'과 음악 현상'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몰라도 당시에 이 분야에 대해 제가 갖고 있었던 자료와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아티클은 거의 개인적인 직관에 호소하여 논의가 전개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문제의식이 이미 '음악현상학'이라는 전문적인 분과학문과 자료와 정보 안에서 더욱 심도깊게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1998. 12. 27.)"

 

이 논문을 쓰면서 발견했던 새로운 경험은 본인이 골똘히 구분한 음악의 변수를 마무리 하고 글을 마감하려 하다, 원고마감 하루 전날 못내 아쉬워서 도서관에 가서, 만에 하나 음악에 관련한 책이 없나 하고 뒤져보던 중 헐버트 제틀의 저서 Sight Sound Motion - Applied Media Aesthetics (California : Wodsworth Publishing Co., 1990)를 발견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제틀이 구분한 음의 요소와 제가 구분한 음악의 변수를 이리저리 비교하다 그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삼 놀랍고도 섬뜻한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인간의 정신사란 선조들이 이미 개간한 지평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장구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보가 중요하고 선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논문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점은 음악을 단지 인간과 진리를 매개하는 매개로서 도식적으로 위치시켰다는 점, 그리고 진리를 반영하는 음악과 진리를 반영하지 않는 음악에 대한 구분,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가 매우 모호하고 무의미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진리 자체에 대한 절대시공적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악의 현실과 진리는 결코 그렇게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또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 클래식과 대중음악 또한 그렇게 쉽게 가치 매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님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어학, 구조주의, 예술론이라는 어설픈 관심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신학의 자리에서 그러한 인문학적 문제제기가 새롭게 착상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구조주의가 성서해석학의 지평에 가하는 파장은 비교적 간과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 구조주의와 구조주의적 성서해석 "(화해의 신학, 1996)에서 짚어 보았습니다. 이 논문은 영국 쉐필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시고 온 정형주 박사님의 많은 도움과 지도 속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실로 <구조>는 인간 지성의 극단적인 추상화를 통해서 획득한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에 대하여 직접 느끼고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것은 매우 큰 내공이 없이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뼈저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저 논문은 구조주의와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의 이론적인 차원을 조금이나마 담보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어두움 속에서 개별자의 모든 운신을 포섭하는 어마어마한 구조를 몸으로 직증(直證)하고 느끼고 체험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또한 정형주 박사님의 논평에서도 드러났듯이, 구조주의와 이후의 논의인 기호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이 논문의 공허한 사각지대입니다.
 

언어학과 구조주의는 당연히 해석학의 문제를 건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의 나른한 여름 오후,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가던 길목에 저는 우연히 비석을 발견했습니다. 그 비석은 너무나 오래 되어서, 돌에 각인된 글자의 요철과 윤곽이 희미해졌기에 글자를 쉽사리 독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비석에 돌을 새긴 사람의 의미는 여전히 그 비석에 스며있을 터인데, 낯선 그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 혹은 과거의 오래된 문서를 수 백년이 흐른 뒤에도 후대의 사람이 독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생소로우며 인상적인 누미노제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이해와 해석의 문제가 인간 삶의 근본 문제와 직접 연루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해석학에 대한 기본적인 독서를 통하여 해석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해석학이라는 학문은 다른 학문과는 사뭇 다른 정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원리를 반영한 학문적 논의이기 때문에 어떤 낯설음도 없었고 어떠한 이질감도 없었습니다. 해석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경험은 나를 읽는 경험이고 또한 책과 나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혼연일체의 아름다운 경험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실로 해석학은 인간 삶에서 나오는 이론이라기보다 인간 삶을 포괄하는 이론이기에 매우 매력이 있으며, 신학적 인문학적 성찰을 도모하는 중요한 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4년에 해석학사에 관련한 논문 초고를 동료들과 같이 나누어서 공유하기도 하였지만, 그깟 해석학사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슐라이어마허부터 잔트퀼러에 이르는 그 논의를 통하여 나의 삶을 해석학적으로 성찰하고 해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석학을 주체의 그 아르키미데스 점과 관련하여 일관되게 연결시키고 오늘의 자리에서 새롭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해석학은 저에게 삶의 방식을 더욱 근원적으로 조명하게 하는 말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해석학적인 차원에서 주객의 문제는 여전히 골치거리이자 미완의 과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 주객도식의 문제와 해석학의 변화 "(신학의 미래, 1996)에서 철학적 해석학 과학적 해석학 신학적 해석학을 짧게 스케치 해 보았습니다. 이 스케치를 통하여 드러난 난점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문젯거리를 제공하는데, 바로 해석학과 상대론의 관계설정의 문제였습니다. 해석학은 인간 삶의 드러난 모습이고 상대론은 인간 삶을 잉태하게 하는 근원적 구조인가? 여하간 해석학과 상대론의 관계는 여전히 난제(難題)가 되었습니다. 상대론은 분명 우리시대의 초유의 관심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대론에 대한 논의는 물리학과 형이상학과 신학에서 더욱 깊이 접근해야 할 거대한 문제제기일 것입니다. 특히 형이상학적 상대론, 철학적 상대론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갖게 한 레비나스와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론은 그 논의가 잘 나가면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고, 잘못 나가면 각자의 힘의 논리로 후퇴해 버릴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값싼 상대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상대론에 대한 밀도 있는 접근이 바로 레비나스에게서 진행되고 있음을 놀랍게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레비나스에 대한 단상과 성찰은 "임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철학"(한신학보, 1997.1.13)에 담겨 있습니다. 레비나스의 화법은 매우 특이하였습니다. 탄탄한 힘을 동반한 아름다운 레토릭이 그에게는 분명하게 서려 있었습니다. 레비나스와 직접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종교와 윤리에 대한 상호 관계를 " 종교와 윤리의 상호 관계에 대한 고찰 "(신학의 미래, 1997)에서 담아보았습니다.  

위의 논문을 둘러싼 시간의 흐름과는 별개로 저는 다시 대학교 1학년에 대한 회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생활 첫학기의 경험과 독서를 통해서 내가 밑둥을 부여잡고 고민한, 이 아르키미데스의 점에 대한 논의가 도식적으로, 혹은 단선율로 해명된다는 느낌을 가슴 저리게 느끼곤 하고, 여기에서 모종의 공허함을 발견하였습니다. 말로 쉽사리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점을 둘러싼 다이나믹한 우주의 진행을 기술하기에는 무엔가 참으로 결여되어 있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가슴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책과 강의와 공간을 맴돌다가 아주 우연히 종로서적에 꽂혀 있는 <과정과 실재>라는 책의 제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과정Process와 실재Reality라는 제목이 나에게 육박해 들어오는 그 견고한 추상성, 그리고 지성으로 쉽사리 포섭이 안되는 우주의 황홀함과 그 다이나믹스를 저 제목은 옹골지게 직관적으로,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꺼운 책을 집어들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대학생활의 첫학기가 거의 마감되는 그 때 과정과 실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화이트헤드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쉽사리 읽힌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조어의 향연과 조합들이 참 흥미롭고 낯설고 좋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은 결코 쉬운 책도 아니요, 또한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백업해 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군대 시절을 통하여,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한 어려움, 혹은 황홀함, 혹은 우리에게 매우 혹독하고 잔인하게 지성의 날카로움을 요구하는 부담스러운 책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복학하고 오영환 선생님의 배려로 연세대 대학원 세미나도 참여하고 문창옥 박사님도 만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과정사상과 과정신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호형호제 하고 지내는 조익표 형과 밤을 하얗게 지세우면서 진행했던 몇 년 동안의 세미나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설프게나마 토해낸 글이 " 화이트헤드와 유기체사상 "(희년을 일구는 신학, 1995)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저서인 {과정과 실재}의 의미, 그리고 생성과 존재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또한 화이트헤드 사상의 신학적 의미를 간략하게 " 화이트헤드사상의 신학적 의미 "(1995)에서 기술하였습니다.

실로 인간 이해는 인간의 정체성 이해와 직접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김경재 교수님의 소개로 생리학자 알렉시스 카렐을 알게 되었고 " 알렉시스 카렐의 인간이해 "(1997)에서 생리학적 관점에서 독특하게 인간을 이해한 카렐을 논의하였습니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안에서 인간은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 화이트헤드의 인간이해 "(신학의 미래, 1997)에서 조명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인간과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를 형태적으로 유비시켜서 인간 존재를 해명하려 하였습니다. 특히 저는 <아르키미데스의 점>으로서의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놓치지 않고 화이트헤드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았는데, 결국 화이트헤드를 통하여 발견한 바는, 인간의 그 점은 신과 자연을 매개시키는 매개, 혹은 우주를 새로움의 창진적(創進的) 과정으로 이끄는, 책임적 발화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의 소멸을 안타깝게 생각하기에, 영혼불멸이라는 가설을 화이트헤드를 통해서 확인해 보려는 나의 어설픈 시도는 단숨에 거부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실로 화이트헤드 안에서는 <아르키미데스의 점>이 분명하게 확보될 수 있는 논의의 여지가 별로, 혹은 아예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점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의해 밀려나고 새롭게 착상되는 계기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아르키미데스의 점>을 시공간적인 어떠한 지점을 점유하는 정체성을 지닌 영원불변의 점으로 이해하지 말고, 오히려 시공연속체 안의 변화를 바탕으로 그 위에서 동일성을 견지하는 연속체로서 점을 이해해야 하겠다는 착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퀴나스류의 영혼에 대한 영원불멸의 사고는 결코 우리시대의 4차원 시공연속체 안에서의 논의와 쉽게 연결될 수 없고, 오히려 한 줌의 쓰레기로 버려야 할 구태의 사고방식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쐐기를 박아버리는 화이트헤드의 그 사유에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을 가지면서도, 새삼 귀담아 들을 바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오영환 교수님의 세미나를 통하여 얻은 것이 참 많았지만 스노우를 만나게 된 계기도 그 세미나를 통해서였습니다. 스노우 또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물질과 정신 사이의 갈등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본 사상가이기에 공감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 스노우의 두 문화에 대한 고찰 "(한신학보, 1997.12.10)에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물질과 정신의 해리의 시대를 걷고 있는 오늘날 그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담아보았습니다.  인간 정체성과 관련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저를 사로잡은 사상가는 융이었습니다. 융 또한 화이트헤드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아주 묘한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융은 진정 Great Shaman이라고 표현하신 김경재 교수님의 말씀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만난 융은 매우 따스한 시선의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지만, 융을 만나면 만날 수록 우주의 비밀을 가득 담고 있는 우주보(宇宙寶)와 같다고 할까요. 특별히 융은 인간의 영혼의 정체성을 그의 삶을 통해서 기술하고 해명하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저의 관심과 직접 통하는 보고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융이 워낙 깊어서 한 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는 결국 "영혼(Soul)은 존재한다"고 보는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의 심리학은 단지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관계 혹은 기술적인 치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형이상학적 밑그림을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경험의 다양성과, 지식의 풍부함의 향기를 이리저리 깁고 나면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융의 형이상학이 서로 묘하게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하간 위대한 무당이자 의사였던 융의 사상의 기본적인 얼개와 의미를 "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 "(한신 23, 1996)에서 나름대로 성찰하였습니다. 이 논문은 융의 사상을 정제된 언어를 통하여, 문학적 공명을 통하여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융의 삶에 대한 조명이 매우 미약하였고, 이성의 영역과 이성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이해가 매우 단편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성의 긍정적인 기능에 대한 폄하가 조금은 과도하게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융 만큼 이성적인 사람 또한 없었을 터인데 말이지요.

결정적으로 융이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신비하게 혹은 심도 깊게 기술한, 암호와 같은 그의 유작 "죽은 자를 위한 일곱가지 설법"은 정말 귀하게 음미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글을 " 죽은 자를 위한 일곱가지 설법에 대한 주해 "(1995)에서 짤막하게 음미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시간과 경륜이 쌓이면 그 암호와 같은 언어가 나에게 이전과는 다른 어떤 공감을 던져주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영혼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우리가 매우 잘 아는 중세의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의 삶과 사상에 대하여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연구 "(한신논총 8집, 1998)에서 성찰해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에 있어서 자아는 화이트헤드와 같이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소사이어티(Society)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직면을 통하여 완전히 무로 해체해 버리는 국면으로 전개가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상 마저도 돌파해 버린 후 다가오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흐르는 그 침묵의 우주를 에크하르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헤겔의 형이상학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지를 " 헤겔과 화이트헤드 "(1999)에서 해명해 보았습니다. 피히테와 쉘링을 동시에 극복한 헤겔의 <주체>Subject 개념과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개념의 유사성과 차이, 헤겔의 변증법과 화이트헤드의 궁극자의 범주의 유사성과 차이를 이 논문에서는 개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비교의 도식은 거칠고, 기술은 섬세하지 못하며, 원전의 근거 또한 빈약하여 앞으로 더욱 풍부하게 첨가하여 완성하려 할 생각입니다.

1998년 지난 겨울, 이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주체의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타자의 생경함의 문제, 또한 신학의 궁극적인 수렴점인 <하나님 나라>의 연대의 문제가 나의 고민에 이리 저리 얽혀 있다는 생각을 하던 끝에 이 모든 생각의 조각들을 어떻게 꿰어 맞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주체와 관련된 밑그림들을 용기를 내어 나름대로 일관되게 기술한 글이 " 주체성 타자성 연대성 "(1999)입니다. 여기에서는 주체와 타자가 상호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체와 타자 그리고 연대성 안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밑그림입니다. 경계는 선명하지 않지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드넓은 시야를 주는 것이 스케치의 미덕일 것입니다. 전체에 대한 전경 위에서 경계의 모호함을 하나 둘씩 덧칠을 해 나아가는 작업은 이 스케치가 나에게 끊임없이 청구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라는 신학의 궁극적인 관심이 과정신학 안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과정신학의 하나님 나라"(1999. 5)를 조명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신의 아카데미즘>이라는 주제로 열린 대학원 학술제 발표시간에 준비한 논문을 읽는 도중, 저는 새삼스럽게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논문에 박혀 있으면서 계속 입으로 읽혀지며 뱉어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글자를 읽으면서 마치 감전된 것 처럼, 저는 실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불의와 고통과 악이 가득찬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다가옴이 얼마나 절실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는 저런 몇 줌의 문자로 결코 지시되어질 수 없고 해명되어질 수 없는 것, 오히려 세상의 모든 질서를 전복하고 우리를 향해 돌파해 오는 전혀 새로운 나라일 것이라는 직관이었습니다.

논문 발표는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누미노제적인 충격과 혼돈과 긴장에 사로잡혔습니다. 다시 고민하자, 다시 꿈꾸자, 하나님 나라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자, 희망하자 하는 심정을 가지고서 저는 홀로 대학원 뒷 편으로 나아가서 발표한 그 글을 태워버렸습니다. 신학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혁명,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함이 마음에 부재했전 저에게는 허울좋은 덕목이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저는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은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머리 속에서 혹은 현실 가운데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문젯거리였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시성 현상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동시성 이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추스리고 있었을 즈음 김경재 교수님의 틸리히 신학 세미나에서 융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융의 문제작인 Synchronicity : An acausal Connecting Principle, Collected Works VIII.을 시간을 내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1999.9) 에서는 융의 동시성 현상의 분명한 정의, 사례, 그리고 동시성 현상이 현대 물리학, 형이상학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1998년에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심포지엄에서 저는 물리학자 전병기 박사의 "화이트헤드의 지속과 이중 스릿 실험" 논문 발표를 들으면서 현재라고 하는, 시간폭을 가지고 있는 지속의 영역에서 인과관계가 파괴되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듣고 매우 놀라웠습니다. 융의 동시성 이론의 도식과 민코프스키 4차원 시공간의 도식 사이에는 언제나 화해할 수 없는 분기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병기 박사의 해석은 이 둘 사이의 대화의 창구를 마련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몇 년 전에 조익표 형 또한 화이트헤드가 논의하는 민코프스키 4차원 시공간의 그 현재의 영역은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넌지시 언급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하간 이 논문은 동시성 현상이 간직하고 있는 그 신묘한 지점에 대한 이해를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해명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그 아르키미데스의 점이 진정 전혀 다른 시공의 상대론적 지위를 점한다고 할 때 동시성 현상 자체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동시성 현상 자체를 4차원 시공연속체의 도식 안에서 해명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물상화된 문제제기가 아닌가 하는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대답이 없이 그저 물음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진정 인간의 정체성은 공간적으로 인류공동체의 정체성, 시간적으로 역사의 정체성, 궁극적으로 신의 정체성까지 육박해 들어가게 하는 최초의 발화점입니다. 또한 이 사회와 역사와 하나님의 진정한 의미를 해명하게 하는 궁극적인 암호입니다. 이제는 저의 개인적인 문제의식이 신학의 전통과 교회의 전통 안에서 어떻게 조명되고 연계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삶이야 어느 곳이든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만, 독일의 사회는 밋밋하리만치 조용하지만, 독일 신학의 연구성과와 책은 다양하고 풍부하게 계속 쏟아지고 있는 듯 합니다. 한국은 기독교 역사가 100년이라는 사실이 이전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구한 기독교역사가 고성 성벽 한 켠에 아름드리 혹은 이끼처럼 녹아들어 있는 이 곳에서의 낯선 경험은 자연스럽게 한국 기독교와, 신학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곳에 적절하게 박혀 번쩍거리고 있는 다양한 신학 인문학 인프라와, 다양한 방식으로 후두둑 쏟아지는 여러 신학화의 논의는 저에게는 가히 대단한 매력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러움보다 더욱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마치 김치는 과학적으로 치즈보다 더욱 영양분이 많고 입맛에 맞아서 먹는 이유 이상의 것에 우리는 프로그래밍 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이곳 신학의 위용이 아무리 광활하고 풍부하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타는 태양 아래 황량한 사막을 나 홀로 거니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길은 나아감에 따라 열린다고는 하지만, 유럽 그리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영미에서의 인생의 황홀한 중세를 다 거치고 고즈넉한 고향의 툇마루에 누워서 달빛을 바라보면서 이 순간들을 헤아려봐야 비로소 지금 경험의 의미가 더욱 투명하게 드러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 세계 어느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국 기독교의 열정과 에너지를 더욱 승화할 수 있도록 벽돌 하나를 차곡 쌓는 심정으로 이곳에 감추어진 드라빔을 찾아 발굴하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필요한 것은 어설픈 비교의식보다 더욱 중요한, 이곳에서 이곳의 언어로 하나님을 더욱 크고 깊이 고백하고 이해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간절히 말하는 것이겠지요. 여전히 신음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온 피조물들의 아픔과 눈물을 생각하며, 그리고 내 뿌리, 우리 한국 교회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신학동네에 오신 여러분에게 저와 신학동네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마쳤습니다. 무한하게 열린 가능성 앞에서 부족함에 대한 자각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서로의 마음에 품은 깨진 거울조각을 기꺼이 맞추어 나아가는 용기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이 신학동네가 우리 마음에 침잠되어 있는 이 진리의 흔적을 서로 헤아리는 동네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창조적인 신학의 생명력을 틔우는 동네가 되길 빕니다.  이곳 저곳을 거닐다가 발견한 저의 아쉬운 여백을 여러분께서도 기꺼이 충고와 조언을 남겨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서로 거침이 없이 고민, 토론하고 동료를 만나며, 새로운 정보를 기쁘게 나누는 따뜻한 인터넷 신학동네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Alles Liebe!

2001년 1월 1일

 


안녕하세요.  신학동네의 전철입니다. 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학문의 작은 습작을 마치고, 새로운 학문의 모험과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학동네를 방문해 주시고, 그리고 그동안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더 드넓은 진리의 탐구와 생의 의미를 찾는 우리의 여행에서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08년 2월 17일